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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의 꿈 Apr 12. 2021

[상상 속으로] 괴물을 보았다 -1

인생수월했다. 말 그대로 [했다]로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개발자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월했고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노력에 결실도 보이고 모두 좋을 순 없지만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내가 일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으며 살아간다라고 느끼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시절 선배들로부터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 크고 작은 괴물이 사는 것 같았다. 괴물이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때론 괴물이 사람들을 끌고 가 또 다른 괴물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괴물은 게임 보너스를 받듯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이야기 인가했다.  좀 과장됐지만 그런 상상 했다.

하지만 과장된 말이라 여기고 실제 그러겠냐라고 생각한 어느 날 괴물을 만다.


괴물을 만난 순간 처음에는 괴물인 줄 몰랐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건너는 모습은 사람과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게 과도하게 친절했다.

그때는 몰랐다. 저리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아주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고 모두 자신의 일에 열중인 사무실에서 다음 불러가는 대상이 누구인지 걱정에 일을 집중하지 못하게 할 줄 몰랐으며 외부에서 새로 온 임원으로 직원들에게 다정한 인상을 잠시 주기 위한 적응기라는 것을 몰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사무실은 점점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밖에 못해? 이걸 보고서라고 썼어?"

"너 월급 얼마 받아? 얼마 받기에 일을 이 따위로 하는 거야?"

"일정이 왜 지연됐는데. 지연된 일정 책임 어떻게 질건대"

"너 몇 시까지 일했는데 날 샜어? 날도 새지 않고 잠잤는데 무슨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기분을 필터 처리하지 않고 여과 없이 쏟아붓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도 순간  한 시간도 안되어 친근한 말투를 가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책임. 오늘 우리 저녁 닭갈비 먹을까?"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까지 하고 있던 업무를 끝내야 해서요."

"어, 괜찮아 그거 저녁 먹고 와서 하면 돼"


미치고 돌아버릴 지경이다. 일정을 생각하면 응하고 싶지 않지만 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응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들이 기다릴지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정이 아니더라도 한 시간 전만 해도 나를 죽일 듯이 대하는 상사와 누가 밥을 함께 하고 싶겠는가. 사람이라면 쉽게 응할 수 없지만 사람이라서 해야 했다. 다들 가정이 있는 집안의 한 가정이기에 그리고 나 역시 가정이 있기에.

갑자기  괴물의 배을 채울 수 있는 닭갈비 먹는 일이 업무 1순위로 변경되었다. 참 거지 같은 하루들 중 어느 하루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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