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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의 꿈 Feb 04. 2024

명리의 시작은 하도와 낙서에서

우리는 성리학을 미신이 아닌 학문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명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신으로 생각한다.

왜 그리 되었을까? 명리는 사람의 명 즉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왜 미신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는 명리의 본질의 발전보다 그 과정 속에 있는 길흉화복에 치우 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명리를 생각하면 사주를 생각하고 사주를 생각하면 점을 생각하고 점을 생각하면 미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주변 사람에게 명리가 학문이라고 말한 나 조차도 이제까지 명리를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보기 위해 사용했으니 말이다.

오래된 인식을 바꾸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것 역시 누군가 시작을 해야 바꿀 수 있다.

산쌤은 그것을 바꾸기 위해 시작하였고 나 역시 바꾸기 위해 이렇게 글로 시작을 열어 본다.

물론 모든 명리가들이 길흉화복에 치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전에 만난 사람들이 그러했을 뿐이다. 어디선가 명리의 본질을 전달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하도와 낙서]

5000년 전 황제 복희가 용마으 몸에 점과 선을 보고 우주의 질서 이야기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점과 선으로 표현한 이유는 언어로는 모든 말하기에 한계가 있어 점과 선을 이용했고 그 뒤로 1000년 뒤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라는 사람 신구라는 거북이를 발견하고 그 거북이의 등에 이상한 문양을 보고 되는데 이 것을 보고 농사와 홍수의 원인은 물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 후로 주나라의 문공이 저 점과 선이 하늘의 이치겠다 생각하고 규명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명리학과 성리학이다.

용마에서 나온 점과 선을 하도라 하고 거북이에서 나온 점과 선을 낙서라 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MBTI도 하도낙서에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칼융을 찾아보니 그러함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유명한 철학가와 물리학자들도 하도낙서에서 많은 것을 참고하였다.

하도낙서의 점과 선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타내는데 봄은 목이고 화는 여름, 가을은 금, 겨울은 수이다.

주역에서는 수가 먼저 등장해서 화가 등장하고 목이 등장해서 금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는 밤이 있으니 낮이 있고 낮이 있으니 밤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행복이라는 것을 행복할 때는 모른다. 그런데 불행해지는 순간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반대를 통해 현재를 보는 것이다. 밤이라는 세상만 존재했다면 낮이라는 세상을 몰랐을 것이다. 반대로 낮이라는 세상만 존재했다면 우리는 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도 행복도, 선도 악도, 우리는 반대를 통해서야만 알 수 있다.

때문에 물이 나오기에 불이 나온 것이고 나무가 있기에 쇠가 있는 것이다.

나무가 자라면 도끼로 베어 낸다. 서로 상반됨이 등장한 것이다.


하도낙서에서 점의 수들은 목화금수를 뜻 한다. 검은 점이 음, 흰점이 양이다.

1, 6 -> 수(겨울), 2, 7->화(여름) , 3, 8-> 목(봄), 4, 9 -> 금(가을)


[봄(인) 여름(예) 가을(의) 겨울(지)의 4단]


인 : 어질 인으로 불쌍한 자를 보고도 지나치지 못하는 측음지심

예 : 모두가 조화를 이룸

의 : 정의로움

지 : 옮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지혜


하도는 하늘의 질서로 완전한 모습이며 낙서는 땅의 질서로 불완전 한 모습으로 낮이 있기에 밤이 있고 밤이 있으니 낮이 있음과 같다. 반대를 모면서 그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완전한 모습이라고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있으니 완전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깊은 수에서 목이 나왔고 목은 화를 키웠다. 화는 금을 맞이했을 때 너무 뜨거워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이 열을 식혀 줄 토를 통하고 토에서 금이 나오게 되었다. 금은 수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도의 질서이다.

이는 글처럼 쉽지 않다. 


측은지심은 아무나 가질 수가 없다. 자신이 팀웍을 이루어 일을 하는데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를 보고 누가 측은지심을 쉽게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예의를 안다고 생각하는가? 매사 상대방을 배려했던가? 나의 자랑은 그 사람을 고려했던가? 우리는 자신의 자랑을 쉽게 감출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나무들이 햇볕을 서로서로 받고자 한다. 이것은 예의가 아니고 욕심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다 같이 햇볕을 받을 수 있게 양보하는 것이 배려이다. 그렇지 못 한  욕심은 오행으로 화이고 이것이 지나치게 강해 질 경우 금을 해 칠 수가 있다. 금은 결실이다. 그러니 욕심이 과하면 결실을 망가뜨릴 수가 있다. 농경 사회에서의 결실은 무척 중요한데 이는 추수를 망칠 수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양보하는 중용을 갖추어서 결실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결실을 얻는 자만이 하늘에 감사하고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위의 결실은 부귀영화도 되고 정신적인 결실도 된다 하니 아니 따를 수 없지만 그 누구도 쉽게 따를 수 있지 않는 과정이다. 이것을 명리를 이해하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4 덕을 주역에서는 원(목) 형(화)리(금) 정(수)이라 하는데 이는 인예의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뜻이다.

이 4가지의 덕을 논하는 가운데 토는 묵묵히 중앙에서 과욕을 내려놓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낙서]

낙서에는 완성물 10이 없다. 그래서 낙서는 불완전한 물로 지구의 에너지이다.

하도의 우주 에너지가 낙서의 지구 에너지와 만났을 때 완성물은 불완전이 만났을 때 생명이 생기게 되었다.

낙서는 극을 하는 원리이다. 물은 불을 끄고 화는 금을 제련시키고 날카로운 금은 나무를 벤다. 나무는 토인 땅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땅은 넘쳐나는 수를 가둔다.

이러한 낙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임의적 움직임을 논하는 것이다.

이를 하도와 연결하면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목적성을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하루 중에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큰 개념으로 말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갈 때 우리는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듯이 어떠한 목적성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이다. 이를 한번 주변에서 한 번씩 찾아보기 바란다.

극하다는 뜻은 이길 극으로 제어한다는 뜻이다. 

지구를 제외한 곳에서는 우주의 에너지가 흐른고 이러한 우주는 양의 존재이고 지구는 음의 존재이다. 


우리는 사주를 볼 때 이러한 극이 많을 때 부정적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그러한 극은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하면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다. 다만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희로애락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고 혹은 후퇴할 수도 있다.

이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명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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