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하는 일본』
장담컨대,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도 그럴 것이, 도쿄대학 학사/석사/박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저자는 시종일관 독자를 무시하고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허무맹랑할 수가 없다. 글쎄, 세계 최초로 ‘근세(Early Modern)’를 맞이한 지역이 중국 송나라란다.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한 ‘역사의 종언’이란 다름 아닌 전 세계의 ‘중국화’라니,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역사학의 최신 성과랍시고 자랑스레 떠벌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으앙 울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오만하고 불친절하며 허무맹랑한 책이 일본에서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도쿄대학 구내서점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미야지마 히로시와 박훈 등 저명한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이 책에 놀라움 섞인 호평을 내리고 있다면? 어떤가,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책 제목이 뭔지 뜸 들이지 말고 말하라고? 바로 요나하 준의 『중국화하는 일본』이다.
『중국화하는 일본』이란 제목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이 중국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종속되고 있다는 일본 넷우익의 주장과는 백만 광년정도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전쟁 안하는 시대를 예찬하고 유라시아를 주유하는 모 선생님처럼 나이브한 중국예찬론으로 기울지도 않는다. (혹 오해를 살까봐 말해두는데, 나는 이 분을 세간의 평가에 비해선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요나하가 이야기하는 ‘중국화’란,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나하는 그간 일본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인 ‘근세(Early Modern)’가 실은 전 세계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근대의 전반기’라 이야기한다. 이 ‘근세’가 처음으로 도래한 지역이 바로 송나라 시대의 중국이며, 이 때 도입된 사회체계가 오늘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그럼 송나라 이래 이어져온 중국사회의 존재양식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요나하가 생각하는 ‘중국화’란 쉽게 말해 경제와 사회는 철저히 자유화하되, 사람들의 생각만큼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화’된 세상에선 정치와 도덕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보편이념에 의거해 최고지도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보편이념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또한 사회는 일체의 중간단체 없이 최고지도자와 무수한 개인만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형으로 재편된다.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 출세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굶어죽을 자유 역시 부여받은 개개인은 조금이라도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넓고 얕은’ 인적 관계를 맺는데 몰두한다.
이 중국형 사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만약 중국형 사회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내가 사는 사회의 향기를 느꼈다면, 당신은 꽤나 촉이 좋은 사람이다. 요나하는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기실 전 세계의 중국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하기 때문이다. 2019년의 한국은 너무나도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국가이므로, 우리가 중국형 사회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정말로 세계가 중국화했다기보다는 요나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중국화라는 개념을 연상한 것이겠지만, 일단은 못 본 체 넘어가주기로 하자.
그런데 이 도도한 중국화의 물결을 꿋꿋하게 거스르는 국가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일본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외따로 자리한 일본은 ‘감히’ 역사의 필연이자 보편인 중국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독자적인 사회체계를 건설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본형 사회는 중국형 사회와는 정반대로 굴러간다.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직함과 실권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는 수많은 중간단체로 구성되어 있어 박스의 집합 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지만, 평생 자기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다.
요나하는 중국화 세력과 일본화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일본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두 세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서로가 꿈꾸는 세상이 너무나 다를 뿐 아니라, 각각이 완결된 정책 묶음이기 때문이다. 각 사회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지만, 만약 양자를 종합해 장점만을 취하고자 할 경우 외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마치 커다란 멜론이 포도처럼 풍성히 열리기를 기대하며 두 과일을 조합했지만, 실제로는 작은 포도가 멜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호시 신이치의 단편 「리온」처럼 말이다. 요나하는 이를 ‘부론(일본어로 포도와 멜론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쇼와 전기의 일본과 북조선을 꼽는다.
