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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Dec 19. 2020

아... 불합격하길 잘했다?!

c1 시험 결과가 나오다 

포기의 역사보다는 실패의 역사가 아름답다는 것을, 제대로 부딪혀보지 않은 채 포기하는 것보다는, 멋지게 도전하고 처참하게 실패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하더라도, 삶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정여울)          


 자신의 목표와 꿈을 이룬 사람들은 성공보다 더 값진 실패가 있다고 한다.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막상 실패와 불합격이 삶에 불어 닥치면 마음은 얼어붙고 칼바람이 살을 엔다. 크고 작은 실패를 하지만 그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12월 8일도 고통스러운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설레고 다소 경직된 기분으로 달프 c1 성적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결과가 나오는 2시가 되었다. 미리 시험 결과란에 들어가 있었기에 새로고침을 눌렀다. 시험 결과가 튀어나올 거라는 생각에 심장을 누군가 꽉 쥔 듯했다. 2시가 되었는데도 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숨 돌릴 시간을 번 것이다. 심호흡하고 성적이 뜰만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다시 새로고침을 했다. 성적이 나왔다. 청취, 독해, 작문, 구술 순으로 손바닥을 서서히 움직이며 성적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청취는 과락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독해는 의외로 너무 잘 나왔다. 작문은............. 생각보다 너무 낮은 점수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구술로 넘어갔다. 구술은 괜찮은 점수였다. 다음으로 합격 여부가 쓰여 있는 칸을 보았다. 47점 불합격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어 델프, 달프 시험에서는 불합격해 본 적이 없기에 더욱더 낯설었고 이 불청객은 멘탈을 헤집어놓았다. 멍한 상태가 끝나자 화가 났다. 화가 끓어올랐다. 대상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따위 점수를 준 시험관인지, 준비를 이것밖에 안 한 나인지, 아니면 초라한 점수 자체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황, 초조, 긴장은 어느새 분노의 용광로에서 모두 녹아 화가 되었다. 내면이 너무 뜨거워졌는지 제풀에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에이.... 3점만 더 주지.... 50점이면 합격인데....

 일어나니 또 다른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가슴속 화가 식고 그 자리를 당혹스러움이 가득 채웠다. 이 시험이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가늠하고 그것에 불합격한 일에 걸맞은 감정을 갖고자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론 C1 자격증을 따면 어학병 지원 등 프랑스어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 하지만 나는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한동안 나를 관찰하고 자신과 대화하지 않았기에 이 불합격이 의미를 쉽게 정의할 수 없었다. 


 나는 해외를 누비며 사는 삶을 꿈꿨다. 해외를 여행하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았고 해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보니 여행 작가, 번역가 등이 떠올랐고 꿈꿨다. 진로에 관한 생각을 계속하며 다른 수많은 직업을 선망했고 어느 순간부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잊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남았다. 그것도 원하는 삶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말이다. 어느새 동사였던 삶의 목표는 한 직종으로 굳어서 삶은 생기를 잃었다.  달프 불합격이 야기한 분노는 현실적이라는 말로 포기를 내면화하는 순간들이라는 삶의 쭉정이들을 태웠고 자유로운 삶과 나와 타인이 함께 행복한 삶이라는 모토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삶의 활기가 다시금 돈 순간, 방황이 시작됐다. 자유로운 삶과 나와 타인이 함께 행복한 삶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어떻게 구체화할 건지를 고민해야 했다. 방황은 화려하지 않고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안하기에 힘들다. 하지만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을 가지기 위해선 겪어야 할 필수 관문인 듯하다. 그러니 치열하게 생각하고 나를 관찰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실패와 조언으로 깨달음을 얻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코로나가 끝나면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고 하고 싶은 일들을 직접 경험해보며 나와 현실에 관해 많은 것을 체험하고 깨닫고 싶다. 


 이번에 달프에 합격했다면 선망하는 직종만 갈아치우는 어설픈 방황을 계속했을 듯하다. 그리고 어중간한 실력으로 합격했다면, 향후 프랑스어 공부에 더 소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번 불합격을 계기로 실패에서 많이 배우고 그것을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집에 있으면서 생각도 좁아지고 다양한 자극도 없어 삶이 무료해지고 침대에만 누워있기 딱 좋은데 이제 꾸준히 운동도 하고 3월에 있는 프랑스어 시험에는 꼭 붙을 정도의 불어 실력을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꾸준히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해서 불어와 영어 실력을 꾸준히 기를 것이다. 불합격해서 많이 힘들었는데 내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시고 내면의 목표를 다시 발견하게 해 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3월에 다시 보자 ~~~~~(델프 시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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