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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an 26. 2020

세상에 던져지기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대부분의 시작은 불쌍하고 보잘것없다. 나의 프랑스 교환학생 생활의 시작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3일간의 꿈만 같았던 파리 여행을 끝내고 TGV로 3시간 반을 달려 브장송에 도착했다. 날씨는 우중충 했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패딩 모자를 썼지만 이내 곧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벗어던진 채 비를 맞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조교 누나가 그려준 약도와 파리에서 만난 같은 과 친구의 도움으로 기숙사 근처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비탈길을 20킬로가 훌쩍 넘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와 땀에 흠뻑 젖은 채 기숙사 접수처에 도착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보여서 거기로 갔다. 내가 가기만 하면 알아서 다 해주실 줄 알았는데 처음엔 신경도 안 쓰시다가 자신이 하던 일을 다 끝내고 나서는 빤히 쳐다만 보고 계셨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결국 “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대답하셨고 난 알아듣지 못했다. 비루한 불어 실력으로 처음 듣는 할머니 억양의 불어를 이해하기란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다. 전략을 바꿔서 서류로 대화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에서 복사해온 입학 허가서를 내밀었다. 일이 처리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알아듣는 단어가 나왔다. “photo” 얼른 사진을 꺼내 내밀었더니 다시 일처리가 재기되었다. 그 후 “signature”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고 얼른 서류에 사인을 한 후 기숙사 방 열쇠와 와이파이 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브장송의 첫인상

기숙사 건물에 들어왔다. 방은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옆엔 25킬로에 육박하는 28인치 캐리어가 있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올게 뻔 한 외국인 학생이 대부분인 기숙사에 엘리베이터 없이 건축 허가를 내준 프랑스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오후 3시 반 정도 되었고 11시 20분 기차를 타느라 아침밖에 먹지 않은 상황에서 힘이 나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캐리어를 두 손으로 힘껏 들고 올라갈 때마다 내면에 있던 나쁜 것들이 모두 다 쏟아져 나왔다. 욕과 땀. 이 수련으로 정신은 맑아지기는커녕 세상이 싫어졌다. 다 모르겠고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끝내고 씻고 싶었다. 결국 땀과 욕을 한 바가지는 더 배출하고 나서야 이 작은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방은 작고 깔끔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빨리 씻고 쉬고 싶었다. 화장실은 작아서 샤워할 때 제대로 손을 뻗을 수 없었지만 씻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행복감도 잠시, 배가 너무 고팠다. 가방을 뒤졌더니 먹을 수 있는 게 고춧가루와 김뿐이었다. 배고프고 지쳐있었기에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장 보러 가야 했다. 이때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니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이상한 감정이었다.

깔끔하고 따뜻해서 좋은 기숙사 !

 장보러 가서 프라이팬, 냄비, 물, 소금, 삼겹살 등을 샀다. 다행히 마트에서 동기를 만나 혼자 들기 힘든 짐을 같이 들어줬다. 진짜 죽으라는 법은 없다. 숙소로 돌아와 얼른 삼겹살을 구웠다. 얼른 고기를 먹을 기쁨도 잠시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올려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은 연기로 자욱했다. 새로 산 프라이팬은 탔고 돼지고기도 성하지 않았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지옥에서 온 삼겹살과 모닝 빵 !

   

이거 가지고 오느라 죽는줄 알았다,,,

 여행과 교환학생은 매우 다른 듯하다. 이제까지 여행하며 대부분을 돈으로 해결했지만 이제는 매 끼니마다 뭘 해먹어야할지 고민하고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뒷정리도해야하고, 실밥 터진 맨투맨도 꿰메야되고, 매일 빨래도 하고 보험, 학교 관련 서류 처리도 해야한다. 앞으로 일상이 막막하지만 이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가 교환학생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걸 잊지않고 살림 스킬을 늘려가야겠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요리실력이 빨리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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