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요 근래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을 먹고(食) 마시기만(飮) 하지 않는다. 이제 음식은 무엇보다 보고 듣는 무엇이다. 영세 유튜버에서 지상파까지, ‘매체’를 자처하는 모든 이들이 이른바 ‘먹방’에 열을 올리는 탓이다. 카메라에 담아낸 음식의 맛깔스런 자태, 그리고 이를 게걸스레 해치우는 셀럽들의 짭짭대고 후루룩거리는 소리에 대중은 열광한다. 바야흐로 ‘미각’을 대신해 ‘시각’과 ‘촉각’이 음식을 느끼는 주된 감각으로 떠오른 시대다.
먹고 마시라고 만들어놓은 음식을 보고 듣는 하 수상한 시절에, 음식문헌연구자 고영은 생뚱맞게도 음식을 ‘읽는다.’ 읽는 감각, 굳이 한자로 옮기면 ‘독각(讀覺)’ 정도 되려나. 그의 책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음식을 읽어간 기록들의 모음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카스테라를 본뜬 노란 표지인데, 매끄럽게 빤딱거리는 재질로 만들어서 카스테라보다는 커스터드 푸딩을 닮았다. 고전문학 전공자답게(?) 리듬감이 느껴지는 그의 글은 보드라운 카스테라보다는 탱글탱글한 커스터드 푸딩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지금껏 접한 책 디자인 중 최고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떡하니 박힌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마크만 없었다면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고영은 음식문헌연구자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의 이름만 뜨는 걸로 보아 스스로 만든 직함인 듯한데, 이만큼 고영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말도 없으니 한 번 찬찬히 뜯어보자. 우선 그는 음식을 연구한다. 또한 문헌도 연구한다. 무엇보다 그는 문헌과 음식의 얽힘을 연구한다. 말장난 같다고? 조금만 더 읽어보시라.
우리가 음식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기까지의 과정은 찰나에 비견될 정도로 짧다. 우리가 느낀 음식의 감촉과 맛을 어렵사리 말로 꺼내보기도 전에, 음식은 이미 “꿀떡”하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버리기 일쑤다.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을 찾아내는 일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그렇기에 ‘형언(形言)할 수 없는’ 그 맛을 어떻게든 형언해보려는 노력은, 동시에 언어를 가꾸고 그 경계를 넓히는 일이기도 했다. 음식은 언어를 북돋았고 언어는 음식을 증언했으므로, 음식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음식문헌연구자가 ‘음식’과 ‘문헌’을 기계적으로 이어붙인 직함이 아닌 이유다. 음식과 문헌의 복잡한 얽힘은 그 자체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영은 음식을 읽는 감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살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또 그 맛을 적확히 표현하고자 고심해왔다. 희대의 이단아 허균은 1610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서 ‘읽는 먹방’인 『도문대작』을 썼다. 혀로 느낄 수 없다면 글로라도 실컷 맛보자는 심보였다. ( 「허균, ‘먹방’의 추억」 )
1720년, 아버지를 따라 세계 최대의 도시인 북경을 방문한 멋쟁이 도련님 이기지는 보다 정교하고 관능적으로 음식을 감각했다. 총명함과 친화력으로 북경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사로잡은 그는 유럽의 식사와 간식,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빛깔, 풍미, 촉감, 마시고 난 뒤의 감각까지, 이기지가 남긴 조선 최초의 와인 시음기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이기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 다만 전근대의 기록이란 어디까지나 양반 엘리트가 한문으로 쓴 것이었기에, ‘읽는 먹방’을 향유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이른바 ‘근대(modern, 책에서는 ’현대‘라 표현)’라는 미증유의 시대를 맞이하고부터다. 아직까지 근대를 둘러싼 여러 정의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한정한다면 근대란 무엇보다 사람들이 넘치는 활자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 시대다. 국가를 초월한 교양인의 ‘보편언어’를 저잣거리의 ‘입말’이 밀어냈고, 비밀스레 유통되던 필사본 대신 대량으로 찍어낸 활자본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유라시아 동쪽의 궁벽진 반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한문’이 아닌 ‘언문’으로 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를 새로 주조한 활자에 찍어 널리 퍼뜨렸다. 그 결과, ‘한국어’ 혹은 ‘조선어’라는 ‘오래된 미래’는 식민지라는 제약 속에서도 산업현장, 이주 노동, 분규, 쟁의, 파업, 민족 같은 근대의 개념들을 너끈히 품어낼 수 있게 되었다. (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 )
