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살다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과거 잘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그리 대단하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 실은 더 큰 흐름의 일부였음을 문득 깨닫는 경험 말이다. 반대로 그때는 무척 심각하고 중요하게 느껴졌던 일이 돌이켜보니 그런 흐름과 별반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처럼 뒤늦게야 알게 되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을 우리는 보통 역사라고 한다. 역사가의 작업이란 그런 흐름 속에 개인이나 사건을 알맞게 위치시키는 일일 테고 말이다.
아마도 구술사는 이런 ‘위치지우기’로서 역사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구술사, 혹은 구술생애사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과 연결한다.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나 편견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가장 큰 것 역시 가장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나아가 가장 작은 것이 때로는 가장 큰 것을 전복하고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구술사의 묘미가 아닐까.
문제는 구술사가 갖는 어마어마한 매력과 잠재력에 비해, 정작 ‘제대로 된’ 구술사를 쓰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 만만하게(?) 느껴져서인지, 최근 ‘공공역사’가 각광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술사는 이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세’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이나 부모, 조부모의 생애사 쓰기를 꼭 한 번은 과제로 내준다. 공공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사업에서도 구술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말이다. 하지만 구술사를 어떻게 하는지,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이동해의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이처럼 구술사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높지만 그 방법과 의의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지금 가뭄에 단비처럼 등장한, 너무나도 훌륭한 구술사 교과서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90년대생 지은이가 구술사의 대상으로 삼은 이는 1935년생 외할아버지 허홍무. 얼핏 ‘내 할아버지의 역사’ 혹은 ‘나의 뿌리를 찾아서’ 같은 뻔한 주제가 떠오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역사학자답게 지은이가 무척이나 촘촘하고, 또 치밀하게 할아버지의 개인사와 격동의 한국근현대사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된다. 우선 문장과 구성이다. 지은이 이동해는 자칫 어렵고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혹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지엽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도 흥미롭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얼핏 듣기로 그는 출판사에서 2년 간 어린이용 원고를 쓰는 일을 했다는데, 그 솜씨가 어디 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쯤 되면 모든 역사가를 대상으로 ‘출판사 의무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때 그가 브런치에 열심히 쓰던,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글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처럼 이동해는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여하튼 좀 거대하고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앉은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를 뚝딱 읽게 되는 것이리라.
문장과 구성만큼,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하고 경이로운 점은 이동해의 꼼꼼함과 집념이다. 우리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제시대 때 천석꾼 집안이었다느니, 6.25 동란 때 죽을 위기를 넘겼다느니, 지금 보이는 저 아파트촌이 20여 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다만 “아 그랬구나~”하고 더 깊이 파헤칠 생각을 않을 뿐. 이동해는 달랐다. 학부 2학년 때인 2016년 구술사를 처음 접하고 바로 할아버지를 인터뷰했다. 물론 학부 2학년생이 그 맥락을 이해하기는커녕 잘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할아버지의 구술을 갖고 바로 역사책을 쓸 수는 없을 터. 그는 좌절하는 대신 오랜 시간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았다. 족보, <호적부>, 국민학교 <생활기록부>, 군 생활 내력이 담긴 <거주표> 등 할아버지와 관계된 자료를 모으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을 보다 풍부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쌓고자 자료를 찾아 헤맸다.
