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bino Mar 18. 2020

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닙니다.

프랑스 교환학생 이야기

Je suis coréen, je ne suis pas coronavirus.
저는 한국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에요.
 

 프랑스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이후에 체감되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변화는 마트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마트가 문을 연지 2시간도 안돼서 파스타는 동났고 쌀도 없었다. 계산대마다 사람들은 길게 줄 서있었고 찾아보기 힘들었던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도 부쩍 늘어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카프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쉴 새 없이 재고를 채워 넣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속도를 따라잡진 못했다. 이러한 불안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다. 내면의 공포는 폭력으로 쉽게 배출되는데, 나약함에서 비롯된 폭력은 항상 자신보다 약한 존재로 향한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와 있는 나는 이곳에서 소수이고 약자였다. 그것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된 나라 사람과 닮아 보여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로 휩싸인 이곳에서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회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텅 비어있는 파스타 칸과 붐비는 마트 계산대

 악마는 자신이 들어올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들어와 주변을 타락시킨다. 지금 프랑스에 사는 일부 사람들은 공포라는 악마에 잠식당해 두려움에 떨고 그것을 폭력으로 표출한다. 

 어학원에서 만난 형과 장을 보러 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다들 장바구니 한, 두 개에 물건을 가득 담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트에 남은 물건이 많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 와중에 나무에 빼곡히 달려있는 분홍색 목련은 너무 예뻤다. 약국 앞을 지나면서 혹시 마스크나 손소독제가 있을까 유심히 봤지만 사람들만 많을 뿐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약국을 지나고 몇 걸음을 갔을까 우릴 보고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느껴졌다. 내가 그쪽을 보자 그는 ‘뻐큐’를 날리며 불어인지 아랍어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인종차별을 당하면 그 순간은 멍해진다. 수 초 동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인종차별당했다는 사실이 자명하게 뇌에 인식됐다. 아직 제정신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어떤 반응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뻐큐를 날릴까 생각하다가 중지와 엄지만 제외하고 모두 접는 방식이 제일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곧장 실행해 옮겼다. 하지만 내 손은 뻐큐를, 그것도 있어 보이는 그것을 날린 적이 너무 오래되어 ‘락 앤 롤’을 날리고 말았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고 싶었지만 본의 아니게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록 스피릿’으로 폭력을 상대한 것이다. 의도와는 다르지만 되새겨보니 더 좋은 대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려움 속에서 아름답게 핀 목련/ 실수로 폭력을 평화로 대응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긴장된다. 빠르게 유럽에서 확산되는 전염성도 이유 중 하나지만, 아시아 사람을 바이러스 덩어리와 폭력을 가해도 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인종차별 때문에 더 그런 듯하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인종차별에 대해선 어떻게 반응하지’와 ‘나는 인종차별을 한 적이 없나’. 첫 번째 생각엔 아직 답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답변은 ‘마음속으로 한 적은 많다’였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어 한국에 퍼지고, 몇몇 중국인들이 검역을 피하기 위해 해열제를 먹고 국경을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중국인이 싫어졌다. 세계어 디에나 존재하는 몰지각한 사람 때문에 특정 국가의 국민을 싸잡아서 증오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그리고 니스를 여행할 때, 내가 지나가면 스카프로 입을 가리는 이탈리아인들을 봤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 한창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을 시기여서 그런 사람들을 보고 상처 받은 마음을 ‘꼴에 꼴값 떨고 있네. 너네들이 더 무서워.’라는 자기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기침을 한참을 시원하게 한 뒤에 입을 가리는 이탈리아 아저씨를 보고 이탈리아인들이 싫어졌다. 끊임없이 소수의 행동을 한 나라의 국민 전체의 특징으로 일반화했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한국에서도 중국인을 은근히 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지만 납득할 만한 일이 다 옳은 일은 아니다. 이것도 명백한 차별이다. 내 상황과 한국 상황을 함께 보고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 만일 내가 비주류가 아니고 사회의 주류였다면, 즉 사회적 차별을 가할 수 있는 위치라면 그들에게 어떠한 차별도 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만든 것 같다.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신천지 같은 비정상적인 집단이 아니라면 개인의 행동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지 않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이해해서 편견을 없애고 그들을 이해하기.’ 

 증오와 두려움이 퍼지기 쉬운 상황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려와 이해이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문화와 언어를 공부하면서 말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배려와 이해를 실천하고 싶다. 힘든 시기에 부당한 상처를 받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마음이 얼어있던 말던 따뜻한 봄이 왔다. 얼른 사태가 진정되고 봄을 만끽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괜찮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