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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an 07. 2021

일상에선 느껴지지 않았던 세계의 파동을 느끼다

2020년 작은 내가 만난 큰 세계

 모든 시작은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다. 약간의 흥분과 떨림이 만나 마음을 간질이며 설렘을 느낀다. 이렇게 들뜬 상태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2020년을 정리해야 한다. 어떤 활동을 했고, 무엇을 느꼈으며, 성공과 실패를 하며 무엇을 얻었는지 등을 말이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도중에 귀국하면서 잃었던 경험과 기회를 만회하기 위해 분투했던 한 해였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걸 깨달았다. 그중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머릿속에만 머물던 지식이 피부에 와 닿아 무언 갈 깨닫는 경험을 한다. 2020년은 그런 깨달음과 함께 시작했다. 1월이었다. 프랑스에 갈 준비를 하며 파리 편도 비행기표를 40만 원대에 끊어 기쁨에 사무쳐있었다. 아부다비를 경유하며 생애 최초로 중동을 여행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거기서 뭘 먹을지, 어딜 갈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행복한 검색을 하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란의 미군 기지 공격’ 이 기사를 보고 ‘하,,, 얘네 또 싸워?’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알고 보니 아부다비 근처에 있는 두바이에도 미군기지가 있어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뭐 별일 있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가족들의 극구 만류로 출발 이틀 전에 150만 원짜리 파리 편도 행을 떨리는 손으로 예약했다. 미국의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향한 드론 공격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순간이었다. 지식으로 알고 있었던 중동 갈등이 삶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었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예멘 친구를 위해 만든 떡볶이! 다행히 맛있어했다 ~

 프랑스로 오기 전, 한국은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일부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나 잠재적 성범죄자로 매도했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예멘에서 온 친구 2명과 같은 반이 되었다. 태국, 수단, 예멘, 대만, 중국, 일본, 튀니지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우리 반은 10명 남짓했기에 서로 친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경험해 본 예멘 친구들은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좋은 사람이었다. 음식을 서로 나눌 줄 알았고 종교적 신념이 강해서인지 도덕적 잣대도 엄격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프랑스 니스를 여행하면서 기도했던 니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흉기로 세 명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사가 끝나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온몸에 전율을 느꼈던 성당에서 그런 살육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만 다루던 파리 소요사태 등의 이민자 문제의 복잡함이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민자가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선 경제, 문화, 사회의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고 난민들과 주류 사회를 어떻게 통합하며, 그들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소외시키지 않을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유럽에는 모스크를 지어달라고 요구하면서 필리핀 노동자들의 성당 건립 요구는 무시하는 이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고 싶어 졌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이라는 거짓 환상을 가지고 무조건적 반대를 할 수 없고 우리가 언젠간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수용이 사회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기에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꼭 체계적인 다문화, 난민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프랑스 사회가 락 다운되자 종종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통제된 현실을 향한 분노가 아시아인들에게 향했다. 특히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에서 온 듯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겐 더 심했다. 장 보러 가는 길에 중얼거리며 우리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고 소리를 지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 코로나가 심하지 않을 때도 니스에서 길을 지나가면 스카프로 입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선 중국으로 꺼지라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인종차별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중국인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들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와 분노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에게 향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중국인 아닌데,,,’라고 억울해하는 옹졸함을 발견하고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지만, 너무 아름다웠던 남프랑스
얼마 전 테러가 벌어졌던 니스 노트르담 대성당
내가 만난 성당은 오르간의 아름다운 소리로 꽉 차 있어 폭력이 들어올 자리는 없어 보였다.

 교환학생을 하며 개인의 삶이 국제 사회의 문제와 직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단편적인 경험으로 세상에 모든 일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 보면 과도한 일반화일 수 있다. 하지만 주류로 속해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느끼지 못한 사회 문제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기에 소중한 경험이었다. 2021년엔 좀 더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삶은 어떤 작품이 될까?
시간은 지나고
고통은 잊히고
작품은 남는다.
- 그라스의 한 시계 밑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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