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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찬근 Dec 25. 2023

역사가의 연구노트가 만들어낸 '문예공화국'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올해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면, 사료를 퍽 열심히 읽었다는 것이다. 1890년대 《독립신문》부터 1920년대 《개벽》, 1950년대 《사상계》와 1960년대 제6대 국회회의록에 이르기까지 약 7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사료를 찾고, 읽고, 정리했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선 역사가는 언제든 “지금 무슨 사료를 읽고 있나요?”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적어도 지금 뭘 읽고 있고 앞으로 뭘 읽을 거란 얘기는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올해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혹시 나는 사료를 읽는 게 무의미하다 생각하는 게 아닌가, 사료보다는 재밌는 학술서를 더 읽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재밌었던 점은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길다면 긴 시대를 오가며 사료를 읽어가다 보니 비단 내용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한자가 조금 섞였을지언정 한글이 주가 된 한국어 사료만 읽었는데도 결이 다 달랐다. 가령 《독립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리듬감이다. 종결어미 “~라”의 빈번한 사용부터 해서 마치 판소리계 소설처럼 누구라도 소리 내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듬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도서관에서 《독립신문》 〈논셜〉을 조용히 몇 번 읊조렸을 정도다. 이광수의 『무정』이 나오기 20년도 더 전이니 어체 한국어가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립신문》이 여러 사람에게 널리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치 팜플렛’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리듬감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 1920년대 《개벽》으로 넘어오면, 간간이 종결어미 “~라”가 쓰이긴 해도 리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진다. 대신 일본식 표현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단순히 “~하지 않을 수 없다”처럼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는 번역투 이야기가 아니다. “社會의 圈을 脫할 수 업는”과 같이 일본에서 가나와 한자를 섞어 쓰는 것과 유사한 표현이 대부분이란 이야기다. 덕분에 사료를 정리하며 꽤나 애를 먹었다. 가령 저 위 표현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회의 권을 탈할 수 없는”인가, 아니면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인가? “進하야”는 “진하야”인가, “나아가”인가? “及하는”은 “급하는”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르는”이나 “미치는”으로 읽어야 하는가? 만약 후자라면, 현대 한국어에 일본어와 비슷한 ‘훈독’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한문 혼용이라 해서 지금의 한국어에 한자만 갖다 붙인 게 아니다.     


 그러던 게 1950년대 《사상계》에 이르러서는 일본식 ‘훈독’이 거의 사라진다. 하지만 글을 읽기는 훨씬 어렵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걸 다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사상계가 초기부터 최현배의 글을 실으며 한글전용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한자 사랑’은 퍽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상계》에서 한자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건, 체감 상 1957년 정도다. 아마 요즘 청소년에게 《독립신문》을 읽히면 “와 쌤, 라임 오지네요!”하면서 신나서 따라 읽겠지만 《사상계》는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10대에게 더 ‘가까운’ 과거는 1890년대 《독립신문》인가, 아니면 1950년대 《사상계》인가? 선뜻 답하기 어려워진다.      


 서론이 길었다. 망설임 없이 “올해의 교양서”로 꼽고 싶은 장지연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이처럼 한국사를 이루는 언어의 다양한 ‘결’을 살핀다. 한국사의 ‘언어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지극히 이분법적이며, 또한 단절적이다. 횡으로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로 그 이전은 한문, 그 이후는 한글로 나뉜다. 종으로는 양반/남성/엘리트가 애용한 한문과, 백성/여성/민중이 애용한 한글로 나뉜다. 하지만 한문과 한글은 과연 ‘단수’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독립신문》의 한글과 《개벽》의 한글, 《사상계》의 한글은 전부 다르다. 한문도 마찬가지다.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보편언어’였던 고려시대의 한문과, 유교 경전이 정치는 물론 개인의 내면까지 수양하는 ‘표준’으로 올라선 조선시대의 한문은 명백히 다르다. 장지연이 보고자 하는 것은 복수의 한글‘들’과 한문‘들’,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6월 말에 나온 책인 만큼 그 내용을 다룬 서평은 적지 않다. 나 역시 《한겨레21》에 짧게나마 서평을 실었고, 무엇보다 지은이 장지연이 《대학지성 In&Out》에 책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내용에 대한 소개는 과감히 생략하겠지만, 딱 하나 다루고픈 이야기가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서평에서 주목하지 않은, 심지어 지은이 자신도 넘어간 ‘도구’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문자는 이를 쓰는 도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p.120.) 가령 윤치호가 구태여 한글이 아닌 영어로 일기를 쓰겠다고 ‘선언’까지 한 이유는 필묵을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영어는 펜에, 한과 한자는 붓에 적합한 언어였던 셈이다. 물론 갈대 펜을 여러 번 덧칠해가며 붓으로 쓴 것과 거의 동일한 글씨체를 구현해낸 8세기 돈황의 한인(漢人), 멋들어진 로마자 서예를 하는 베트남인을 통해 알 수 있듯 문자와 도구의 관계 역시 일방적이지 않다.    

