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초등학교 5학년때 선생님께 핵전쟁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있다. 환경 오염 문제에 대해서도 배웠고, 중학생이 돼서는 공유제의 비극에 대해서 배웠던 것 같다. 인류의 한없는 욕망과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큰 두려움을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이 너무 멀리 있거나 감당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법을 함께 배운 것이다.
성인이 되어, 그 또래의 자녀를 키우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법,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딴 생각을 하는 법을 아주 잘 사용한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삶 속에서 외면했던 순간들을 처절하게 되생각해보는 각오가 필요하다. 적어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우리가 기후 위기를 논하기 전에 가장 먼저 동의해야 할 중요한 전제이자 대명제이다. 북극해의 오염이 남극과 가장 가까운 남미 대륙 페루의 문제이기도 하며, 북미 대륙의 미국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면서 배출하는 오염 물질은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라도 다르고, 대륙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 다음으로 '어쩌라고?' 라는 말이 나오는 게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다. 이것은 단순히 '문제'라고 정의하는 것을 넘어서 '능력의 부재' 또는 '노력의 부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고,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솔직히 노력해도 잘 안되는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기후 문제 외에 다른 사회 문제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시작은 당연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완전히 동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엔지니어다. 첨단 기술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놀라고, 감탄하는 부분은 현대 문명의 엄청난 가속도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46억 년이고, 약 4500년 전에 글자가 있었고, 정보가 기록되었다. 200년 전 즈음에 증기기관이,66년 전에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 각각은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의 시초가 되는데, 두 번의 혁명으로 인류의 에너지 소모량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단, 200년 전, 50년 전은 그보다 앞선 20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변화의 가장 앞 부분에 서있는 사람 중 하나임에도,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50년 전에 살았던 할머니를 이해하기 힘든 것보다 더 힘들게 내 손주와 소통해야 할지도 걱정이지만,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서 준비하지 못한 채로 이뤄지는 변화가 가져올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단지 한 두 가지 영역의 기술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기술과 역사를 공부할수록 더 깊은 상념에 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가속은 긍정적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뭐, 애초에 기술이라는 것 자체는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좋게 사용될 수 있는 기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에 기후 문제의 위중함이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술자로서 기술 발전이 분명 기후 문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그렇게 동작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적,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은 방향성이 없지만, 자본주의는 기술로 기후 문제를 가속화하고, 우리의 탐욕은 기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마비 시켰기에 책의 저자들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좌절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당근 마켓은 필요 없는 것을 받았을 때, 멀쩡한대 필요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물건이 필요할 때 나눠 쓸 수 있는 좋은 서비스다. 근데, 더 좋은 것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새로 사고 쓰던 거 당근하지 말고, 당근으로 더 크고 좋은 것도 사지말고 가능하면 있는 거 더 쓰는 것이다. 아나바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알면서도 힘든 일이다.
부자의 최대 이점은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 노르웨이의 숲, 미도리
돈이 없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옷으로 좀 대충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패션리더일 수 있다. 그래 그 마음으로 나도 이제 옷 좀 그만 사야겠다. 계절마다 두 벌 살 거 한 벌만 사야겠다. 있던 거로 한 번 더 버텨야겠다. 늘어지고 물 빠진 옷도 꿋꿋하게 입어봐야겠다.
온통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한 이 책에서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기후 위기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전면적으로 전환되어서 급진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티핑 포인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논의되고 지금까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민주주의를 기반한 사회 시스템이 정상 작동한다는 가정하에 사람들의 변화는 곧 세상의 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주목받는 연구를 하나 소개하고 있는데, '3.5 퍼센트 법칙'이라고, 역사적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자국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대규모 비폭력 운동에서 전 국민의 3.5퍼센트가 시위에 참가한 경우에는 실패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부 운동가들은 이 수치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세계적 기후 문제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 부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수의 힘이 필요하고, 자발적 참여와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도 전 세계적인 위기였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물론, 국가 간에 갈등과 불평등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위기가 왔을 때 국가와 인류가 옳은 방향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실제로 극복했던 경험이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는데, 책에 따르면 그때 재정 지출의 10분의 1을 5년간 탈탄소화에 직접 투입하면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지구 온난화를 2도 아래로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뭐?! 그렇다면, 같다고 아니 비슷한 위기라고 인식하면 확실한 행동력을 갖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식이 중요한 것이고, 정치가 중요하고, 그래서 이 책이 중요하다.
가장 어려운 일은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불평등하게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없는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받게 되며, 특정 지역의 사람들 역시 더 큰 고난을 겪게 된다. 근데, 아니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무관심하다. 홈리스와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받는 고통을 누구나 동일하게 받게 된다면 사람들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결코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기후 문제는 홈리스와 장애인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불의에 기반한다. 기후 문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지구 자원의 잘 못된 과소비 문제로 정의한다면, 애초에 소비를 하지도 않았던 저소득 국가와 계층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게 되는 엄청난 불의가 있다. 책에서는 기후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정의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가장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읽은 부분이다.
역사 속에 그런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기후 정의는 꼭 실현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이지만, 지금 세계의 전쟁 통을 생각하면 막막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후 위기를 아주 짧게 정리해 보자면,
지금은 과학적으로 확실한 비상사태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더 큰 문제가 예상되며, 전환적인 대책과 행동이 필요하다.
언론과 자본을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가장 많이 문제를 발생시키고, 가장 많이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다.
선진국 중심의 소비주의 생활 양식과 팽창하는 인구도 문제의 큰 축이다.
개인이, 사회가, 국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처럼은 더 이상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