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bino May 18. 2020

4일간의 프랑스 탈출기 –  한국행 비행기 타기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다사다난하게 브장송에서 파리 근교 호텔로 오면서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길 바랐다. 날씨는 너무 좋다 못해 살짝 더웠다. 호텔 근처 마트가 열어 공항에서 먹고 마실 것들을 충분히 살 수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손 소독제도 구할 수 있었다. 나의 바람 덕분인지 아침에 하는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장보고 약국가면서 본 마을 풍경

 짐을 다 챙기고 오늘 산 음식들을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공항을 가기 위해서 호텔 1층으로 향했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쇼핑백이 저절로 쭉 찢어지며 안에 있던 음료수, 물 그리고 마들렌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급하게 찢어진 부분을 막고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리셉션에 있는 직원에게 “여기 봉투 없어요?”라고 물었고, 몇 분 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지내는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연속이다. 또한 삶이 주는 당근을 먹고 채찍을 맞으며 우리 삶에도 분명히 복선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의 복선은 찢어진 쇼핑백이었다. 

찢어진 쇼핑백....

 호텔을 나와 우버를 불렀다. 잡히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택시는 4분 만에 시야에 들어왔다. 차가 다가올수록 나와 한국에 같이 가는 두 명의 친구는 차도 쪽으로 나갔다. 택시는 운전기사님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다. 그러자 기사님은 우리를 보고 연신 손을 내저으셨다. 탑승 거부를 의미하는 듯했다. 우버는 섰고 기사님은 창문을 내렸다. 나의 “우리 짐 많아서 못 탄다는 거예요?”라는 물음에 아저씨는 미안하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태워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버 앱에서 밴을 부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택시는 떠났다. 3명이 엄청나게 큰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모두 백팩을 메고 있는 상황에서 승용차를 불렀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이 실수의 대가로 우버 앱은 수수료 9유로를 가져갔다. 우버에 밴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9유로를 쓴 뒤에 우리는 무사히 공항에 갈 수 있었다. 

한산한 공항(그래도 자리는 많이 없어서 빨리 가는게 좋습니다!)과 얼마 없는 출국 비행기편
공항에서 내 식탁이자 베개였던 캐리어

 공항에 도착하고 약 8시간에 걸친 기다림이 시작됐다. 비행기가 오후 9시에 출발하는데 호텔 체크아웃이 12시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시쯤 도착했을 때도 이미 한국인들이 공항에 꽤 있었다. 수속을 밟기 전까지 5시간 정도 기다릴 장소를 골라야 했다. 우리가 잡은 자리는 데스크에서는 멀었지만, 화장실은 가까웠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당이 떨어지면 친구들과 서로 가져온 과자를 나누어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노숙인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공항 근처에 있던 분들이 다 공항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그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나도 짐들을 좀 더 안전하게 안쪽으로 놓은 뒤에 가방끈을 팔에 끼고 캐리어에 엎드려 잠을 잤다. 자고 먹고 떠들고 화장실 가고 손, 가방 소독하고를 무한 반복하니 6시가 되어 비행기를 타러 갔다. 공항 검색대에 가니 공항 직원이 엄청 짜증이 나 있었다. 마치 “여기 빼야 하는 물건 다 써는데 왜 빨리빨리 안 빼고 있어, 이 멍청이들아!”라고 치는 듯했다. 이 공항 직원의 불호령에 나도 얼른 가방에 있던 노트북을 뺐다. ‘아씨, 백팩 터질 때까지 넣어서 이거 빼면 나중에 어떻게 넣으라고.’ 그리고 벨트까지 풀고 나서야 검색대를 지날 수 있었다. 노트북을 안간힘을 다해 밀어 넣고 ‘설마 부서지진 않았겠지?’라고 걱정을 하며 출국 심사를 하러 갔다. 출국 심사장엔 한 남자분이 출국 심사장을 통과하는 사람 수를 통제하고 계셨다. 그는 마침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프랑스 온 지 얼마나 됐어요.” 

“3 달이요.” 

“프랑스어 배우러 왔어요?” 

“네, 근데 생각보다 너무 금방 돌아가게 돼서 프랑스어가 많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쉽겠네요.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와서 공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때 봬요!”

“네, 그때 봬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이 짧은 대화가 담고 있는 친절함으로 지치고 힘든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시 프랑스에 올 때는 프랑스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공부를 하겠다며 다짐하며 탑승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드는 시원섭섭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며 브장송 기숙사에서 공항까지 오면서 바짝 든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마스크가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고 눈은 점점 감겼다. 책도 읽고 글도 끄적여볼 생각이었는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프랑스를 떠나는 아쉬움과 슬픔은 피곤함에 압도되어 나에게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결국 잠이 들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기척에 잠이 깼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줄을 서고 있었고 나는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탑승 행렬에 합류했다. 

 비행기 복도 쪽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옆에 아무도 없어 안심했고, 난생처음으로 누워서 한국까지 갈 수 있어서 설렜다. 비행기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 9시쯤에 창가 쪽에 앉아 있는 커플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봤다. 프랑스는 붉은 노을로 아름답게 타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쯤엔 세상은 이미 검게 타 적막이 가득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이렇게 나의 프랑스 교환학생은 끝이 났다.  


비행기 기내에서도 바이러스 조심 !



작가의 이전글 4일간의 프랑스 탈출기 – 브장송에서 파리 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