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관악 갑 후보로 출마한 김대호 씨는 지역 장애인 체육시설 건립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흥미로운 점은 김대호 씨의 발언이 “장애인 차별”이 아닌, “노인비하”로 보도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점점 침침해지는 눈, 나도 모르게 절게 되는 다리, 예전 같지 않은 소화력 등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몸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장애인”이라는 말에 갑작스레 폭발한 건 아닐까.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김대호 씨는 어쨌거나 노화라는 “방 안의 코끼리”를 모두에게 드러낸 셈이다.
물론 코끼리의 존재를 인지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덩치에 놀라 호들갑을 떨며 잘못된 대책을 내놓거나, 최악의 경우 책임소재를 두고 옥신각신하다 자멸할 수도 있다. 그 점에서 노년내과 의사인 정희원이 쓴 『지속가능한 나이듦』은 흔치않은 책이다. 코끼리를 못 본 체 하지도, 그렇다고 그 위험을 과도하게 부풀리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지은이는 어떻게 하면 노화라는 코끼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사회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노인과 비노인을 아우르며 각 층위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은이의 탁월함과 진지함에 여러 번 놀라며 책을 읽었다.
책은 노화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을 다룬 1부와 노년의 질병에 대한 2부, 사회 차원의 대안을 고민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목차를 그대로 따라가면 재미없으니 순서를 뒤집어 보자. 지은이는 이른바 “초고령사회”에 대한 일각의 두려움은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여긴다. 오늘날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폐지 줍는 노인들과, 앞으로 노인이 될 이들은 꽤나 이질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현재의 기준에 따르면 머지않아 노인으로 분류될 1960년대 생은 현 시점의 노인인 1930~40년대 생과 달리 비교적 건강하고, 아직 일할 능력이 있으며,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췄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앞으로 노인인구가 늘어난다 해서 정확히 이에 비례해 부담이 커진다는 건 터무니없는 진단이다.
오히려 문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는 현재의 기준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충분히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은퇴시키고, 연금까지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무려 70년 동안이나 바뀌지 않고 있는 노인의 기준을 조금씩 뒤로 밀어내서, 최종적으로 77세 정도로 상향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에 따를 여러 혼란과 저항을 알고 있기에, 지은이는 앞으로 15년간 1년에 4개월씩 노인 기준을 상향하고, 그 뒤에는 28년간 1년에 3개월씩 상향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만약 2022년부터 이렇게 상향을 시작하면 2065년에는 노인 기준 연령이 77세에 도달하므로, 국민연금 고갈과 과도한 총부양비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하면서 사회적 저항 역시 최소화할 수 있다.
노인의 기준이 뒤로 밀리면, ‘젊은이’의 기준 역시 똑같이 밀린다. 1950~60년대에 젊은 청년이 장군도 되고 건설회장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건 당시 중위 연령이 19세 정도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20~30대는 오늘날 40대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1972년생인 유재석의 현재 나이는 1960년생인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던 때와 같지만, 어느 누구도 그때의 이경규와 지금의 유재석이 ‘똑같이’ 늙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1981년생은 만으로 쉰이 되는 2031년에야 1967년생이 만으로 서른이었던 1997년에 누린 사회적 지위에 이를 수 있다. 앞 세대가 똘똘 뭉쳐 기득권을 수호하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려서가 아니라, 생애주기가 전체적으로 길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맞춰 사회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하고, 개인 역시 더 길어진 삶에 적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 되었다 해도 노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또 앞으로 노인이 될 60년대 생이야 그렇다 쳐도 이미 노인인 30~40년대 생의 질병과 장애, 빈곤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화라는 ‘정해진 미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은이는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라는 현재의 재가 중심 서비스에 의문을 던진다. 서비스 제공자가 여러 곳을 순회해야 하는 만큼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봄은 저밀도의 재가 중심이 아니라 고밀도의 시설 중심이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아마 눈 밝은 독자라면 마강래의 『지방도시 살생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원격의료의 도입 역시 고려해봄직하다.
