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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Apr 08. 2020

멍청하지만 치즈는 먹고 싶어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프랑스에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새삼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라는 걸 느낀다. 코로나가 창궐한 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엔 2000~3000명만 늘어도 금방이라도 감염될 듯해서 스트레스받고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5000명이 넘게 늘어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공포감을 느끼진 않는다. 필요 이상의 압박이 사라지니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입맛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기가 먹고 싶었고, 돼지고기를 먹으면 소고기가 먹고 싶어 지곤 했다. 하지만 장바구니를 대부분 양파, 마늘, 쌀, 감자 등 생존에 필요한 음식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제는 입맛이 뇌에 '여기는 프랑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했다. 기숙사를 벗어나 진정한 프랑스가 있는 마트 치즈 코너로 가라고 명령했다. 어제 산책 하느라 써 놓은 ‘이동 허가서’도 있었고 마침 음식도 떨어져 여행을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이성이 갑자기 돌기 시작한 입맛에 잠식당했다고 해도 확진자가 6만 명이 넘은 상황에서 마스크는 꼭 써야 했다. 혹시 모를 경찰의 검문이 있을 수 있는 대비 해 여권과 날짜랑 시간을 오늘로 바꿔 놓은 ‘이동 허가서’를 챙겼다. 17일 만에 가는 마트였다. 가는 길엔 전에 보지 못했던 꽃이 많이 펴있었다. 봄을 만끽하는 즐거움과 ‘혹시나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경계심을 느끼며 마트로 향했다.


코로나랑 9시에 지는 해만 빼곤 완벽한 프랑스에서 맞이한 봄!
티 안나게  날짜, 시간 고치기 실패 했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ㅋㅋㅋ


 마트는 분비지 않았다. 양파와 대파 그리고 멜론 등을 사고 치즈 코너로 향했다. 얼핏 스쳐 지나가면서 본 파스타 칸은 텅 비어있었다. ‘에이 설마 치즈를 그렇게 사갔을라고.’ 생각과 달리 걸음이 빨라졌다. 매대 앞에 도착하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치즈가 별로 없었다. 사려고 계획한 치즈는 4가지였다. 첫 번째 치즈는 콩테(Comté) 치즈였다. 내가 지내고 있는 도시인 브장송이 속한 프랑슈콩테의 지역 특산물 치즈여서 그런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치즈는 생탈브레(saint albray)였다. 스페인 국경 근처인 아키텐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즈고 냄새는 나지만 부드러운 속을 빵에 발라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치즈는 브리(brie)였다. 파리가 속해있는 일 드 프랑스(Ill-de-france)에서 만들어지는 치즈이고 냄새가 적어서 치즈를 처음 먹기 시작하는 사람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치즈를 가장 기대했다. 바로 ‘Caprice des dieux’, ‘신들의 변덕’이라는 치즈다.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이름도 재밌어서 먹어보고 싶었다. ‘신들이 변덕을 부렸으면 얼마나 부렸을까’하고 말이다. 감히 신들의 변덕을 미천한 잣대로 판단하려고 해서 그런지, 결국 brie와 Caprice des dieux를 찾지 못했다. ‘혹시 눈에 뭔가 씌어서 못 봤거나, 비루한 불어 실력으로 혹시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치즈 코너를 수차례 왕복했다. 불안해하던 눈이 ‘saint’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혹시 저건가’ 장 볼 리스트에 치즈 이름을 불어로 적었어야 되는데 한국어 발음으로 적어놨기에 한 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한국어 발음조차 이상하게 적었다. ‘샹탈리에’라고,,, 그 치즈를 자세히 보니 ‘Saint Albray’라고 쓰여있었다. 아무리 불어를 못해도 읽을 순 있었다. 생탈브레(쌩딸브ㅎ헤). 내가 사려는 게 이 건지 확실하지 않았다. 애처롭게 홀로 덩그러니 남은 치즈가 자기가 그 치즈 맞다고, 얼른 가져가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꼭 그 치즈가 아니어도 맛있을 수도 있다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장바구니에 치즈를 던졌다.


간신히 구한 생탈브레/ 장보러 갈 때 프랑스어로 써 가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ㅎㅎ

 장을 보고 나왔다. 순간 머리에 뭔가가 빠르게 스쳐갔다. ‘아!!!!!!! 어제 이동 증명서에 산책하러 간다고 적었는데!!!!’ 지금 프랑스에서 외출하기 위해서는 이동 통행증을 써야 하는데 외출 이유도 표시해야 한다. 산책은 주소지에서 1km 이내로 가능하고 1시간 이내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난 지금 생필품을 사러 나와 있고 이미 외출한 지 1시간이 막 넘었다. 프랑스는 현제 경찰 10만 명이 이동 통행증을 불시 검문하는 중이고 걸리면 벌금으로 38~135유로를 내야 한다. 멍청하게 치즈 사러 간다고 들떠서 여러 생각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경찰한테 안 들키고 집에 가야 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 지나가는 차들이 한순간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방금 산 성 알브레(Saint Albray) 성인에게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불분명한 성 알브레 성인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 무사히 경찰을 만나지 않고 방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고도 벌금을 안 냈다는 건 기적이다.

이번주 장 본 물건들/ 드디어 영접한 프랑스 멜론 - 대학와서 일학년때 불어 관사 배울때 멜론 엄청 많이 나와서 저거보면 관사 밖에 생각안난다 ㅎㅎ


 기숙사로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가 재빠르게 짐 정리를 하고 얼른 생탈브레(Saint Albray)를 꺼내 비스코트(biscotte)에 발랐다. 대충 펴 바르고 얼른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치즈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너무 과분한 맛있다. 냄새는 살짝 나지만 그런 냄새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 치즈를 먹는 순간만은 모든 스트레스, 걱정이 사라졌다. 물론 다 먹고 숙제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두통이 왔지만 그 순간은 너무 행복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번 학기만 하고 한국 돌아갈 수도 있으니 얼른 더 많은 치즈를 먹어봐야겠다.           

진짜 다들 이렇게 꼭 먹어보세요 !!!

ps. 치즈 먹는 법 - 냄새에 쫄지 않는다. 냄새는 강해도 맛은 괜찮은 것도 있다. 일단 입에 넣자 냄새가 치사량을 넘기면 과감하게 뱉고 살만하다 싶으면 참고 먹는다. 그럼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 듯하다. 참고로 나도 카망베르를 먹기 시작한 지 1주일밖에 안됐다 ㅎㅎㅎ 처음에 먹고 ‘아 이거 버릴까,,,’했는데 돈 아까워서 먹다 보니까 맛있어졌다! 계속 먹어보면서 두드러기는 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도 치즈를 먹을 때 중요한 것 같다.

이럴 때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 바로 치즈 올리고 잼도 발라먹기 ~/ 저기 저 납작한 치즈가 콩떼 치즈다. 좀 쓴 맛이 있는데 나름 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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