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프랑스에 온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기숙사에서 혼자 간섭 없이 사는 생활로 자유로웠고 침대에 누워 큰 창문으로 하늘을 보고 있으면 바다에 와 있는 듯한 청량함으로 행복했다. 한국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하면서 불어에 좀 더 노출되고 싶어서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왔다. 목표는 완벽히 달성했다. 브장송이 아무리 소도시라고 해도 3분마다 적어도 원어민 한 명은 만날 수 있고, 간판도 모두 프랑스어이기 때문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주말엔 파리를 여행하며 센강이나 에펠탑을 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고, 스위스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그래서 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을 꿨다. 장소는 한국에 있는 본집이었고 할머니를 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우는 나를 꼭 안은 할머니는 자신에겐 뭐든 다 말해도 된다고 하셨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듣고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결국 그 소리에 깨고 말았다. 일어나자마자 진짜로 눈물이 났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볼은 건조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이런 꿈을 꿨지?’
이 꿈을 꾸고 난 후부터,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이유 모를 공허함과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공허하고 우울하고 앉아있어. 꼭 공부하기 싫으니까 이러지. 빨리 일어나서 공부나 해.’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한 결과 아직도 빨리 앉아서 공부하지 못하고 있다.
수일 동안 이 감정들의 원인을 찾아다녔다. 자기 관찰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다행히 정확한 진단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바로 ‘완벽주의’와 ‘강박증’이었다. 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온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였다. 그러기 위해선 가능한 한 빨리 수준급의 불어를 구사해서 교환학생을 한 학기 더 연장해서 프랑스 대학 학부로 들어가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3월까지 B2를 따는 걸 목표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계획한 목표가 너무 컸던 건지 아니면 자신이 사람이라는 걸 망각했는지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목표를 향해 냅다 달렸다. 하지만 타지 생활과 프랑스의 기후 그리고 시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어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수업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안 들리는 불어를 안간힘을 다해 집중해서 듣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숙제를 해야 했고 모르는 단어도 정리해야 했다. 더 나아가 6시까지는 무조건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숙제와 단어정리를 다 끝내고 집에 와서 델프 공부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또 학교에서 주관하는 다른 델프 수업도 신청했다. 몸은 미쳐서 폭주하는 주인 때문에 지쳐서 결국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불안했다. 작년 11월에 b1을 딴 나에게 b2는 너무 높은 산처럼 보였지만 꼭 빨리 따서 불어를 잘하는 걸 자신에게 입증하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따라주지는 않는데 하루 계획을 계속 늘렸고 결국 다해내지 못해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련한 뇌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완벽주의’와 ‘강박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해결책은 매우 진부한 방법이지만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이걸 깨닫는데 오래 걸린다. 이번엔 진짜 스트레스로 요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깨달아야만 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도 채찍질을 멈추고 마인드 교정을 하는 방향이 성공적인 교환학생 생활에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성공 아니면 실패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지신에게 집중하고 실수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더 많이 관찰해서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현실 가능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앞으로 나가는 걸 멈추지 않고 자신을 잘 다독이고 응원하면서 성장하고 싶다. 이번 기회로 많이 힘들었지만 좌절감과 번 아웃이 온다면 회피하기보다는 이유를 찾으면서 다시 일어서며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길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완벽주의와 강박증으로 필요 이상으로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