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비행기나 배 따위에 몸을 싣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떠나며 설렘과 두려움을 느낀다. 머리로만 알고 있거나,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공간은 어느새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실체가 된다. 현실과 마주한 상상은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공간의 이동은 사고 회로에 변주를 주어 삶의 항로가 수정되어 서서히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한 4달 전쯤 일어난 일이다. 이 경험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도착했다. 아주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지식만을 가지고 말이다.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60개가 넘는 부족이 공존하며, 다양한 지역 언어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코트디부아르 사회의 다양성이 내포하고 있는 제국주의가 남긴 역사적 함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에게 프랑스 통신회사 Orange는 ‘환영합니다(Akwaba)’라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도.
아직 공항을 나서기 전이었다. 짐을 찾기 전 입국 심사해야 했다. 방문객으로서 예를 갖추어 입국 심사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마치 내가 청렴결백한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듯이 내 쪽을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처음 만난 아프리카는 차가웠다. 하지만, 이 추위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짐을 찾은 뒤, 차를 타고 공항을 나섰다. 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었는데, 자꾸 팔이 따끔거렸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에 팔이 타고 있었다. 벌써 아프리카가 몸에 새겨지는 듯했다. 아직 이 따끔거림의 의미를 확실히 밝히지는 못했지만, 감각의 잔상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창밖 도로변엔 차와 청년들로 넘쳐났고, 독립 기념일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여전히 코트디부아르 삼색기가 거리에 나부끼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과 역동적인 풍경들 너머 여전히 EDF , 카지노, 카르푸, 토탈에너지 등등 프랑스 기업들이 눈길을 끌었다.
차는 마트로 향했다. 주말 동안 먹을 것을 사야 했다. 마트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자, 한 마트 직원은 상품 진열을 멈추고 리듬에 맞춰 몸을 격렬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춤사위에 처음에는 약간 부담스럽고 어색했지만, 이내 놀이와 일이 조화롭게 섞인 삶이 꽤 행복해 보였다. 음악을 즐기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현재를 오롯이 만끽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퍽 부럽기도 했다.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다 처음 본 격렬한 춤사위는 내가 살게 될 세상이 바뀌었다는 신호였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존재하던 코트디부아르를 감각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활 터전에서 쏟아지는 낯선 자극들을 잘못 인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코트디부아르 살이가 삶을 어디로 이끌까 하는 간지러운 기대를 느끼는 하루다. 지구 반대편으로 몸을 이끌고 간 뒤, 9시간의 시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잠에 빠져버렸다. 앞으로 펼쳐질 일상이 많은 에너지가 들 것이라는 사실을 몸이 직감적으로 아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