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떠나는 독서 여행

우동 한 그릇(작가 : 구리 료헤이)

by 당근의 꿈


저녁을 먹고 8시 30분이 넘었을 때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한 첫 번째 책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으로 제목은 심플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은 세 장을 읽기도 전에 풀렸다.

어릴 적에 재밌고 뭉클하게 읽었던 책으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형편이 어렵던 세 모자가 섣달 그믐날 밤 우동 한 그릇을 먹는 내용의 책이었다.

3명이서 우동 한 그릇을 조심스럽게 주문하지만 북해정 주인집 부부는 늦은 밤 찾아온 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손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1.5인분의 우동을 주었던 내용으로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줬다.

새삼 아이와 함께 읽어 나갈 생각을 하니 아이는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기대와 책을 서로 한 장씩 읽어 내려갔다.


그런 기대도 잠시 소리 내서 읽어 내려가는 아이의 속도와 정확성에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이는 급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느렸다. 한두 개의 단어를 읊으고 숨을 들여 마시고 또 단어를 읊으고 숨을 들여 마시고 이를 반복하니 목은 금세 말라 중간중간 물까지 마셨다. 숨 때문에 빠르게 읽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정작 속도는 느렸고 정확도는 떨어졌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왜 급하게 읽으려고 하고 정확도가 떨어질까?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유튜브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영상은 글보다 빠르다. 주변 배경 설명을 이미지로 한다. 특히 요즘은 short로 정말 살짝만 보고 넘긴다.

너무 많은 영상들로 인해 그 짧은 영상도 다 보지 못하고 흥미 있는 영상을 찾기 위해 3초만 보고 다른 영상을 찾기 일쑤이다. 눈은 그 영상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3초 만에 한 장면의 묘사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니 눈은 영상처럼 빨리 지나가나 입은 한참 뒤떨어지는 격으로 놓치는 글자도 많고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글자도 많았다.


"천천히 정확하게 읽어."

아이는 다시 속도를 줄이고 정확히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다소 지나면 다시 빨라진다.

"천천히..."

다시 속도는 줄어들고 정확도는 올라가고 있는 아이가 잠시 멈추었다.

"엄마, 북해정이 뭐야"

"여기서는 우동 가게 이름이야.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 기준으로 앞 문장과 뒷 문장을 읽어봐. 그럼 대략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때가 많아. 그럼 그 단어 주변을 읽어 보자."


[그 후, 새해를 맞이한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습니다. 작년만큼이나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북해정은 바쁜 하루를 보내는 곳이었고 10시가 지나 가게 문을 닫으려고 했다고 하잖아. 그럼 이것은 가게 이름이 북해정이라는 것을 조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의 설명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아이와 함께 하는 독서에는 인내심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책에서 나오는 그림을 봐. 여기 간판에 북해정이라고 써져 있지? 그렇게 써진 가게의 메뉴판을 보면 우동과 튀김 등의 가격도 나와 있고 식당 주변을 둘러보면 우동 그릇들이 쌓여 있잖아. 그럼 북해정은 우동을 파는 가게 이름인 것을 알 수 있어."

이번에는 이해했을까?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나 역시 늦은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없어서 넘어갔다.


["당신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넉넉한 면이 있었네."]


"있었네가 아니라 있었네요."

"있었네요."


읽다가 틀린 부분이 있으면 다시 바로 잡아 주면 아이는 정정하여 다시 읽었다.

여러 번 지적된 부분을 정정해서 읽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나를 지적하고 정정해 줬다.

짧은 당황이 스쳐 지나가고 뿌듯함이 몰려왔다.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잘 보고 있구나 하면서.

어른이라 하여 실수하지 않는 법은 없다. 나 역시 유튜브를 보고 마음이 급한 사람으로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다만 내 어린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소리 내어 돌아가면서 읽은 경험이 있기에 아이 보다 더 나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정한 아이의 말투는 부드럽지 않고 딱딱했고 그건 내 거울이었다.

'아, 내가 아이에게 저렇게 말했었나? 아이가 누굴 보고 배웠겠는가. 처음으로 엄마와 책을 읽고 경험했으니 내 모습이었겠지.'

우리는 자신의 거울을 쉽게 보지 못한다. 타인의 모습에 화를 내고 지적하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내 모습을 보고 싶을 때는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된다.

인정하기 싫어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렇게 행동했구나 하면서 나 역시 반성과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아이를 통해 내가 반성할 수 있다면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변화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 또한 변화면 부모는 아이의 스승이 되기도 한다.


한 장씩 번갈아 가면서 읽기로 하였으나 아이는 점점 자신이 더 많이 읽고 싶어 했다.

"엄마, 내가 여기까지 더 읽을게."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니면 책 내용이 흥미가 있었는지 한 장이 두장이 되고 세장까지 읽어갔다.

목소리 톤도 나열식이 아니라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고 감정 이입식으로 따라 했다.


'아, 아이가 한 권의 책만으로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 왜 난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지 않았던가.