무려 8년에 걸친 이러한 ‘빌드업’의 결과가 이 책이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의 탁월함은 다름 아닌 각주에서 드러난다. 각주는 역사가가 얼마나 두텁게, 또 정확하게 대상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책은 24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이례적으로 주석이 많이 달렸다. 세어보니 무려 437개다.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주석 중 허투루 달린 주석이 없다는 사실이다. 허홍무의 생애사를 따라가다 ‘이 부분이 궁금한데?’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엔 논문이든, 신문 기사든, 공문서든, 기관에서 제공하는 아카이브든 어김없이 주석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주석이 달린 맨 뒷부분과 본문을 분주히 오가곤 했는데,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설명하기 위해선 최소한 437개의 주석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437개의 주석으로 두텁고 풍부하게 맥락을 덧댐으로써, 얼핏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던 허홍무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아마 본문에 다 담지 못한, 혹은 않은 탓이겠지만 사실 허홍무의 구술이란 그리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어린 시절 동네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게 다 우리 거였다든지, 천안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작은할아버지가 제련소를 관리하며 금광을 할 생각을 했다든지, 금광이 망하며 아버지가 부평 미쓰비시 공장에 취직했다든지, 인민군을 피해 고모 집 뒷산에 있는 항아리 묻는 방공호에 숨었다든지 하는, 우리 모두 한두 번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동해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에, 온갖 자료를 뒤져가며 맥락과 의미를 부여한다. 비단 구술사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모두 해야 한다고 해서 잘 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동해는 무척이나 탁월하게 이 작업을 해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개인의 삶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풍경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다. ‘나무 심기’에 성공해 총독부로부터 임야를 양도받아 천석꾼으로 행세하며 면협의원까지 될 수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지주들, 일제가 국제연합에서 탈퇴하고 영미와 관계가 나빠지며 치솟은 금에 대한 수요와 조선에 도래한 ‘황금광시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중공업단지 조성과 헌병이 감시하는 삼엄한 군수공장, 여운형의 인민위원회와 이승만의 독립촉성회, 미군정이 난립하던 해방공간의 혼란, 공교육이 감당할 수 없었던 폭발적인 교육열을 대신 채워줄 서당의 존재, 인민군과 국군이 서로 죽고 죽이던 ‘마을로 간 한국전쟁’까지. 허홍무의 삶 그 어느 대목도 한국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과 연결되지 않았던 게 없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너무나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책이 안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허홍무의 구술과 역사의 공식 기록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줄다리기다.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말에 미심쩍인 부분이 있으면 꼭 자료를 찾아보고 정말 허홍무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다면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가령 군복무를 하며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 포로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았다는 허홍무의 이야기에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참전 용사 등록을 위해 병무청에서 <병적증명서>를, 국방부 인사사령부에서 <거주표>를 발급받았지만, 문서에 따르면 허홍무의 입대일은 정전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1954년 7월 12일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것도 후방에서 근무한 데 따른 부끄러움에 허홍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런 ‘팩트체크’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동해는 할아버지가 무심코 한 이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어코 그것이 진짜였음을 보여준다. 허홍무의 작은할아버지 허옥이 운영한 광산이 <조선총독부 관보>에 등록되어 있었다든지, 인민군이 철수하며 인주면 부면장을 처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놓았다는 허홍무의 기억이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실려 있었다든지, 허홍무가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첫사랑을 만나게 해준 철길이 지금은 사라진 문현선이었다는 대목에선 짜릿함마저 들었다. 마치 잘 쓴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쾌감을, 다름 아닌 1935년 허홍무의 구술사에서 느꼈달까?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훌륭한 역사가 선생님들 중에는 추리소설 마니아가 많은데, 좋은 역사책은 추리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비단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공공성’을 다시금 묻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 ‘공공역사’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역사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질문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아주 삐딱하게 말하자면, “그럼 기존 역사학은 공적이지 않다는 얘기냐!”는 반론도 가능하고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 책은 공공역사란 이런 것이라고까지는 말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한 갈래를 무척이나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학부 4학년 때 들었던 답사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역사가의 공적 역할이란 여러 맥락을 살피며 이들을 제대로 이어주는 게 아닐까하는 말씀을 하셨다. 꼭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고 선비의 결기로 잘못된 시대에 준엄히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요새는 그런 게 필요하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삶을 역사라는 보다 큰 맥락과 이어주고,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작고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역사가의 의무일지 모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역사학자 이영남이 이야기한, “중층적인 삶의 층위를 펼쳐 사회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을 들추어내 서로 조정하고 관련짓는” 치유와 연대의 ‘임상역사’의 길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300쪽.)
이동해 역시 할아버지의 구술사를 쓰며 그런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 듯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허홍무의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며 어린 시절 맺혔던 마음 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 역시 조금씩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허홍무 역시 한두 마디씩 거들며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 구술사가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한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해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이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이해와 소통, 나아가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는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가가 맡을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역할일 것이다. 이번 책으로 그 가능성을 멋지게 보여준 이동해가, 앞으로도 자신의 방식대로 역사가의 공공성을 실천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