  

 서체와 활자, 도구에 대한 지은이의 관심은 한국사의 ‘뜨거운 감자’인 금속활자로까지 뻗어나간다. 그간 금속활자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서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낸 ‘선진성’에 대한 찬탄과, 그런 금속활자를 갖고도 조선말까지 인쇄혁명은커녕 서울에 변변한 서점 하나 없었던 ‘낙후성’에 대한 멸시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이 두 입장 모두 근대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며,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12세기 고려의 무신집정 최우는 왜 어떤 책은 금속활자로, 어떤 책은 목판 번각으로 찍어냈는가? 1403년 조선 조정은 하루에 서너 장밖에 찍어내지 못하는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금속활자 인쇄를 선택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느니, 그것이 정작 별다른 쓸모가 없었느니 하는 무의미한 논쟁에서 벗어나 활자에 담긴 복합적인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지은이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이러할 것이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비단 그 내용이나 문제의식뿐 아니라, 소비와 유통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지난 6월 말 책이 나온 이후, 근 3개월 가까이 책에 대한 감상이 꾸준히 올라왔다. 평범한 ‘독서 애호가’에서 기자, 전문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령 간단한 한줄평을 남기든 내용을 요약하든 자신의 공부 경험을 덧대든 다양하게 책을 읽어간 경험을 공유했다. 주요 언론사에서 큼지막하게 소개하지 않은(이건 전적으로 언론사 잘못이다!) 책으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이 책을 매개로 (그것이 있었는지도 분명치 않지만) 거의 와해된 줄 알았던 ‘서평공동체’ 혹은 ‘문예공화국’이 잠시나마 복구되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가 이토록 꾸준하고도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지은이 장지연이 탁월한 역사 글쟁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탁월하다는 건 단순히 글을 잘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지연은 아마도 소설을 제외한다면 역사를 소재 삼아 쓸 수 있는 모든 글을 써본 거의 유일한 역사가일 것이다. 논문과 학술서, 해제는 물론 교양서(『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너머북스, 2018.), 청소년을 위한 역사서(『마주 보는 한국사 교실 5: 새 나라 조선을 세우다』, 웅진주니어, 2010과 『질문하는 한국사 3: 조선』, 나무를심는사람들, 2020.), 일간지 칼럼(《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심지어는 그림책(『세종로 1번지 경복궁 역사 여행』, 너머학교, 202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독자를 겨냥한 글을 썼다. 그는 글의 성격과 목적, 독자에 따라 스타일을 달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가다.      


 하지만 단순히 장지연이 탁월한 역사 글쟁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이 책의 인기를 설명할 수 없다. 추측컨대,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역사가의 연구노트를 엿보는 기분을 선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연구자가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가에게 연구노트란 무척이나 중요하다. 역사학이란 기본적으로 사료를 통해 말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사료를 모으고, 읽고, 정리하고, 그때그때 감상과 생각을 메모 형식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은퇴를 앞둔 존경하는 교수님께서는 당신은 아직도 연구노트를 쓴다며, 박사과정생이라면 연구노트를 1000페이지는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문제는 연구노트의 상당 부분은 논문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교수님께선 1000페이지의 연구노트 중 90%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일갈하셨더랬다. 나만 해도 올해 노트 두 권 분량의 연구노트를 만들었지만(그렇다, 난 아직도 영인본으로 사료를 읽고 일일이 손으로 메모를 해가며 연구노트를 만든다), 그 중 대부분은 레포트에 넣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버려진’ 연구노트는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일단 연구노트는 논문보다 재밌다. 왜, 쭈쭈바도 꼬다리가 더 맛있지 않은가. 논문에 담지 않았다는, 혹은 못했다는 건 학술장에서 인정받기엔 (아직은) 어려운 얘기라는 의미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딱딱한’ 학술장이 감히 담아낼 수 없는 발랄하고 참신한 얘기라는 의미기도 하니 말이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말하자면 역사가 장지연이 논문에는 싣지 않거나 못한 연구노트처럼 읽힌다. 연구노트라 해서 산만하다거나, 허무맹랑하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탁월한 역사 글쟁이답게, 장지연은 유려한 문장과 매끈한 서사로 연구노트를 한 편의 이야기로 묶어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역사가가 사료를 읽고, 분석하고, 고민하며 논리와 얼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생생히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역사 교양서는 주어진 사실이나 서사를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독자 역시 역사 교양서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복잡한 맥락을 보다 잘 이해하는 것 정도를 독서의 목표로 삼고 말이다.     


 반면 이 책은 (장지연의 선별을 거치긴 했지만) 사료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지은이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각을 펼쳐가는 모습을 독자에게 거의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장지연이 사료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요새 역사교육의 화두이기도 한 “역사하기(Doing History)”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게 된다. 역사가의 연구노트를 엿보는 기분을 선사했다는 건 이런 의미에서다. 이 책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일종의 ‘문예공화국’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흔히 요즘 독자는 지적으로 게으르기에, 지은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떠먹여주지’ 않으면 책이 팔릴 수 없다고들 한다. 내가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의 꾸준한 인기를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정 반대다. 독자는 주어진 사실과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사료를 읽고 판단하고 싶어 하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이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서가 없었을 뿐이다. 장지연은 자신의 연구노트를 선뜻 독자에게 공개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역사 글쟁이답게 이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풀어냈다. 그랬기에 다양한 독자가 책을 읽으며 사료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감도 잡아보고, 감상과 서평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단순히 좋은 교양서의 모범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나아가 대학에서의 역사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학생이나 독자에게 단순히 주어진 사실과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역사하기”에 참여케 하려면 어떤 방법과 전략을 택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공역사”가 화두인, 정확히 말해 역사에 구태여 “공공”을 붙이지 않고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책은 역사가 기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설민석화’하지 않으면서도) 대중과 접촉면을 넓혀갈 수 있는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책을 매개 삼아, 그간 애매하게 퉁쳐왔던 역사와 대중의 ‘소통’에 대한 보다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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