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누려왔던 것이 결핍되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잠시 묵었던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식도 맛있고, 방 컨디션도 훌륭했던 호텔에 머물면서 그동안 비판 없이 신봉해 온 믿음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기 위해 힘을 거의 주지 않고 수도꼭지를 올렸다. 하지만 내가 가한 힘은 세상에서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호텔 리셉션에 문의하니, 배수관 공사로 물이 단수되었다고 했다. 12시면 물이 다시 나올 거라고 했지만,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물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기적처럼 다시 물이 나오는 상황 앞에서 여느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처럼 ‘Dieu Merci(‘신께 감사드려요’ 또는 ‘신이 도와주신 덕분이죠’)’를 되뇔 수밖에 없다. 이 일을 겪은 후,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혹시라도 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의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갑자기 등장해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다른 방에 쥐가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쥐를 극도로 무서워하기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천장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났다. 천장은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쥐가 움직이는 소리를 사람이 가장 잘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음은 분명했다. 밤마다 쥐들은 천장 위를 달렸고, 소리의 크기로 쥐의 크기를 가늠해 보며 공포감을 키웠다. 언제 쥐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불을 켜고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방을 뺄 때까지 방 안에서 쥐똥을 포함한 침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하긴 일렀다. 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방엔 다른 흔적, 아니 존재가 있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쥐의 침입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집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집주인이 호의를 베풀어 계약서에 기재된 날짜보다 하루 일찍 들어가 짐을 풀고 잘 수 있었다. 체크아웃 예정일 하루 전, 새로 이사한 집에 짐을 풀었다.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으로 몸에 힘 조절이 안되었는지 그날 저녁 변기는 막혀버렸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호텔이 다시 가고 싶어졌다.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러 호텔에 갔다. 화장실을 쓸 심산으로 아침 일찍 호텔로 돌아가 묵었던 방에 들어갔다. 문이 열리며 깜깜한 방에 빛이 스며들었다. 누군가가 있었다. 테이블엔 어제저녁에 먹은 듯한 음식이 있었고, 누군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기척을 느껴 그 남자도 곧 화들짝 놀랐다. 잠시 서로 이 방은 자기 거라고 주장을 하다가 리셉션에 문의했다. “지금 내 방에 누가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우린 짐을 뺏길래, 나간 줄 알았지요.” 짐의 유무로 체크아웃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했다는 직원도 이 주장에 정신은 아득해졌다. 다행히 그도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자기가 그 손님을 받지 않았다고 책임을 회피하며 체크아웃 시간까지 머물 방을 주었다. 다행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고, 지끈지끈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배를 채우러 조식을 먹으러 갔다.
호텔에서 일어났던 단수, 쥐 출몰, 방 뺏김 사건은 당시엔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했지만, 새로운 생활 터전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예방접종이 아니었나 싶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건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감정 소비를 줄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수도를 틀면 콸콸 혹은 졸졸 나오는 물, 쥐 출몰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일상에 감사하는 법과 내 방에 다른 사람이 자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직 모든 스트레스 상황을 잘 대처하진 못하지만, 이런 일을 종종 겪으면서 코트디부아르 생활 공력이 쌓이지 않을까 싶다. 일이 마음대로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은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의 유쾌함과 미소로 숨통이 트이고, 코트디부아르 맥주인 보 포르(beau fort)로 녹이고 있다. 여전히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