그랬더라면 어쩌면 핸드폰 보다 책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아이는 읽다가 중간중간 멈췄는데 그 이유는 모르는 단어 때문이다.


"엄마 섣달 그믐날이 뭐야?"

"섣달 그믐날?"

많이 들어 본 단어이다. 섣달 그믐날은 부모님이 흔히 쓴 말로 동지섣달과 쌍벽을 이루었다.

찾아보니 음력으로 마지막 달에 마지막 날을 섣달 그믐날이라 한다.

항상 부모님이 사용하셨지만 제대로 이해해 보려 본적도 알아들은 적도 없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에. 책에서 부모님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접하니 아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알고 있으니 물어보라 했다. 하지만 늦은 시간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난 아이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이 밖에도 많은 단어들을 물었다.


"무뚝뚝이 뭐야?", "넉넉한 면이 이 뭐야?", "대견스러운 이 뭐야?", "팻말이 뭐야?", "내외가 뭐야?",

"상인이 뭐야?", "해넘이 우동이 뭐야?", "외가가 뭐야?", "시가 현이 뭐야?", "간판이 뭐야?"


아이는 영상을 볼 때와 달리 책을 읽을 때는 계속해서 단어를 물었다.

'이런 단어도 모르나?'라는 생각도 잠시 어떻게 설명해 줘야지?

참 웃긴 상황이다. 왜 이런 단어를 모르지? 하면서도 확 와닿게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아이에게 설명을 잘해주는 편이 아니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평소에 설명도 잘해주지 않았으면서 아이가 왜 이런 단어도 모를까? 생각하는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단지, 세월이 지나서 혹은 아이가 스스로 잘 커가니 나에겐 당연했던 것을 아이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참 도둑 심보를 느꼈다. 그렇다고 무한정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걸 어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혼자서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럴 때 폰을 사용하면 좋아. 엄마 보다 더 정확히 알려주거든"

폰의 긍정적인 기능을 알려주었다. 잘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많아지면 긍정적인 기능을 스스로 찾지 않을까 싶다.


언제 다 읽나 싶었던 책은 어느새 마지막 장까지 와 있었다.

평소에 눈물 많은 나는 읽는 도중 뭉클하여 떨어지려는 눈물을 붙잡고 있었다.

아이도 나처럼 마음이 뭉클했을까?


"나연이는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어?"

"음... 우동이 맛있겠다."

"응? 맛있겠다고? 그거 말고 다른 생각은 안 들어?"

"응"


책을 읽는 도중 아이는 나를 몇 번이나 멈추게 했는데 가장 큰 멈춤은 아이의 소감이었다.


'내 아이가 감정 이입이 안 되는 걸까? 혹 공감 능력이 떨어지나? 아니면 이 나이 때 아이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나? 이것도 아니면 내가 주책없이 눈물이 많은 건가?'


내가 눈물이 많은 거라면 괜찮지만 아이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이럴 경우는 뭉클해야 해'라고 알려준다고 한들 그 공감이 아이의 마음속에 스며들까?

글이란 느낀 점인데 그걸 내 생각으로 주입하면 그건 느낀 점이 아니라 엄마가 시킨 대로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혹 첫째는 중학생이니 뭉클함을 느낄까 싶어 읽고 느낀 점을 말해 달라 했다.

첫째는 읽기 전에 그림을 보더니 "우동 맛있겠다"라는 동생과 중복된 문장을 남기고 책을 가지고 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책을 다 읽었다며 돌아왔다.


"그래서 느낀 점은?"

"느낀 점? 이런 이야기는 숏츠에도 많아서 익숙한데. 굳이 말하면 잘됐다?

몇 년의 동안 우동집을 오지 않았는데 뭘 하고 있었을까? 궁금했었는데 아들들이 의사와 은행원이 되어 돌아왔을 때 잘됐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굳이 느낀 점을 생각하라면 이 정도?"


이쯤 되면 내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영상에 익숙해져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 감정이 덜한 것일까?

시대가 변했듯 아이들의 생각도 변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잠시 후 아이의 독후감을 보면서 나는 아이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었고 더 이상 의문은 남지 않았다.

아이의 세상에 들어가 보니 우리는 서로 관점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어려운 환경에 머물러 있었고 아이는 우동집 주인때문에 우동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신이 꼭 아빠를 살 수 있게 해서 만나면 좋겠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저앉았지만 아이는 새로운 희망을 썼다.

가을날의 해와 봄날의 해가 있는 우리 집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해로 서로를 비추면서 살아간다.



아이의 독후감




엄마가 남기고 싶은 말

아이와 함께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서는 엄마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아이는 잘 따라온다. 다만 엄마가 이일 저 일로 미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자고 해 놓고 한 번만 읽고 끝내면 아이는 또 이런 내 모습을 닮을 듯하다.

무얼 해도 처음만 하고 안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두렵게 한다.

다행히 같이 책 읽는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앞으로 필요한 건 꾸준히 하려는 내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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