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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May 02. 2020

4일간의 프랑스 탈출기 – 브장송에서 파리 가기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23킬로가 넘는 하얀 캐리어를 들고, 10킬로가 넘는 가방과 터질 듯한 힙색을 메고 있었다. 계단 앞에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프랑스를 떠나는 첫 관문은 4층에서 1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이 긴 고난의 길이 빨리 끝나기를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면서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무겁지만 계속 내려갈지 아니면 조금 쉬었다 갈지 고민하며 땀 흘리는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 한국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화창하다 못해 더운 날씨와 무거운 캐리어

 날씨는 굉장히 화창했고 더웠다. 같이 귀국하는 친구들을 만나 기숙사 키를 반납했다. 그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나누어 받았고, 태국 친구에게 부탁해서 얻은 비닐장갑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줬다. 하지만 이런 보호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감염될까 긴장했다. 한 시간쯤 지나 버스 한 대가 왔다. 마스크를 쓰고 손잡이를 최대한 잡지 않은 채 비오뜨(viotte)역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택시를 타고 프랑슈콩테(Franche-Comté) 역으로 가야 했다. 그전에 물을 사기 위해 잠시 역 안으로 들어갔다. 물을 사고 역을 나가고 있을 때 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물을 달라는 듯했다. 그래서 “물은 여기서 사시면 돼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 건 그게 아닌 듯 말을 이어갔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자꾸 가까이 오자 같이 들어온 듯한 남자분이 이분의 접근을 저지했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동전 몇 개와 물을 건넸다. 그러자 자기가 아이를 낳았는데 돈이 없어서 길에서 지내고 있다며 옷을 젖혀 배에 있는 선명한 제왕절개 자국을 보여줬다. 그녀는 호텔비로 50유로(약 6만 원)를 요구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긴장, 낯선 이에 대한 불신 그리고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 이타심을 압도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요. 그리고 빨리 기차를 타러 가야 해요.” 얼른 동전 몇 개와 물 한 병을 다시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물은 돌려주고 돈을 가져갔다. 감염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물병은 손소독제로 닦았지만 찝찝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불편한 마음을 갖고 파리행 테제베를 타려고 프랑슈콩테 역으로 갔다.


택시 타러 온 비오뜨역, 이때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역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로 이곳이 시계로 유명한 브장송이라는 걸 상징하는 큰 시계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모든 짐과 머리부터 장갑 위까지 소독하며 2시간을 기다리고 30분의 연착 시간을 더 감내한 후에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기차표를 예약할 때 좌석을 고르지 않은 죄로 자리는 이 층으로 배정됐다. 기숙사에서 가지고 내려온 모든 짐을 들고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자리에 앉자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창밖 풍경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기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엔 성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 한가로운 넓은 목장에서 쉬고 있는 소 떼 그리고 130% 식량 자급률을 자랑하듯 광활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아름답지만 비슷한 풍경을 계속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고 기차는 어느새 브장송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디종(Dijon)에 정차해 있었다.


테제베 타러 온 프랑슈콩떼 역 그리고 브장송의 명물 ,  시계 !

 

디종역에 정차한 기차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송으로 문제가 발생해서 빨리 해결하겠다고 했다. 두통이 왔다. 한 승객이 역무원에게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의 답변에 모르는 단어가 있었다. 얼른 사전 앱을 열어 발음 나는 대로 썼다. 그러자 ‘malveillant(악의를 가진)’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기차를 못 가게 막고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내에서 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이유야 어쨌건 40분을 한 역에 멈춰있었다. 오랜 정차가 꽤 지루했는지 뇌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황은 프랑스 남성이 내게 길을 물어보는 상황이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고 싶었고, tourner à droite라는 표현을 썼다. ‘어! droit가 오른쪽이네?’ 이 질문과 함께 나만의 가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이 옳은 쪽에서 파생된 단어라면 droit도 프랑스어로 '올바른'이라는 뜻이랑 오른쪽이라는 의미 둘 다 있으니까 똑같은 원리네!! 심지어 영어도 오른쪽이 right야.’ 나만 재밌는 이 생각은 결심으로 이어졌다. ‘세상엔 아무런 대중에 의해 논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지식이나 관념이 많을 거야. 이런 집단의 관점이 나와 내 행복을 억압하면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돼야지.’ 상상이 끝나니 기차에 앉아서 피곤해 죽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 생각하는 걸 보면 전공 하나는 불어와 영어로 잘 선택했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마침내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디종 역에서 이 상태로 40분 넘게 있었다ㅠㅠ
창 밖으로 본 평화로웠던 프랑스의 풍경


