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대일본주의』
시작에 앞서,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페친인 길한석 선생님 덕분임을 밝히고 싶다. 『신냉전 한일전』에 대한 서평...까지는 아니고 감상문을 준비하던 차에 하토야마 유키오를 두고 “일본판 여운형 같은 사람”이라고 평한 길 선생님 게시물에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토야마를 여운형에 빗댄 건 굉장한 탁견이라 생각한다. 하토야마는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뤘으나 미국에 개기다 단명한, 그저 그런 “전직 총리1” 정도가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전환기를 맞아 일본이 새로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그러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던 시대의 풍운아였다.
한국인 독자로서 『탈대일본주의』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하토야마가 시종일관 “건강한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추모비 앞에서 도게자를 하고,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일본 정부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으리라. 아니, 내셔널리즘은 아베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하토야마도? 한국에 대한 사죄와 내셔널리즘 긍정이라는, 얼핏 모순되는 듯 보이는 하토야마의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본 전후 정치사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일본 정치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민당에 “보수 본류”와 “보수 비주류”라는 두 흐름이 존재해왔음을 기본 상식으로 깔고 있을 것이다.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보수 본류란 평화헌법과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수용한다는 토대 위에서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에 올인한다는, 요시다 시게루로부터 시작되는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반면 기시 노부스케를 뿌리로 삼는 보수 비주류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어 미국의 속국이 아닌 대등한 동맹국으로 거듭난다는, 보다 이념/가치지향적 입장으로 볼 수 있겠다. “본류”와 “비주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본래 자민당의 메인스트림은 보수 본류였으나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의 등장 이후 비주류가 ‘신주류’가 되는 형용모순적인 상황이 도래했다는 사실 역시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자민당 내에 요시다의 보수 본류와 기시의 보수 비주류 외에도 상당히 독특한 “제3의 입장”이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의 할아버지인 이치로와 근대 일본이 낳은 가장 걸출한 자유주의 정치가요 사상가란 점에서 “일본의 김대중”이라 불릴만한 이시바시 단잔이 주도한 이 흐름은 아마 “자주파” 정도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헌법을 개정해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보수’였지만, 중국, 소련과 국교를 회복해 냉전질서를 해체 또는 완화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진보’(일본적 맥락에선 ‘혁신’)였던,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물론 “자주파” 입장에선 외교도 국방도 ‘자주적으로’ 하겠다는데 어려울 게 뭐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토야마는 자신의 뿌리가 이들 “자주파”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보수’라는 커밍아웃이자, “55년 체제”의 또 다른 축을 이뤘던 사회당의 계보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선긋기인 셈이다. 실제로 그는 책에서 사회당의 평화주의를 비현실적이라 비판하며, 차라리 사회당에서 떨어져 나온 민사당에 더 호의적이다. 그렇다고 자민당을 옹호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본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친미 일변도인 자민당의 보수주의와는 다른 보수주의를 추구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베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지만 이와나미(岩波)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후 리버럴리즘과도 거리를 두는 독특한 보수주의자 우치다 다쓰루가 『탈대일본주의』의 해설을 쓴 건, 그 점에서 퍽 시사적이다.
언젠가 끼적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이었거나 그 지배를 받은 나라들에선 보수가 민족주의고 진보/혁신이 국제주의라는 ‘교과서적 상식’이 통용되지 않았다. (사실 그 ‘상식’이 들어맞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기껏해야 프랑스 정도?)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이탈리아의 알치데 데가스페리, 한국의 이승만과 장면까지, 이들 나라에서 전후 재건을 주도한 보수 지도자는 하나같이 친미 혹은 친서구주의자였고 민족주의 성향이 약했다. (물론 이승만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족의 자주와 독립이라는 보수 진영의 단골 레퍼토리는, 오히려 이들의 라이벌인 쿠르트 슈마허, 팔미로 톨리아티, 여운형과 조봉암 같은 진보/혁신 지도자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지역적으로도 변방 출신이었는데, 아데나워는 개신교/권위주의의 프로이센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가톨릭/자유주의의 본산 라인란트 출신이었고, 데가스페리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토였던 쥐트티롤에서 제국 의회 의원까지 역임했으며, 이승만과 장면은 아예 고향이 통째로 공산정권에 넘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를 추구하는 목소리가 혁신계가 아닌 보수 세력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하토야마 이치로와 이시바시 단잔이 그들인데, 애초에 1955년 자민당이 결성되기 전엔 민주당 소속으로 요시다의 자유당과 대립했던 만큼 같은 보수로 묶기엔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토야마는 이 “자주파”의 계보를 잇는 정치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야말로 “진보”, 즉 “진짜 보수”라 생각하지 않을까? 진보는 진짜 보수의 줄임말이라는 이야기는 한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이 하는 농담인데, 실제로 대외정책 뿐 아니라 정치(관료주의 타파), 경제(토건을 통한 경기부양 지양), 환경(탈원전) 등 국내정책 면에서도 하토야마의 생각은 한국의 민주당 주류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하토야마가 일본 정계에서 그만큼 ‘독특한’ 인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주”라는 프레임으로 하토야마를 바라보면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행보도 명쾌하게 이해된다. 한국에 대한 사죄는 내셔널리즘 긍정과 당연히 같이 갈 수 있다.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우리나라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 공동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고 말이다. 같은 내셔널리즘이라도 오로지 좋은 것만 보려 하고 나쁜 것은 외면하는 아베의 유치한 내셔널리즘보다는 하토야마 쪽이 훨씬 품격있고 어른스럽다.
