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이 음식이 그렇게 생각나더라
봄날의 열무 쌈
그날은 유달리 따뜻한 봄볕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토요일이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평일보다 가벼워진 책가방을 메며 그 따뜻한 햇볕과 함께 뛰었다. 지칠 줄 모르는 햇볕과는 다르게 집이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떨어져 거의 걷는 수준이 되었지만 집으로 향한 그 설레는 마음만은 그대로였다. 집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있다는 그 말할 수 없는 뿌듯함. 보고만 있어도 한 없이 좋았던 엄마가 나를 반겨주기에 설레는 마음은 꺼질 수 없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쉽게 지을 수 없는 그 어린 날의 순박한 웃음을 짓고 엄마에게 저 왔어요를 알렸다.
"응, 그래. 상위에 점심 차려 놓았으니 밥 먹어라."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은 주말에 쉬지 않기에 토요일에도 나처럼 셀레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 병아리가 무사히 돌아옴을 확인 후 안도의 마음도 잠시 병아리들을 보살피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어미닭처럼 바빴다.
점심이 차려졌다는 말에 무슨 반찬이 있을까 기대를 하며 부엌으로 갔다. 상 위에 놓인 건 빨강 바구니에 촉촉한 물기를 먹어 풍성하게 몸짓을 키운 연한 열무잎 한가득과 풋고추 그리고 쌈장이 보였다. 쌈장은 직접 만든 된장과 고추장으로 만들었는데 한입 먹기는 쉬우나 먹기 전까지 무수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다. 좋은 콩 선별과 메주를 뜨기 위해 잘 삶는 것까지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게 없다. 그냥 콩 삶고 하면 안 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음식은 재료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묵은 콩과 햇 콩을 먹어보면 안다. 향과 맛부터 다르다. 삶는 과정은 어떠한가. 경험 없이 처음부터 성공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여름이면 콩국수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는데 덜 삶으면 콩 비린 네가 나고 많이 삶으면 고소한 맛이 덜하다. 끓이는 도중 하나씩 먹어봐도 어디에서 불을 꺼야 고소하게 삶아질까를 계속 고민한다. 콩국수도 이러한데 된장과 고추장 만드는 것은 어떠한가. 엄마는 해년마다 된장 고추장을 만드는데 한 번은 고추장을 저었다. 나의 팔 한뺌보다 큰 빨강 대야에 메주가루 고춧가루 찹쌀 죽 등을 넣은 그 대야를 저을 때면 쇠 국자가 한두 개씩은 부러지곤 한다. 이 힘든 과정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하신다. 그리고 그 된장과 고추장을 먹을 때면 올해는 장들이 맛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시곤 하는데 힘든 과정은 생각나지도 않은가 보다. 이리 정성 들인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다진 마늘과 설탕 매실청, 고춧가루, 깨 등을 넣고 완성된 된장은 예쁜 그릇에 놓은 대신 쌈장을 만든 그릇 통째로 놓여있다. 생각해보면 참 투박하다. 하지만 난 이 투박한 음식이 왜 이리 생각나는 걸까. 아직은 다 크지 않은 손으로 열무 잎을 두세장 올려 밥 한수저를 놓고 수저 끝으로 쌈장을 떠 밥 위에 올려 열무 줄기를 반쯤 접어 입에 넣고 씹으면 아삭한 소리와 함께 풋풋한 열무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기억하고 귀로 남기고 싶은 소리를 기억에 담는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감각. 바로 향이다. 코로 맡은 향도 있지만 음식에서의 진정한 향은 입이 기억하지 않을까 한다. 아삭함이 주는 풋풋한 향기는 이렇게 훌쩍 커버린 뒤에도 나를 따라다닌다. 아니 내가 따라다닌다. 잊을 수 없는 아삭함과 향기에 이어 쌈 한가운데에 있는 쌈장이 밥과 함께 섞이는데 고소함에 달달함의 맛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맛이다. 깔끔하면서도 깊이 있는 맛이 입안을 한없이 돌아다닌다. 어릴 적 나는 쌈을 먹을 때 입안이 터질 듯 한 쌈을 쌌다. 왠지 쌈은 그리 먹어야 쌈 먹는 것 같다고나 할까. 너무 큰 쌈을 조금씩 씹어서 다 넘기기 전까지 어릴 적 순박한 했던 때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 그 따뜻했던 봄날의 어느 날 엄마가 차려준 순박한 밥상 위의 열무 쌈을 먹던 그 시절로 미소 지으며 잠시 다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