언어만 바뀐 게 아니었다. 음식 역시 근대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은자의 나라 조선은 이웃한 청과 일본, 대만은 물론이고 저 멀리 서양까지 이어진 글로벌한 연결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의 호빵과 일본의 팥빵, 유럽의 맥주 등 새로운 음식들이 조선으로 물밀 듯 밀려왔다. ( 「한국 빵 문화사의 원형」 / 「맥주나 한 잔」 )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뿌리내려온 음식이라 해서 근대의 파고를 피해갈 순 없었다. 대표적으로 소금은 일본의 자본, 대만의 기술, 중국 산둥(山東)의 노동력이라는 ‘트랜스내셔널’한 조건에 놓이며 자염(煮鹽)에서 천일염(天日鹽)으로 새롭게 태어나다시피 했다. (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 )
이처럼 근대를 맞아 환골탈태한 음식을, 역시 환골탈태한 언어가 가만둘 리 없었다. 새로운 맛을 담아내려는 궁리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전정(前程, 앞길)이 구만리”라는 고리타분한 수사로 애써 주인공을 위로하던 『무정』 속 하숙집 노파는, 어느새 《조선중앙일보》 기자에게 “우유 넣어드려요?” 하고 새침하게 물어보는 다방 마담으로 탈바꿈했다. 1917년에서 1936년, 불과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 「빙수 한 그릇」 / 「음식이 만든 풍경들」 )
모름지기 냉면은 초여름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조선중앙일보》와 이에 질세라 냉면은 원래 겨울음식이라는 《매일신보》의 기싸움, 커피와 코코아를 선전하는 화려한 신문광고들, 퇴근길에 맥주잔을 기울이는 경성의 화이트컬러 남성까지, 정말이지 ‘힙’하지 아니할 수 없다. ( 「냉면 먹방」 / 「음식이 만든 풍경들」 / 「맥주나 한 잔」 ) 이게 바로 ‘모-던’이구나 싶어 그 흥취에 한껏 거나해지려는 찰나, 저자는 명랑하게 부글거리는 ‘모-던’의 거품을 슬그머니 걷어버린다. 거품이 사라지고 남은 건, 어느 하나 내 것 아닌 초라한 잡동사니뿐이다.
요즘엔 흔히 ‘도란스(ドランス, trans의 가타카나 표기)’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만, 한국의 근대가 곧 일본과 미국을 짬뽕한 ‘열화판’이란 사실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가령 오늘날 우리가 빵이라 부르지만 사실 빵도 과자도 아닌 그 무엇은, 일본식 제빵제과의 산물을 미국의 원조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찍어내 대량으로 유통함으로써 탄생했다. ( 「한국 빵 문화사의 원형」 ) 그 기원과 내력을 살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결과, 이제 대부분의 한국인은 빵과 과자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한국 근대의 이러한 ‘족보없음’은, 명실상부 1세계의 말석에 걸터앉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하나의 ‘족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의지할 중심이 없으니 바깥에서 뭐가 유행한다 하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일단 들여오고 본다. 대만카스테라가 그렇게 한 차례 골목상권을 휩쓸고 지나갔고, 이제는 흑당버븥티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잘 되기’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되기’에만 치중한 결과는 이토록 아리고 쓰리다. ( 「아리고 쓰린 카스테라 담론」 )
저자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카스테라와 카스텔라의 ‘사이’를 느끼는 감각이라고 말이다. 일본의 카스테라(カステラ)는 16세기 말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해준 카스텔라(castella)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카스테라는 카스텔라와는 다른 일본의 전통과자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식 달걀찜인 챠완무시(茶碗蒸し) 조리법을 응용하여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카스테라와 카스텔라에 ‘사이’를 만들어주는 건, 내 입맛의 기호와 공동체의 선택을 동력삼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역사 그 자체다. (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되돌아본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지금껏 어떠한 감각과 방법, 태도로 음식을 대해왔는지, 그리고 나는 내 입맛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우리 한국어 화자들은 옛 문헌을 뒤져가며 음식을 ‘읽는’ 감각을 기르기보다는 먹방에 탐닉하며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선망과 환상만 키워가진 않았던가. 혹은 조선의 선농제로부터 설렁탕이 시작됐다거나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이 고종이라는 흰소리를 주워듣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진 않았던가. ( 「차례 앞두고 기억할 말, 가가례」 )
또 나는 어떠했는가. 매 끼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기보다는 스누피 커피로 ‘때우고’, 내 입맛을 섬세히 계발하기보다는 펄펄 끓는 마라탕을 ‘조지고’,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 없이 허겁지겁 ‘해치우지’ 않았던가. 저자는 온전한 밥그릇을 누리는 삶이야말로 진정 인간답다고 이야기한다. ( 「온전한 밥그릇을 누리는 삶」 ) 일단은 밥 먹을 때 락앤락 통에서 반찬을 꺼내 그릇에 옮겨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