문제는 일본이 하나의 네이션으로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토야마는 이를 “글로벌리즘” 탓으로 돌리는데, 정확히 말해 글로벌리즘이라기보다는 초강대국의 패권주의에 가깝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하나의 초강대국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국제질서를 재편해(미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계화, 중국의 경우 천하질서) 다른 나라들에게 강요할 경우 각 나라들의 자유와 존엄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냐, 하토야마는 “리저널리즘(regionalism)”이라고 답한다. 통제되지 않은 내셔널리즘은 타국에 대한 멸시, 심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글로벌리즘은 초강대국의 패권주의나 다름없으니 같은 지역의 이웃나라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협조하자는 이야기다. 그래서 하토야마는 일본, 한국, 호주와 같은 중견국(middle power, 본문에는 “중규모 국가”라 나와 있는데 중견국 쪽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동아시아에선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라들이 많은 만큼 이들 나라들이 힘을 합쳐 우애가 넘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하토야마의 지론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리저널리즘이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토야마는 밀의 『대의정부론』까지 인용해가며 내셔널리즘은 국민국가의 본능이요, 지역통합 역시 전적으로 국민국가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방점은 리저널리즘이 아닌 내셔널리즘에 찍혀 있다. 나아가 그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공통의 종교와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EU식의 가치 중심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여러 번 단언한다. 하토야마의 사상적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시바시 단잔이 조선과 대만을 독립시킴으로써 “자유와 해방의 세계적 맹주”가 되어 미국에 도덕으로 맞서자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퍽 묘하게 느껴진다. 어떤 면에선 (비록 한미일 삼각공조를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고는 해도)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이라 이야기했던 아베 전 총리보다 퇴보했다는 인상마저 준다.
요컨대, 하토야마는 “우애”보단 “자주”의 정치인이다. 그의 선배인 하토야마 이치로와 이시바시 단잔이 추진했던 중국, 소련과의 수교와 마찬가지로, 하토야마의 동아시아공동체 역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보다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인 일본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좋게 봐줘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식의 느슨한, 상호불간섭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공동체다. 나쁘게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합종연횡을 떠올리게 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자면, 하토야마는 미국과 중국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21세기 판 “제3세계”의 리더가 되기를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미소 냉전기 인도의 네루나 오늘날 독일의 메르켈처럼 말이다. 구태여 책 제목을 “소일본주의”가 아니라 “탈(脫)대일본주의”로 정한 건, 혹시 그런 정치적 야망의 발로는 아닐까.
그런 만큼 하토야마가 “중견국(중규모 국가)”의 역할을 시종일관 강조하면서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중견국인 한국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나마도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중견국 리더는 하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의 “자주파”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재팬 패싱”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일본을 배제했던 건, 물론 아베 내각과의 의견차가 가장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일본이 ‘숟가락을 얹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도 일본도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나”여야 한달까? 하지만 그 네루도 저우언라이와 나세르, 티토와 수카르노가 있었기에 제3세계의 지도자로 우뚝할 수 있었다. 하토야마가 일본의 네루가 되지 못하고 끝내 여운형에 머물렀던 건, 중견국 사이의 우애와 연대를 말로만 부르짖었을 뿐 실천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어째서 한국과 일본의 “자주파” 정치인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생각할까? 바다 건너 이웃나라 역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건 왜 보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