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아무튼, 비건》
책 『아무튼, 비건』의 저자 김한민은 "나의 관심이 나에게서 타자로 옮겨갈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때는 남들처럼 고기를 즐겼던 저자 자신이 비건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 김한민은 어느 날 무언가를 보았고, 알게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변화를 시도했다. 시도의 결과는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았으며,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 변화란 바로 동물을 먹지 않으며,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고기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저자는 육류와 유제품은 백해무익하며 비건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아니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정보들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는 특히 육류와 유제품의 생산과 소비로 인한 실제적 고통의 불편한 진실에 주목한다.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은 식용을 위해 생산되고 처리되는 공산품일 뿐이다. 그곳에서 동물들에게 삶이란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래서 오직 고통뿐이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밀집 사육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관리자들이 동물을 학대하고 구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들이 병에 걸릴 확률과 치사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살려두는 것은 항생제 과다 투여뿐이다. 병든 동물들은 방치되거나 산 채로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더구나 단시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도살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은 도살업체들이 말하는 ‘인도적 도살’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 본문 중
최근 몇년 전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들에 산채로 땅에 묻히는 대형 살처분이 감행된 일이 있었다.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진 돼지들이 살기 위해 계속 위로 낑낑거리며 오르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참혹했다.
책에는 낮에 산채로 묻힌 수천 마리 돼지 중 두세 마리가 밤새 사력을 다해 땅을 파서 거의 지면에 도달하려던 차에 이를 발견한 현장 감독관의 지시로 삽을 들어 돼지들의 두개골을 후려쳐 다시 땅에 묻어버린 공무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살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생명을 무참이 짓밟고 난 후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던 그는, 이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며,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털어 놓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다르면 가축 사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가 전체의 14.5%를 차지할 만큼 육류소비는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 된다.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험 앞에서 사실 개인으로서 무력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내가 절망과 무력감 혹은 냉소하는 순간순간마다 실제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생명들이 있다.
우유 생산을 위해 강제로 임신을 당하고(강간과 다름없다) 출산 직후 젖먹이 아이를 빼앗긴 소의 울음. 이후 젖을 짜내기 위해 혹사당하는 소의 고통.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철창에서 항생제를 맞으며 살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다리를 인위적으로 6개나 달고 살아야하는 닭의 고통. 대형산불로 목숨을 잃은 코알라.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
사람들은 비건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
참으로 익숙한 말들이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난민 이슈 앞에서도 흔히 들어온 말이니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갇히면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 노력에만 골몰하다가 세상에 조금의 긍정적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삶을 끝내게 될 것이다. 반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를 깊이 받아들여 일상에서 작게나마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이 상황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변화가 멀어 보여도 그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 본문 중
저자는 완벽한 비건 몇 명이 존재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좀 더 ‘비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비건의 목적은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는데 있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채식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채식을 시작했다. 이제 한달이 조금 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온전함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려 한다.
저자 역시 스스로도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노력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한다면, 실천도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못할 바엔 시작도 안 하겠어”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비건이 되는 건 나도 모르게 타자화한 대상들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다.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동물과의 직관적 연결 고리를, 거대 산업과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책 『아무튼, 비건』은 바로 그 연결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