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bino Apr 21. 2020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많은 사람이 그렇듯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실력을 갖추려고 교환학생을 왔다. 프랑스에서 1년간 공부하며 프랑스어 자격증 델프 b2, c1도 따고, 학부에서 문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유럽을 배낭여행하며 다름을 느끼며 문화를 이해하고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사고를 하고 싶었다. 처음 도착해서 시차 적응하느라, 하루 루틴 만든답시고 6시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다짐 일기 쓰고 운동하느라, 또 안 들리는 불어 수업을 안간힘 써가며 하나라도 더 이해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엔 인사하고 떠들 친구들이 있었고, 하루 종일 프랑스어에 시달리다가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 하러 주방에 가면 피곤함과 일상을 나눌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유럽에 상륙해 프랑스에 있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학교가 무기한 휴교 상태가 되고, 자유로운 이동이 금지되면서 소소한 재미가 있었던 일상은 사라져 버렸다.

프랑스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겪은 고군분투가 녹아있는 브장송
겨울방학에 일주일 간 떠난 니스, 에즈, 모나코, 망통 - 이때 안 갔으면 여행 못 갈 뻔했다,,,

 기숙사의 크기는 9제곱미터이다. 이곳에서 자고, 씻고, 먹고, 운동하고, 수업 듣고, 숙제해야 했다. 처음에는 학교 가지 않아도 되고 마음대로 누워있을 수 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은 일이 있다가도 금방 불안해지고 가슴이 답답했다. 처음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교환학생을 하면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이다. 불안할 바에 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 짜증 났다. 이렇게 더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잘 해소되지 않고 거기에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더해져 숙제하려고 앉으면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맺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했다. 이렇게 힘들 때, 산책과 운동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아지기도 했지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멈추기는 역부족이었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준 자연
이동 금지령 내려질 때만 해도 추웠는데 어느새 봄이 와 있었다!!

 얼마 전, 프랑스 대통령이 5월 11일부터 점진적으로 이동 금지령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듣고 무서웠다. 프랑스 정부도 나름의 대책을 가지고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겠지만 더는 이들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는 자기들은 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Nous sommes prê̂ts. (우리는 준비됐다.)” 무슨 준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우리가 생각한 준비는 아니었다. 4월 16일 2시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는 십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는 18000명에 육박한다. 부족한 진단키트와 병상이 초래한 결과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코로나에 걸려도 검사와 치료를 받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기숙사 단지 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파티하고, 밤새 좁은 방에 모여 떠들고 또 주방은 공용이다. 그리고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 명의 확진자만 나와도 기숙사 전체가 위험하다. 이러한 감정적인 이유와 현실로 프랑스에 온 지 100일이 채 안 돼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프랑스적인 걸로 가득 채운 밤 - '미드 나잇 인 파리' '레드 와인' '치즈' '밤잼'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3달을 좀 넘게 지낸 기숙사에 그새 정이 많이 든 듯하다. 수 없이 반복하는 일이지만 정든 무언 갈 떠난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도 떠나야 하는 현실과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은 내면의 균열을 일으켰다. 그 균열이 만든 진동으로 마음은 간지러웠고 슬펐다.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다. 설렘과 답답함이 공존했고 또 슬픔이 지배하는 그런 감정이었다. 마침 책상 위에 먹다 남은 화이트 와인이 있어 얼른 한 모금을 마셨다. 와인이 잠시나마 그 균열을 메웠는지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현실과 내면의 바람의 격차를 메꿔 준 달달한 화이트 와인

 이번 교환학생은 어찌 보면 실패한 경험이다. 목표한 결과를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분명히 성장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는 라면이랑 김치볶음밥 밖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냄비 밥도 진짜 맛있게 할 수 있고 떡꼬치, 떡볶이, 돼지고기 두루치기, 고추장찌개,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등을 할 수 있어 혼자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뚜렷한 취미가 없어서 방에만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잡생각 없이 집중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무언 갈 꼭 찾을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이루고자 하는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이유를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는 즐기고 감내해야 한다. 자기 의지대로 선택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도 굉장히 감사한 사실 임도 느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간이 한없이 작게 보였다. 이때 당연한 사실이 뇌리에 박혔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이 깨달음은 세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고, 그에 대한 결과는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결과도 중요하지만, 어제보다 성장하기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교환학생으로 더 넓은 세상을 생각만큼 많이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삶에 꼭 필요한 사실은 알게 되었다. 이 작은 깨달음이 앞으로 계속될 도전에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청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먹을 만한 파스타들 !
유튜브 없었으면 굶어 죽을 뻔했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많은 노력과 꿈이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코로나가 우리를 더욱 불확실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음에도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시는 분들 응원하겠습니다!!! 


밝은 세상이 잠깐 어두운 내면을 밝힐 순 있지만, 결국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밝힐 수 있는 건 자신 뿐인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멍청하지만 치즈는 먹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