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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Feb 21. 2020

나는 괜찮지 않았다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프랑스에 온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기숙사에서 혼자 간섭 없이 사는 생활로 자유로웠고 침대에 누워 큰 창문으로 하늘을 보고 있으면 바다에 와 있는 듯한 청량함으로 행복했다. 한국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하면서 불어에 좀 더 노출되고 싶어서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왔다. 목표는 완벽히 달성했다. 브장송이 아무리 소도시라고 해도 3분마다 적어도 원어민 한 명은 만날 수 있고, 간판도 모두 프랑스어이기 때문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주말엔 파리를 여행하며 센강이나 에펠탑을 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고, 스위스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그래서 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브장송에서 지내면서 제일 행복한 일 중 하나 - 침대에 누워서 하늘 보기

 어느 날, 기숙사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을 꿨다. 장소는 한국에 있는 본집이었고 할머니를 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우는 나를 꼭 안은 할머니는 자신에겐 뭐든 다 말해도 된다고 하셨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듣고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결국 그 소리에 깨고 말았다. 일어나자마자 진짜로 눈물이 났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볼은 건조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이런 꿈을 꿨지?’

 이 꿈을 꾸고 난 후부터,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이유 모를 공허함과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공허하고 우울하고 앉아있어. 꼭 공부하기 싫으니까 이러지. 빨리 일어나서 공부나 해.’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한 결과 아직도 빨리 앉아서 공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풀지 못하고 있다.ㅎㅎ 일단 수업 적응에 집중하기!

 수일 동안 이 감정들의 원인을 찾아다녔다. 자기 관찰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다행히 정확한 진단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바로 ‘완벽주의’와 ‘강박증’이었다. 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온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였다. 그러기 위해선 가능한 한 빨리 수준급의 불어를 구사해서 교환학생을 한 학기 더 연장해서 프랑스 대학 학부로 들어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3월까지 B2를 따는 걸 목표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계획한 목표가 너무 컸던 건지 아니면 자신이 사람이라는 걸 망각했는지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목표를 향해 냅다 달렸다. 하지만 타지 생활과 프랑스의 기후 그리고 시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어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수업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안 들리는 불어를 안간힘을 다해 집중해서 듣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숙제를 해야 했고 모르는 단어도 정리해야 했다. 더 나아가 6시까지는 무조건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숙제와 단어정리를 다 끝내고 집에 와서 델프 공부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또 학교에서 주관하는 다른 델프 수업도 신청했다. 몸은 미쳐서 폭주하는 주인 때문에 지쳐서 결국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불안했다. 작년 11월에 b1을 딴 나에게 b2는 너무 높은 산처럼 보였지만 꼭 빨리 따서 불어를 잘하는 걸 자신에게 입증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따라주지는 않는데 하루 계획을 계속 늘렸고 결국 다해내지 못해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련한 뇌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완벽주의’와 ‘강박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해결책은 매우 진부한 방법이지만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이걸 깨닫는데 오래 걸린다. 이번엔 진짜 스트레스로 요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깨달아야만 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도 채찍질을 멈추고 마인드 교정을 하는 방향이 성공적인 교환학생 생활에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성공 아니면 실패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지신에게 집중하고 실수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더 많이 관찰해서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현실 가능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앞으로 나가는 걸 멈추지 않고 자신을 잘 다독이고 응원하면서 성장하고 싶다. 이번 기회로 많이 힘들었지만 좌절감과 번 아웃이 온다면 회피하기보다는 이유를 찾으면서 다시 일어서며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길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완벽주의와 강박증으로 필요 이상으로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게 마트에서 낑낑대고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것이지만 그 끝엔 저렇게 맛있는 쏘씨쏭이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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