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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찬근 May 09. 2019

사랑이라는 어려운 일

『우리 산책할까요』

요즘 웹툰을 훑다보면 단연 눈에 띄는 건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한 반려동물 웹툰이다. 푸들과 동거하는 만화, 개와 고양이가 말을 안 들어서 주인을 노곤하게 하는 만화, 개를 낳은 만화 등, 네이버만 해도 반려동물을 다룬 웹툰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반려동물 웹툰들이 하나같이 한 생명과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변훈련이나 예방접종 같은 사소한 일부터 노화와 죽음까지, 웹툰에서 묘사되는 반려동물과의 삶은 (비록 유머러스하게 포장될지언정) 수고와 고통의 연속이다. 도서관에 눌러앉은 길고양이에게 가끔 닭가슴살이나 건네주는 나로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던가 하고 놀랄 때가 많다. 하긴, 한 생명을 책임지는데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출간된 임정아의 『우리 산책할까요』 역시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스패니얼 잡종인 까미와 하얀 푸들인 바람이와 샘이, 그 자식인 별이까지, 네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한 저자의 30년 여정은 우리의 생각처럼 몽글몽글한 핑크빛으로 가득하진 않다. 오히려 실수와 좌절, 고통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강아지들에게 좋은 반려인이었던 건 아니다. 까미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제1회 광주비엔날레와 단풍이라는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저자는 까미를 집에 두고 훌쩍 남도여행을 떠나버린다.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끙끙대던 까미는 끝내 문살을 부수고 안방으로 들어와 새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별이를 키울 때는 별이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전기충격을 주는 짖음 방지기를 사기도 했고, 성대 제거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 진료까지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실수의 연속이다.

 그래도 깨지는 만큼 단단해진다고, 저자는 실수를 통해 점차 헌신적인 반려인으로 거듭난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바람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저자의 모습은 경외감이 들 정도다. 물론 저자도 사람인지라, 바람이를 매일같이 산책시키고 혹 어디 부딪힐까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오죽하면 “아, 힘들어. 너무 힘들어”하고 한탄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강아지를 돌보며 저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동생 생각에 슬퍼하던 저자는 자신의 눈물을 핥아주는 샘이 덕에 기운을 차린다. 별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좇아간다. 마치 화가가 꼼꼼하게 모델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지켜보는 별이에게 저자는 애틋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할 만큼, 강아지들은 저자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리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강아지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것이리라. 살날도 얼마 안남은 개 그냥 보내주는 게 어떠냐는 주위의 참견에 저자가 “저 애들이 어렸을 때 저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어요. 이젠 제가 돌볼 차례죠”라고 차분히,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어렵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조심스럽고 수고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상대방이 내게 선사하는 기쁨과 설렘, 경이로움 역시 그로 인해 마음 졸이고 고생하는 시간이 있기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어려움이야말로 기쁨이요, 행복이다. 예쁜 모습에 혹해 무턱대고 입양한 강아지를, 고작해야 베란다의 허브를 물어뜯는다는 이유로 ‘과수원 하는 친척집’에 보내버리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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