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금요일 밤 10시가 넘어 들려오는 벨소리를 듣고 신랑이 현관으로 걸어갔다.
"어, 청국장이 왔나 보다."
현관 앞에서 가져온 택배 상자 안의 물건을 보고 뭉클함이 밀려왔다.
그곳엔 시고모님이 직접 만든 청국장과 한겨울 언 땅에서 꺼내 깨끗하게 다듬어 놓은 냉이 한 봉지가 있었다.
신랑이 태어난 곳은 음성이다. 그곳에서 둘째 고모님이 콩 농사를 지어 메주를 뜬다. 둘째 고모님의 메주는 동네에서도 많이 유명하며 절에서도 부탁이 들어 올 정도다. 후끈후끈한 방 하나가 주렁주렁 짚으로 엮은 메주들이 가득 차 있다. 노랗고 하얀 곰팡이가 낀 메주를 보기 위해 방을 열면 고모님은 냄새 나니 들어가지 말라 하신다. 하지만 난 이 메주 냄새가 거부감이 하나 없이 좋다. 방 하나를 다 채울 정도로 많은 메주를 보면 내 것이 아니지만 괜스레 뿌듯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둘째 고모님이 메주를 만들어 놓으면 첫째 고모님이 이 메주로 청국장을 만드시는데 이 청국장이 참 맛있다. 특별히 간을 하지 않고 끓여도 맛있다. 이리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 먹을 수 없는 성격에 여기저기 나눠줬더니 너무 맛있다고 10만 원어치 주문까지 해봤다. 고모님은 정성을 준 음식에 돈을 받기 미안함을 비쳤다.
"어떻게 돈을 받나."
"저희가 먹을 것이 아니라 맛있다고 주문해달래요"
"그래도 어떻게 돈을 받나"
평소 주는 걸 좋아했던 고모님은 돈 받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몇 주 후에 20 만원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청국장이 배달되었다.
경기도에서 음성은 가까운 거리다. 그러다 보니 제법 놀러 가는 편이다. 자연을 좋아하고 흙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음성 가는 길이 가장 좋은 이유는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는 고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음성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삼성 큰 고모님 댁에 갔다.
점심을 먹고 왔지만 조카며느리가 왔다고 밥상을 차려주시는데 거부할 수 없었다. 내밀어 주신 정을 거부하기엔 그 정이 너무 따뜻하다.
산에서 직접 캐신 산나물과 추운 겨울을 뚫고 나온 냉잇국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에 먼저 수저가 가는 법이라 냉잇국을 한수저 떠먹었다. 그 어떤 가공으로도 낼 수 없는 냉이 향.
마트에서 파는 냉이에는 이 향이 나지 않는다.
냉이는 식감보다 향 때문에 먹는데 도시에서 파는 냉이는 향이 나지 않기에 잘 사지 않게 된다.
바로 캔 냉이는 흙속에 뿌리를 둬 추운 겨울을 이긴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낸다. 끓일 때부터 방안에 냉이 향이 한가득. 그 조그마한 식물이 집안을 온통 냉이 향으로 뒤덮는다. 추위를 이기고 나온 냉이라 그런가. 내 몸도 덩달아 따뜻해지고 좋은 향이 나는 듯하다.
"와. 맛있다. 제가 냉이를 정말 좋아해요. 도시에서 먹는 냉이는 향이 없어서 잘 안 먹게 되는데 고모님이 캐신 냉이는 정말 향이 좋아요."
"많이 있으니 많이 먹어. 줄 반찬이 별로 없네. 어쩌나."
말씀은 저리 하셔도 반찬이 한상 가득이다.
차려주신 밥으로 부족하셨는지 떠날 때 깨끗하게 씻어서 다듬어 냉동한 냉이을 한가득 주셨다.
두 달 뒤 삼성동을 다시 갔을 때 빨강 큰 대야에 냉이가 한가득이었다.
"고모님. 무슨 냉이가 이리 많아요?"
"조카며느리가 냉이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한가득 캤어. 옆집 사람이 냉이 좀 달라했는데 조카며느리 줘야 한다고 절대 안 줬어."
평소에 음식 퍼주기 좋아하신 고모님이다. 음식에 절대 인색한 분이 아니시다. 밥 좀 달라하면 거절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상을 차리는 인정 많은 고모님이 냉이에 대해서는 한 사람에게 정을 쏟으신 거 같다.
코로나로 평소 자주 갔던 삼성과 음성은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없었다. 가고 싶었지만 연세가 있으셨기에 혹시나 우리로 인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가 좋아지면 가야지 했건만 현실을 이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코로나의 목표가 사람들의 단절인가 하는 생각도 한 번씩 들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뚫고 늦은 밤에 온 청국장과 냉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단절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애틋함이 더해졌다.
이날 밤 햅쌀로 밥을 하고 두부와 대파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찌개에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치 고모님이 많이 먹고 더 먹어하는 듯했다.
아주 간편한 청국장 끓이기
준비물 : 겨울, 잘 띄운 청국장, 가을/겨울 무, 두부, 다진 마늘 두 조각, 국물 멸치 8개
맛있게 먹기 위해 빠져선 안 되는 준비물 : 겨울
피해야 하는 준비물 : 여름
뚝배기에 쌀 뜰 물을 넣은 후 다시 멸치 8개, 0.5센티 정도 썰은 가을/겨울 무, 다진 마늘 두 조각을 넣고 팔팔 끓인다.
20분 ~ 30분 정도 끓이면 무에서 시원한 맛도 나고 멸치의 육수도 어느 정도 나와 맛을 살려준다.
두부에 청국장이 베도록 하고 싶으면 청국장과 같이 넣고 두부의 고소함을 느끼고 싶을 경우는 불을 끄기 3분 전에 넣어 준다.
파는 대파가 좋고 어슷 썰어 한주먹을 두부와 같이 넣어 3분 동안 끓이면 거부할 수 없는 구수한 청국장이 완성된다.
Tip. 국물 멸치를 중간에 빼지 않고 끓이면 더욱 진한 맛이 난다.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 않지만 맛은 훨씬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