요나하의 주장은 척 보기에도 문제가 많다. 사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오로지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으로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지 않은가! 가령 요나하가 중국 역사에서 일본형 사회를 건설한 둘 뿐인 시기로 꼽은 명나라와 마오쩌둥 시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살펴보자. 두 사회 모두 상업을 억제하고 농본주의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는 에도시대 일본과 유사하다. 하지만 에도시대와 달리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최고지도자인 황제와 주석이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또한 두 사회는 모두 보편이념을 내세워 개개인의 생각을 강하게 통제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자국 밖으로 전파하기까지 했다. 명대 동아시아에선 조공-책봉관계로 상징되는 ‘전형적인’ 중화질서가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마오 시대의 중국 역시 제3세계의 맹주로서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을 이끌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에도시대 일본과는 달랐다.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일본형 사회라기보다는, 요나하가 ‘부론’이라 이야기한 쇼와 전기의 일본이나 북조선에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명나라는 대략 300년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존속했고, 북조선 역시 미국의 고사작전에도 아직까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명나라나 마오 시대 중국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 모두 강하게 통제했던 조선왕조는 무려 500년을 이어갔다. (요나하는 조선왕조를 전형적인 중국형 사회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분석을 엄밀히 적용한다면 ‘부론’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니깐 쇼와 일본과 조선이라는 ‘부론’은 썩 바람직하진 않을지언정 나름대로 안정적인 체제인 것이다. 물론 ‘부론’의 안정성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은 설명력을 잃는다.
이처럼 요나하가 제시한 중국화-일본화의 이항대립은 조선왕조의 사례만 거론해도 크게 흔들릴 만큼 불안하다. 곳곳에 오류와 억지, 비약이 가득한 허점투성이의 책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허점들이야말로 『중국화하는 일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숨구멍이다.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겠지만, 정작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 요나하가 만든 모델이 성기긴 해도 꽤나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요나하의 도발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다른 책들을 읽어갈 수밖에 없고, 그의 모델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보완하고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의 경우는 앞서 조선왕조를 근거로 요나하가 ‘부론’으로 이해한 사회체계가 실은 꽤나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화-일본화라는 모델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두 점으로 이루어진 선분 위에 조선화(쇼와화나 북조선화로 치환해도 무방하다)라는 점을 찍어 삼각형을 만드는 식으로 기존 모델을 보완한 것에 가깝다.
서울대학교의 박훈 교수 역시 중국화-일본화라는 요나하의 모델이 공업화와 대의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요나하의 작업이 유럽중심주의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하며, 이를 보완하여 ‘군현사회(≒중국화)’와 ‘봉건사회(≒일본화)’라는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박훈, 「‘봉건사회’ - ‘군현사회’와 동아시아 ‘근대’ 시론(試論)」, 『동북아역사논총』 57, 2017)
굳이 요나하의 모델을 수정·보완하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중국화하는 일본』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한국의 역사를 중국화-일본화의 도식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는 일본화(박)와 중국화(김)의 역사적 대결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이후 쇼와화(유신체제)의 길을 걸으며 몰락했고 말이다. 이처럼 중국화와 일본화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채워나갈 여지가 많은 매력적인 모델이다. ‘역사덕후’들이라면 열광해 마지않을, 흥미롭지만 결코 만만치는 않은 장난감이라고나 할까?
『중국화하는 일본』은 오랫동안 일본사회를 지배해 온 편견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근대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 혹은 ‘창조’하는 한편, 중국을 ‘아시아적’ 후진성과 낙후성, 저발전을 상징하는 집합체로 전락시키는데 골몰했다. 좌와 우를 막론한 많은 일본인들이 자기네 나라가 전 아시아를 지도해야 할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말이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였던 애정과 존경 역시, 그가 일본의 ‘학생’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빼놓는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요나하가 『중국화하는 일본』을 퍼낸 2011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발생했다. 그러나 국가는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키워놓을 정도로 무능했다. 영원히 누릴 것만 같았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 역시 중국에게 빼앗겼다. 요나하의 말마따나 일본인은 갑작스레 ‘풍요롭고 행복한 일본’의 종언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지속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요나하는 그간 일본 지식인들이 애용해온 일본과 중국의 이항대립이라는 틀을 반전시킨다. 일본을 ‘특수’와 ‘후진’의 자리로 떨어뜨리고 중국을 ‘보편’과 ‘선진’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비록 ‘중국’과 ‘일본’이라는 구분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요나하의 파격은 분명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실은 나보다 훨씬 앞서있었다는 이야기만큼 확실한 충격요법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와 시험을 통해 인격자를 등용하는 과거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고 거침없이 질문하는 저자의 과격함은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나하의 도발은 역덕에게는 흥미진진한 지적 자극이요, 일본인에게는 차분한 성찰의 촉매이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풍요로운 오류’가 ‘황폐한 진실’보다 소중할 때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