나아가, 지은이는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쪼개려는 일각의 움직임에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도 그럴 것이 특히 노인에게 질병과 장애, 돌봄은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느 하나만 떼어내기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노화가 진행되면 기력이 쇠하고, 병에 걸리기도 훨씬 쉬워지며,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앞으로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의 증가가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리라는 점이 무척이나 자명한 만큼, 보다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보건과 복지의 긴밀한 연계는 꼭 필요하다.
노인 문제를 고민할 때의 이러한 ‘복잡성’은 노화에 따른 질병을 다룰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적어도 노년의 질병에 대해서만큼은, 해결책은 간단명료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이 제 역할을 못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얻게 된 여러 지병과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장기가 상호작용하며 일종의 복잡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무려 1년 넘게 소화 장애와 파킨슨병 증상이 멈추지 않던 70대 후반 A씨의 고통이 고작 진통소염제 한 알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진통소염제와 함께 처방한 소화제가 신경계 부작용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처방받은 파킨슨 약이 구역과 구토를 일으키고, 이것이 다시 소화제 처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으킨 것이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등산과 골프를 즐길 만큼 건강하던 A씨는, 다른 사람의 부축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흰죽과 미음밖에는 먹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고 말았다.
주치의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급격히 의료자원이 풍부해지며 환자가 곧바로 전문의를 만날 수 있게 된 한국의 ‘독특한’ 의료시스템 역시 A씨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구토를 하면 내과 의사를 찾고, 손발이 떨리면 신경과 의사를 찾는 식으로 질병 중심의 진료를 받은 결과, 오히려 약물 사이의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은이는 A씨가 지난 1년간 복용했던 약들의 ‘자서전’을 꼼꼼히 살핀 결과 복잡계를 건드린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A씨는 밥과 김치를 먹고 지팡이 없이 병원에 걸어올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노인의학은 얽히고설킨 이어폰 줄을 풀어가는 일과 비슷한, 일종의 역추적 문제풀이인 셈이다.
이렇듯 노년의 질병은 원인을 찾기도, 상태를 호전시키기도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지은이는 노화에 대응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노화를 (아예 막을 순 없지만) 최대한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본격적으로 노화에 따른 변화가 진행되는 50대 이전에 이를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마치 적금을 드는 것처럼 매일 매일의 조그만 실천이 노화의 그래프를 최대한 길고 완만하게 ‘연착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단언한다, 기술이 발전해 노화를 멈추고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무병장수를 선물하리라는 희망은, 마치 컴퓨터 게임을 잘 하기 위해 반도체 공학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전형적인 “생목의 오류”다. 심지어 지은이는 어린 시절에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나이가 든 뒤에는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 1960년대 생에 비해 어릴 때부터 전자기기와 불량식품에 둘러싸여 생활한 1980~90년대 생의 평균수명이 더 낮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마저 내놓는다. 한때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글처럼, 우리는 고장 난 스마트폰 같은 몸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이 운명은, 아무리 영양제와 건강식품을 챙겨먹는다고 한들 절대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방법은 단 하나, 절식하고,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길 뿐이다. 특히 절식! 설탕은 금물이다. 탄수화물도 줄일수록 좋다. 인간은 좀 적게 먹는다고, 식사횟수 좀 줄인다고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해진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어차피 고기를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노인인구가 늘어난다면 대체육 시장이 발달하고 소고기는 최상류층의 사치품이 될 테니 미리 적응한다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고기를 줄이면 된다.
당연하겠지만,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아니, 동의하지 못한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노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로드맵이 너무나 따라가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솔직히 이건 뭐 평생 수도승처럼 살라는 얘긴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그저 노화라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데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전현우의 『거대도시 서울 철도』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한 나이듦』 역시 노화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안한다. 노인의 기준은 몇 살로 잡을 것이며 새로운 기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라이프 사이클은 어떻게 재조정될 것인지, 노인에 대한 의료와 복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물적, 제도적 조건이 필요한지, 노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까지, 노화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할 사항이 이렇게나 많다. 노화라는 코끼리에 어찌 대처할지 몰라 쩔쩔매지 않고 보다 나은 사회계약을 고민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첫 단추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