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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May 27. 2020

4일간의 프랑스 탈출기 – 콧물의 저주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며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으로 파리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렇게 귀국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은 조금이라도 빨리 안전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 또한 밀폐된 공간에서 약 12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두려움과 드디어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강국이자 가족이 있는 한국에 간다는 설렘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영화 ‘코코’를 보고, 기내식을 허겁지겁 먹은 뒤 잠이 들었다.

코로나 터지고 처음 먹는 남이 해준 한국음식! 너무 맛있다...... 야무지게 비빔밥에 미역국 두숟갈 넣어서 비벼먹었다 ㅎㅎㅎ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다. 승무원분들이 세관 신고서와 건강 상태 확인서를 나누어주고 계셨다. 건강 상태를 체크하며 괜히 아픈 느낌이 들었다. 증상 없음에 빠르게 체크해 나가다 한 문항에서 멈췄다. ‘콧물’ ‘아, 이거 애매한데.’ 사실 난 비염 때문에 콧물이 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콧물이 나긴 나니까 ‘증상 있음’에 체크했다. 옳은 선택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한국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잘못 쓴 부분은 없는지 아까 받은 종이들을 살펴보았다. 콧물 칸에 ‘증상 있음’을 체크한 게 여전히 눈에 걸렸다. 고민 끝에, 코로나와는 상관없는 증상인 듯하여 다시 ‘증상 없음’에 체크했다. 결국 콧물에 ‘증상 있음’과 ‘증상 없음’이 둘 다 체크된 채 한국 땅을 밟았다. 

미친 듯이 계속 손소독제 바르며 한국 가기/무사히 한국 도착!

 많이 잤는데도 피곤했다. 공항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무빙워크를 타고 한참을 가니 공항 검사소가 나왔다. 직원에게 건강 상태 확인서를 내밀었다. 

“여기 콧물 문항을 왜 ‘증상 있음’에서 ‘증상 없음’으로 고치셨어요?”

“저 만성 비염이 있어서 콧물이 항상 나서 코로나랑 관련 없는 듯해서요.”

“어디서 오셨어요?”

“프랑스요.”

“프랑스는 고위험 국가여서 증상이 하나라도 있으시면 검사받고 가셔야 돼요. 저기 사람들 줄 서 있는 데로 가시면 안내해 주실 거예요.”

공항 직원이 탁월한 판단을 하셨고 난 유증상자로 분류됐다.

 거기에는 유증상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무척 예민했다. 살기 위해 귀국까지 했는데 코로나에 감염됐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10분 남짓 기다린 후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열을 쟀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귀국하기 전에 무슨 도시 방문하셨어요?”

“브장송이랑 파리에 있었어요.”

“여기 종이에 도시 이름 다시 한번 적어볼래요?”

난 파리와 브장송을 적었다. 그러자 강한 경상도 억양을 쓰시던 그분은 진찰지에 또박또박 내가 방문한 도시를 적으셨다. 

‘브장승’

그 단어를 읽자마자 경상도 사투리로 음성 지원되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피곤했던 마음이 살짝 들떴다. 진찰을 마친 후 코로나 검사를 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대기 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자가 격리에 필요한 앱들을 깔았고 검역 확인증을 받았다. 그리고 증상이 없어 공항 밖으로 먼저 나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나 유증상자로 분류됐어. 먼저 가.” 다른 친구들은 거주지별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먼저 출발했다.

 체감 상 1시간은 넘게 기다린 듯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해 주시는 공항 직원, 공무원, 군인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 대기 인원이 점점 많아지자 유증상자들은 두 줄로 짐을 찾으러 갔다. 이미 나와 있는 짐을 끌고 공항 건물을 빠져 나갔다. 거기에 관광버스가 한 대 있었고 우리는 그 버스에 탔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우리를 인솔해 주셨던 군인 분이 무심하지만 진심을 꾹꾹 담아 “다들 건강하십쇼!”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 말 한마디로 진짜 우리나라에 왔고 보호받는 느낌을 받아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버스는 우리를 인천 공항 검역소로 데려갔다. 드디어 아프기로 악명 높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버스에서 내렸다. 먼저 내린 사람들이 검사를 끝낼 때까지 잠시 버스에서 내려 기다린 뒤 검사를 했다. 먼저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입을 벌렸다. 긴 면봉이 들어와 평소에 닿지 않는 깊은 어딘가를 건드리자 ‘컥컥’ 기침이 나왔다. 그리고 마스크로 입까지 가리자 코로 엄청 긴 면봉이 들어왔다. 몸이 정한 외부 물질 접근 금지 표시를 무시하고 더욱 깊이 들어왔다. 결국 눈물이 흘렀다. 억울했다. 소문만큼 아프지 않았음에도 울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비염 때문에 자주 병원을 갔는데 그때 기계로 코 빼는 것보다 덜 아팠다. 눈에 손을 대지 못해 눈물을 닦지 못한 채 빨리 마르길 바라며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는 공항 근처 호텔로 우리를 데려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얼른 짐을 찾아 호텔 안에 들어가 도시락을 받았다. 한국에서 먹는 첫 한국 음식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명씩 타고 올라갔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씻고 몸을 뉠 곳에 들어온 것이었다. 안도감과 이렇게 철저하고 친절하게 입국자들을 맞이해주는 정부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캐리어와 백팩 그리고 힙색을 소독하고 노파심에 소독약으로 침대, 화장실, 방을 소독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얼른 샤워를 하고 도시락을 영접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도시락을 순식간에 마셔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더 힘든 여정이었지만 진짜 한국 오길 잘했다.’ ‘프랑스 갈 때 이루고자 했던 걸 한국에서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자정이 되었고 배가 고파졌다. 프랑스 시간으로 저녁 먹을 시간인 것을 몸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난 우리나라 정부에게 간식까지 요구할 순 없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에 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과분했던 룸 컨디션 ! 모두 감사합니다 :)


ps. 혹시 입국 과정을 몰라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자차 이용 안 하고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시차 때문에 밤에 배고플 수도 있으니 과자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 가져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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