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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의 꿈 Jul 12. 2020

실패의 연속 속에서 성장하는 나

누구나 힘든 시기는 한 번쯤 온다.

나의 20대 중반은 많은 아픔들이 있다.

그 아픔들은 모두 직장과 관련된다. 어쩜 그리도 일들이 풀리지 않을까 할 정도로 실패로 인한 좌절들의 연속이었다.


아픔의 시작은 첫 직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난 컴퓨터를 전공하여 IT 회사에 취업을 했다. 처음 제시했던 연봉이 입사 후 200 만원이나 낮았지만 다시 면접 보는 것도 힘들고 하여 수긍하며 다녔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들을 대거 해고 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의 이름은 올라가 있지 않지만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회사 들은 필요 없는 사람부터 자르기 시작하여 결국은 사라진다는 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 면접을 봤다. 사회 나오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하여 조금이라도 놀 수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회사를 알아보고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 이직의 뜻을 밝혔다.

여기서부터 문제 었다. 행동은 빨랐지만 첫 직장이고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나는 거절 잘할 줄 몰랐다.

차장님은 다시 한번 생각해라 하였고 상무님과 면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면담의 자리에서 난 나의 꿈들을 이야기하고 현재 회사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우리 회사도 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내공이 부족한 나는 퇴사를 하지 못 했다. 재미있는 건 이때 나의 퇴사를 말렸던 차장님은 한 달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6개월 뒤 회사는 나는 회사로부터 해고를 받았다. 그때 상무님과 다시 면담을 했는데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상무님이렇게 될 줄 아셨을 건데 왜 그때 붙잡아 뒀냐라고 따지듯이 물어보았지만 미안하다는 말 밖에 들을 수 없었고 난 회사를 배신감만 가득 안고 나와야 했다.


슬픔도 잠시 먹고살아야 하기에 두 번째 회사를 알아봤다.

두 번째 회사는 2명의 사람을 뽑았는데 인턴 3개월 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3개월 후 난 회사를 나왔다. 알고 보니 2명 중 한 사람만 채용할 계획이었다. 또 한 번의 아픔이었다. 첫 직장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망해가는 회사에서 제대로 된 일이 있었겠는가. 기술에 대해서는 배워보지도 못 하고 회사가 받아야 할 연체금 관련 전화만 열심히 했다. 업무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인턴 기간이 있는 회사는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바로 3번째 회사를 구했다.

주변에서는 회사를 빨리 구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이렇게 빨리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원금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 나와보니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들이 있었다. 이 돈들을 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회사를 구해야 했다. 회사 조건은 생각하지 않았다. 4대 보험과 가족 같은 분위기인 회사는 무조건 이력서를 넣었다. 내가 넣었던 회사들을 세워보니 100  곳이 넘었다. 취업에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력서 100곳에 넣어 보라 말하고 싶다.

3번째 회사에는 나름 인정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까지 일을 했다. 내가 취업했던 회사들은 모두 제품 관련 소프트웨어다. 즉 제품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펌웨어와 하드웨어 쪽은 잘 알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를 전공한 선배  집에 가서 새벽까지 물어보곤 했다. 2시든 3시든 해결책을 찾았고 회사는 이런 나를 인정해줬다.

하지만 나는 꿈이 많은 아이 었다. 좀 더 큰 회사로 가고 싶었기에 관련 업종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1차 합격을 했다. 그리고 난 회사를 그만뒀다. 이때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어이없게도 2차도 합격할 것 같은 자신감과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회사 면접 보는 게 미안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회사야 사업을 접내리막 길에 있었기에 다른 회사를 알아봤지만 3번째 회사는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람들과 좋은 추억도 많은 회사 었기에 그만두고 면접을 보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2차 면접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도중 3번째 회사와 협력 회사 었던 곳에서 스카우 제의가 왔다. 나름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잡고 싶었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그리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충격도 컸다. 자신감과 이상한 양심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나에게 다가와 쉬지 않고 질타를 했다.

쉬고 싶었다.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의 좌절은 나를 힘들게 했다. 밤마다 슬픔이 더욱 깊게 다가오고 그런 나를 술이 달래줬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걸 부모님이 아시면 걱정하는 것이 싫었고 고정적인 지출 비용으로 움직여야 했기에 다시 일어났다.


4번째 회사를 들어갔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나 그만두게 되었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회생활이 다 힘들지 왜 참지 못 하고 나오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험상 어느 쪽이든 다 맞는 말이다. 다만 고통은 사람마다 견디는 단계가 틀리기에 정답도 없다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뒤돌아봤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쩜 난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닐까. 그래 마지막 도전을 해보자. 이 마지막 도전을 하고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이 분야를 떠나 다른 분야를 찾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기업 경력직에 입사를 지원했다.

합격 가능성은 나도 모른다. 중간에 대기업에 입사 지원을 했지만 낙방으로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자신감은 없었다. 그러던 중 1차를 합격하고 2차 면접으로 프레젠테이션까지 보고 왔다. 2차까지 면접을 보니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기다림 끝에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현재 보류 중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최악을 생각하여 이 분야를 떠나면 하고 싶었던 영업과 마케팅 쪽으로 다른 회사에 지원했고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일에 적응하면서 하루를 보낸 어느 날 대기업에서의 합격 소식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쁜 소식은 나를 정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믿기지 않았다. 멈춘 자세로 읽었던 메일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모두 다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회사를 나오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이때 내 나이는 28살로 20대 후반에 들었다. 입사 후 1년도 못 지내고 퇴사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20대 중반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은 나도 모르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웬만한 일에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12년 차가 되었다.


한 번씩 20대 중반을 되돌아본다. 정말 힘들었던 경험들을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힘든 시기는 누구나 한 번씩 오는데 나는 그 힘든 시기를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경험했다고. 중요한 건 좌절에 멈추지 말고 계속 길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에 감사해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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