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동료의 농땡이에 분노하는가?

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5화

by 문슬아


2022년 1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내가 원하는 모습(가치적, 도덕적, 신념 등)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나 두려움이 크다. 가끔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끙끙대면서 애를 쓰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이런 모습과 반대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내 그림자를 투사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방식 이면에는 현실의 내 자신보다 고귀하고, 강렬한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고 싶지만 무리에서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불의를 못 본 척 했던 나. 미움당하는 누군가를 외면했던 모습. 사랑받지 못할까봐 ‘거절’을 못해 많은 짐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날들. 친구가 없는 외로운 마음을 이성관계로 풀고자 했던 학창시절의 모습들. 나는 이런 모습들을 스스로 찌질하게 여기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욕구, 그래서 대학시절 나를 멋진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었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항상 내 욕구 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 맞춰서 행동하거나, 남을 돕는 역할을 자처하거나, 내가 손해보고 말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밝은 존재로 나를 채찍질 했던 시간들이 쌓여 대학 중반에 스스로 지쳐 큰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 애쓰며 살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나를 부인해가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하는데. 내 회사 동료가 나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고 설렁설렁 하는 모습에, 독박육아를 자처하고도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놓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난 원래 이래. 너가 이해해'라며 자기의 이기적인 무책임함을 가볍게 떠넘기는 주변인에게 미친듯이 화가난다. 물론 겉으로는 상냥하게 구는 내 이중적인 모습. 내적 분노에 찬 마음이 외친다 '열심히 살지 않는 건 죄라고!!'


쉬엄 쉬엄 하라는 말이 왜 이렇게 나는 화가 날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곧 '죄'와 같았던 어린시절 가정환경 때문일까? 한 분야에 오래 매진하지 못하고 금새 실증을 내던 어렸던 나는 늘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로 괴로웠다. 자유롭고 싶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한 길'만 죽어라 파며 괄목할 성장을 이루는 이들과 늘 비교당했다. 내 모습, 내 성향, 내 자신 자체를 미워하게 되는 시발점이었을까?


20대의 나를 돌아보면 정 반대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던 나는 결과적으로 한길만 파지 못했고, 내놓을만한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극단적인 완벽함을 이루려고 애쓰다보니, 이만큼 애쓰지 않는 동료나 친구들에게 나도 모르게 내적 화가 났다.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이런 내가 도리어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상담을 공부하고, 세상 연약하게 태어난 아이를 키우며 많이 달라졌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사소한 '농땡이'들에 분개하는 꼰대같은 내 모습을 보면 역시...사람이 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이 든다. 성숙은 정말 치열한 과정인 것 같다.


정직하게 돌아보면 경멸이 아닌 내 안 깊은 곳 '열등감'일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말했다. "그림자는 본래부터 그렇게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늘에 가려있어서, 다시 말해서 무의식 속에 버려져 있어 분화될 기회를 잃었을 뿐이며, 그것이 의식되어 햇빛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들이다." 융은 대부분의 그림자는 의식화, 실천을 수반하는 체험적 수용을 통해 창조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작고, 느리고, 소심하고, 변덕이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비난했던 이들에 대한 분노가 돌덩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돌덩이가 나의 그림자, 나의 내면아이인 것. 난 결국 나를 미워하는 거다. 그 미움은 나를 향하지 말고 나를 비난하고, 상처주었던 이들에게 돌려도 될 것을. 힘이 없고, 미워도 그들이 필요했던 어리고 나약했던 나는. 살기 위해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바꿔온 것. 내 안에 돌덩이로 남아있는 '어린 나'는 다른사람에게서 비난의 여지가 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돌을 던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응어리진 분노는 슬픔이라는 깊은 물에 충분히 잠겨야 녹을 수 있을까. 어린시절 나를 흔드는 소란스런 비난 속에서 나를 미워하고 바꾸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본능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충분히 슬퍼해준다면. 너의 성향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를 비난하고 정형화된 틀에 가두려던 이들의 잘못이라고 충분히 얘기해준다면. 돌덩이가 좀 녹아내릴까.


언제쯤 내 안의 그림자를 소화할 수 있을까. 언제쯤 화가 좀 가라앉을까. 아무도 시키지 않는 채찍질을 스스로 하며 나는 매주 1건 이상의 인터뷰를 해내고야 마는 워커홀릭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