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 듯 처음 아닌 처음 같은 대만 용산사에서

by 나들


어둑해진 즈음 저녁 마실을 나섰다.



사실 십 년 전 혼자 대만여행을 왔을 때도 용산사를 오긴 왔었다.

오긴 왔었다라니. 이 심드렁하고 껄적지근한 말에서 유추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크게 감흥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 여행은 꽤 만족하고 즐거웠어서 그간의 여러 번의 '혼여' 중에서도 '혼여의 진수'라 자평할 만했는데, 그럼에도 용산사에 대해서만큼은 다녀갔지, 외에는 인상적인 기억이 남아있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완전 감흥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밤, 비, 용산사의 합체에 나는 완전히 뻑이 갔다.

밤의 용산사는 (지난번에는 밤에 왔었는지 낮에 들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 즐대카페('즐거운 대만 여행' 인터넷카페)의 수많은 후기에서 익히 봤었다. 그러나 역시 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실제 마주하고 몸소 속해있으니 다채로운 감각이 4D로 전해진다.


조명을 밝힌 용산사는 화려하고 은은했다. 캄캄한 밤 속 야경이 화려함을, 많은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한 데 섞여있음에도 절 특유의 경건함이 은은함을 극대화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입구를 지났다.

사찰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짧은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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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 내 여러 법당들 사이 마당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허공 어딘가 빛이 쏘이는 즈음에서 빗줄기는 마음껏 모습을 드러낸 채 쏟아지고 있었다. 감성 아줌마 관객을 의식했는지 여보란 듯 더욱 기세 좋게 내리는 빗발은 한편 가로등인지 조명인지에 비추여 한 줄기 한 줄기 가느다란 자태를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가늘고 세찬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아까 용산사를 마주하고 느꼈던 화려하고 은은한 인상과 겹친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것'이나 사람은 매력 있다. 뭐지? 정체가 궁금해진다. 다시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자꾸 대화 나누고 싶어진다. 오늘 용산사가 내게 그랬다.


두 번짼데 뭘. 한 번 왔었는데 뭐 하러 또. (심지어 별 감흥도 없었는데). 하며 패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굳건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 다시 찾은 것도 아니었다. 숙소에서 가까우니 저녁 먹으러 가는 김에 마실 삼아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용산사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고 심지어 힐링이었다.

용산사가 요망한 존재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용산사는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 있는 유명 사찰일 뿐이다. 그 사이 리모델링을 한 것도 아니고 십 년 전 들렀을 때나 오늘이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변한 것은 나다.



20241223_184022.jpg?type=w773 꼬맹이. 젤리 있으면 내놔봐.



여행이 그렇다.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더라도 매번 결코 같지 않다. 누구와 함께인지, 당시 어떤 상황에서 간 여행인지, 가치관이나 고민 등 내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된다. 나 역시 같은 여행지를 또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제주도, 대만, 홍콩이 그렇다. 대만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10년 전에 혼자 왔고, 5년 전에 친구와 둘이 왔고 이번에는 우리 가족 다섯 명이 함께다. 세 번 모두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인 것은 같지만 그 색깔이 다 다르다. 홍콩도 한 번은 친구와 함께, 그다음은 혼자였는데 두 번의 여행에서 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을 했다. 동반자에 따라 나의 역할도 달라지며, 여행자로서의 내 모드도 그렇다. 누군가(들)와 함께일 때는 그들의 의견이나 컨디션도 함께 살피고 조율하며 움직인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혼자서는 어려운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반면 혼여일 때는 나 자신과 여행지 자체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나도 나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현지인이든, 같은 여행자든-도 그에 맞춰 달라진다. 혼자 여행할 때는 허들이 낮아서일까 스몰토크가 많고 인연의 폭이 넓고 자유로운 장점이 있는 반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일 때는 엄마들의 대시(!)가 적극적이라는 면이 재미있다.

이러니 같은 여행지라고 같은 여행이라는 법 없다.






그러고 보면 책도 비슷하다. 우리 집 쌍둥이의 경우 같은 책을 못해도 백 번은 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이런 성향은 육아상담에서 종종 만나는 고민이기도 했는데 귀를 쫑긋하고 듣던 내가 무릎을 탁 치고 새겼던 답변이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한 책을 백 번 보면서 한 그림에서 백 가지의 그림을 보고 한 이야기에서 백 가지의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수년이 지나 다시 펼치는 때가 있는데 이거 내가 읽었던 책 맞나? 할 정도로 생경하게 느껴지곤 한다. 책은 그대로일진대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거다. 오래전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포인트에서 멈추고 공감한다. 반면 분명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다시 폈을 땐 유치해서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는 책도 있다. 그땐 또 그것에 감동했을 유치하고 순수하고 뜨거운 나이였을 거다.



여행에, 책에, 삶에 다 적용할 수 있는 이 점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고 흥미롭지 않은가.

점점 우리 평균수명이 백 살이 넘는다는 소식이다. 아우 지겨워! 싶다가도, 생을 이토록 힘들고도 흥미롭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런 묘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걸 매번 같지 않게 보며, 다른 걸 여기저기서 공감하며 말이다. 물론 지겨울 때도 있겠지. 아니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고 다름을 새롭고 다르게 여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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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는 점괘가 유명하다. 호기심 그득한 아이들에게 점괘 치는 방법을 일러준 다음, 나는 비 내리는 밤의 용산사에 조금 더 빠져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걸음을 옮겼다. 암만 분위기가 밥 먹여주는 감성아줌마여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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