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매거진 에디터의 성장기 12화
2022년 8월
오후 3시의 볕이 등 뒤에서부터 내 책상 키보드 위로 내려앉는다. 눈이 부시지만 부러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았다. 사무실에 고요하게 흐르는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느린 노란 빛의 나른함 속에서 기지개를 켜다 눈이 마주친 고양이 처럼 총총 거리듯 들려온다. 슬슬 당이 떨어질 시간이다. 카페인에 취약한 나는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첨가된 페퍼민트를 마신다.
"지구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굵은 글씨로 인쇄된 종이 위에 두달 전 처방받은 신경과 약이 그대로 화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흰색, 노란색, 초록색의 알약 네 알이 엉겨붙어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저녁약만 복용한다. 더 살기로 작정 했으니, 지구를 위한 마지막 기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뉴스 페이지에 어제 쓴 기사를 다시 꺼내본다. 코알라 멸종위기로부터 시작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다짐까지. 번잡스럽고 장황한 내 기사를 보며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카산드라의 무력함이 아닌 희망의 동작이 될 의무가 있다'고 거창하게 적어 놓은 모니터 위 내 다짐을 등 뒤의 태양이 숨죽이기 전 마지막 빛을 뻗어내는 듯 강력하게 쏘아본다.
뉴스 창을 닫고, 다시 내 할 일을 한다.
기계처럼 발행량을 채운다.
나른했던 세시는 부끄러운 다섯시가 되었다.
책상 왼쪽 귀퉁이에 일회용 컵에 담긴 먹다 남은 토마토 주스 얼음이 북극의 해빙처럼 녹아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