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느긋함을 곁에 둬도 좋다.
"오늘 저녁은 어제 먹은 청국장이 맛있었으니 다시 한번 끓어야지. 그럼 국산콩 두부를 사고 내일은 야근 할거 같으니 오랜만에 베이컨을 하나 살까? 그리고 주말에 애들이 짜짜로니를 맛있게 먹었으니 짜짜로니와 맵지 않는 스낵면으로 장을 보면 되겠다."
하루 일과 중 시간만 나면 저녁 메뉴를 생각한다. 아침 5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하여 저녁 12시가 되어서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나에겐 평일의 시간은 10분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잠시 쉬는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이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침대에 눕는 시간은 더 뒤로 간다.
저녁 메뉴를 정하였으니 빠른 걸음으로 마트를 향했다.
'빨리빨리 시간이 얼마 없네. 빨리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야 먹고 치우지.'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글까지 쓰고 싶으니 시간이 더욱더 없다. 예전에는 글 쓰는 게 생각에만 머물렸다면 요즘은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소재가 없을까 싶다가도 하루를 지내다 보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간다.
'잡아, 브런치 글쓰기에 잡아서 놓는 거야. 잊어버리지 않게'
오늘 야근을 할 예정이었으나 글을 쓰고 싶어 정시 퇴근을 했다. 그러니 정시 퇴근이 헛되지 않게 빨리 서둘러야지. 자주 가는 마트니 물품이 어디 있는지는 쉽게 찾을 수 있기에 빠른 걸음은 늦춰지지 않고 속도를 유지했다.
이제 계산하는 일만 남아 있어 줄을 서기 위해 계산대로 향하고 가장 짧은 줄이 어디인지 살펴본다. 각 계산대마다 한두 명씩 줄을 서있는데 한 곳의 계산대만 기다리는 줄은 없고 할머니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그 계산대로 가야 하지만 잠시 망설여진다. 계산하고 있는 손님이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두 명 줄 서 있는 곳 보다 더 늦어질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냥 그 줄에 서 있기로 했다.
할머니는 동전지갑 같은 곳에서 천 원짜리 지폐 5장을 세어보시는데 좀 전의 조급 했던 마음을 잠시 뒤로 물리고 천천히 기다렸다. 아니 느긋함을 마음 깊숙이에서 불러왔다.
'당근, 너는 항상 빠를 거 같니? 그리고 부모님은? 부모님이 천천히 계산하는 모습에 뒷사람이 조급하게 하면 아마 속이 많이 상할 거야? 그렇지? 넌 언제부터 그리 느긋함이 없어졌니? 참 안타깝다. 이 순간만이라도 느긋해 지자. 그래 봤자 몇 분 아니잖아.'
할머니가 계산하는 동안에 마음속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갔다. 난 정말 언제부터 느긋함이 없어졌을까? 현재 생활이 바쁘게 움직여야 유지된다. 한 발짝 여유를 두면 두 발짝 뒤로 갈 거 같아 빠른 걸음과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살아가다 보니 생활은 유지됐지만 내 곁에서 모습을 감춘 존재가 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가장 찾고 싶은 존재 느긋함. 지금은 너를 오래 둘 수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시간 내어 너를 찾아 갈게. 반갑게 맞이 해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