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7화
2022년 6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지 반년에 접어들 무렵, 열번 째 인터뷰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섭외하는 데에 공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내키지 않는 마음이 마음 한 쪽에 있었다. 그 날 인터뷰이는 대형병원의 병원장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경북 구미의 중년 남성. 2018년부터 꾸준히 정치권 진입 시도를 했던 이력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만나기 전 부담감이 컸다. 나와 삶의 지향이 전혀 다를 것 같은 일종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만나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내 예상을 비껴가는 그 사람의 훌륭한 모습들을 대화를 통해 계속 발견하면서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의 첫 취지는 척추질환에 대한 간단한 자문이었다. 그런데 사전에 보낸 질의서에 대해 인터뷰이는 직접 서면으로 꼼꼼하게 설명을 붙여서 답변을 주었다. 직접 대면하는 자리에서 대본 읽듯 똑같은 질문을 주고받는 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기자가 아니더라도 잘 알것이다.
나는 답변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문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병원 운영의 철학과 의료인으로서 사회참여 등에 대한 개인적 인터뷰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이 바뀐 인터뷰 취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반응이 왔고, 그렇게 1시간 반 동안의 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는 내 예상과 달리 가부장제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척추질환 환자들을 진료하다보면, 오랜 시간 반복해온 가사노동으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는 여성이 많았다고 그는 말하며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성에게 그것을 모두 전가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명절이 지나고 나서 병원을 방문하는 여성들이 급증한다며 제사나 오랜 관습들에 대해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의료인으로서 도덕적 양심이 매우 컸다. 정형외과를 17년간 잘 운영하다가 2010년 처음 척추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개원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변 동료들이 많이 말렸다고 한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때문에. 하지만 그는 경북권에 척추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부족한 점에 늘 마음에 걸렸고, 의료인으로서 의료의 질 개선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도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건립한 병원이 벌써 12년이 되었고, 예전 정형외과 때부터 함께 일한 동료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기도 하다.
정치권에 진입을 시도한 것도 사회적 약자와 의료서비스 개선에 대한 사명감이 컸고, 물론 '구미'라는 지역 특성상 야당 의원으로 출마했다는 것에 대한 패널티가 컸지만, 당선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낙선 이후에 바로 코로나 현장으로 투입해 의료진으로서 사람들을 치료했던 행보도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자기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외과 의사는 섬세함이 생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60세가 넘으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수술현장에서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노하우가 전수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권위있는 교수들이 남아 다음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급성기 환자들이 모이는 개인 병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점차 병원장에서 물러날 준비를 실제적으로 하고 있고, 대신 경북권을 커버할 수 있는 특수재활치료 전담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특수재활병원의 경우 아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대학 상급병원에만 존재하고 그해서 장애인 등 꾸준한 재활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어렵게 예약을 잡아 서울까지 가야하는 현실. 정치권에서도 특수재활병원에 대해서는 아직 전체적인 필요인구가 소수다 보니까 예산을 잘 잡지 않기 때문에 개원하게 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들이 크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병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천천히 준비중이라고 한다.
물론 한 번의 인터뷰로 사람을 다 파악할 수 없고, 또 어쨌든 직업인으로서 인터뷰에 임하다보면 긍정적인 부분만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삶의 지향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대화의 분위기와 나눈 내용들을 보면 내가 처음에 가졌던 선입견에 축소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한 개인을 특정 범주에 국한시켜 그 사람의 특성을 어림잡아 축소시켜 버리는 선입견이 얼마나 나와 그와 우리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지, 그리고 여전히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참 쉽지않은 과정이지만, 이렇게 나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시켜나간다. 나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