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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Mar 23. 2020

코로나 이동 금지 중 익숙함을 새롭게 보다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이동 금지령이 내려진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확진자가 16000명이 넘었고 사망자가 674명이지만 조용한 방안에 있으면 이 숫자가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웅웅 거리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음이다. 삐 소리 날만큼 적막하지 않다는 게 참 다행이다. 이 고요한 5일은 여행, 사람 그리고 책으로만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긴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동금지령이 선포되고 가장 좋아하는 시간, 쓰레기 버리러 가는 시간 ㅎㅎㅎ/ 5일만에 나가기 !

 현실감 제로인 방 안에서 내면에 내재된 가장 강력한 욕망이 무엇인지 느꼈다. 난 세상에서 언어를 가장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언어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언어가 더 큰 세상, 그리고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기에 배우고 있다. 그래서 언어 공부가 재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평소에 흔히 들을 수 없는 단어인 ‘바이러스’를 많이 듣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바이러스와 추억은 단출했다.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에 바이러스를 ‘비루스(virus)’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프랑스에 와서 여기서는 ‘비ㅎ휘스(virus)’로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기뻤다. 뭔가 기존의 진리를 깨고 더 큰 세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뼈 속까지 문과였던 나는 변했다. 본 투비 문과인 내가 바이러스에 관해 찾고 지인에게 묻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바이러스던, 비루스던, 비ㅎ휘스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발견한 정보 중 가장 이과스러웠던 것은 ‘바이러스는 두 가지 선택을 하는데, 치사율을 높이고 전염성을 낮출 것인지, 아니면 치사율을 줄이고 전염성을 높일지 결정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정보를 찾아 헤매는 자신을 보고 생각했다. ‘나 진짜 살고 싶구나.’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생존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깨닫고 며칠이 지났다. 하루 종일 같은 곳에서 자고, 운동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넷플릭스 보며 시간을 보냈다. 집 안에 있기가 답답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환기를 하고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날이 반복되니 바람의 온도와 태양의 위치가 변하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세상은 짙은 파란색이고 수많은 새소리와 함께 얼음장 같은 바람이 방 안으로 훅 들어온다. 오후 3시쯤엔 방안을 작렬하는 태양이 기숙사가 다 타버릴 듯해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기분 좋은 봄바람이 방 안을 슬며시 들어온다. 한참 숙제를 하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세상은 어두워져 있고 산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다. 하늘은 주황색이었다가 점점 짙은 자주색으로 변하다가 마침내 깜깜해진다. 그리고 공기는 다시 얼어붙는다. 이렇게 하루와 동행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그동안 서로 다른 수많은 순간이 이루고 있는 하루를 밤과 낮이라고만 불렀다는 사실이 너무 한심했다. 하루는 낮과 밤만으로 정의하기엔 다채롭고 살아있다. 인간은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 이상으로 사고할 순 없지만 때때로 그 이상의 것을 느끼곤 한다. 

화창한 오전 하늘/ 더워죽는 오후 2-3시
브장송 살면서 제일 행복할 시간, 노을 볼때

 

5일 동안 칩거 생활을 하며 ‘처절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간간히 우리가 쓰는 언어를 내려놓고 무언 갈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넷플릭스에서 ‘킹덤’을 3일 만에 다보는 바람에 이제 볼 게 없어서 심심해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뇌가 깨달음을 준 듯하다. 앞으로도 재밌는 새로운 넷플릭스 시리지를 찾아 헤매고 방 안에서 ‘오늘은 뭐 새로운 거 없나?’하면서 어슬렁거리면서 창밖도 꾸준히 봐야겠다. 작은 이벤트들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불어 더빙/자막으로 봐서 내용은 정확히는 모르는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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