 2시간 정도 지나고 드디어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미리 택시보다 우버가 더 싸다는 정보를 알았기에 택시가 필요하냐는 물음을 다 거절했다. 역을 거의 다 나갔을 무렵, 우버를 부르기 위해 잠시 멈췄다. 한 흑인분이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자기는 우버 기사라며 목적지를 물었다. 공항 근처 호텔로 간다고 하니 80유로를 달라고 했다. “아니, 저번에 50유로에 타고 파리 시내까지 왔는데 무슨 말이에요? 우리 요금 다 알고 왔어요.”라고 받아쳤고, 기사님은 순순히 60유로만 내라고 했다. 마음 같아선 더 깎고 싶지만, 코로나로 시기도 시기이고 너무 지쳐있었기에 함께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택시를 타기 바로 전, 노파심에 한 번 더 물어봤다. “60유로 맞죠?” 아저씨는 65유로라고 했고 난 우리 형제 아니냐고 되지도 않는 친근감을 이용해 60유로로 요금을 맞췄다. 기사님은 출발하자마자 형제 사이에 5유로 정도 더 줄 수 있지 않냐고 하면서 65유로를 달라고 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저씨는 또 우리 짐이 너무 많다며 5유로의 추가금액을 요구했다. “아니, 아저씨. 아까 우리 짐 다 뻔히 보고 요금 정한 거잖아요. 왜 이제 와서 딴소리에요!!!!!”라고 하며 폭발했다. 가격은 다시 60유로가 되었다. 피곤함과 프랑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파리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며 갔다. 기사 아저씨는 심심했는지 스피커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통화 내용은 듣고 싶지 않아도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그 내용에는 어마어마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얼마 전에 아팠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이 코로나 환자가 많은 파리이기에 더 걱정됐다. 그가 종종 사용하는 침 잔뜩 튀기며 입술 사이로 ‘푸’ 소리를 내는 프랑스식 제스처에 짜증과 긴장이 같이 올라왔다. 전화를 끊고 그는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가 퇴원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앞자리에 앉아있었기에 그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 좀 그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침묵 속에 호텔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타 본 택시 중에 가장 내리고 싶었던 택시였다.


드디어 도착한 파리 리옹역과 택시 안에서 본 파리

 다행히 호텔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다. 미리 챙긴 빵과 사과 그리고 같이 온 친구에게 받은 요거트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 공항에서 9시간 기다리면서 먹을 음식을 사러 갔다. 마트를 가며 마을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파리 외곽에 있는 마을이어서 그런지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집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가족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숯불구이 냄새는 동네에 은은히 퍼졌다. 그리고 소박한 마을 성당과 작은 시청 그리고 아기자기한 조경까지 완벽한 동네였다. 하지만 이 동네도 여느 프랑스 마을처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쉽지 않았다. 니스에서 또 파리에서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아름다움과 깨끗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길에 개똥이 너무 많았다. 한참 마을을 감상하면서 걷다 보면 딱딱한 게 밟혔다. 그럼 물컹하지 않음에 감사하고 가던 길을 가야 했다. 평소라면  짜증 났겠지만 노을이 지고 있었고 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교환학생 끝자락에서 지극히 프랑스적인 마을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산책을 하며 결국 마트 문은 닫혀 있어서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내일 다시 물건을 사러 오기를 기약하고 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만끽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내일은 부디 아무일 없기를 바라면서.

조용하고 편안했던 호텔 근처 마을
아기자기한 조경과 닫힌 마트
아담한 시청과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프랑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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