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 사람보다 아무 말하지 않은 상처가 더 오래 남았다

by 나들


특별회계 담당자였다.


시군에서 단 한 부서에서만 쓰는 그 특별회계는 정말 욕 나오게 특별하다.

네거티브하게 특별한 점 중 두 가지만 꼽아보자면, 일단 외롭다. 전 직원이 다 쓰는 일반회계와 달리 이건 우리 군에서도 우리 부서, 그중에도 그 자리에서만 쓴다. 막히면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

또 하나는 대개 장기공사다. 입찰부터 계약 변경까지 규모가 다른 데다 몇 년까지도 이어진다.


’그‘ 공사는 3년 만의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사업 담당자는 준공을 코앞에 두고 공사계약 변경을 수차례 하고 관급자재 변경까지 서류를 끝도 없이 가져왔다. 안그래도 바쁜 연말인데 이 일로 매일 야근이었다. 수십 종의 관급자재를 수차례 반복해서 수량을 계약 변경할 때마다 혹여 실수나 누락이 있을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현장 사정에 따라 계약 변경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업무의 일부라는 걸 알기에 어디 원망할 데 없었고 싫은 소리 못하는 성향상 어쨌든 이를 악물고 버티며 처리하고 있었다.

그가 N번 째 관급자재 변경 서류를 가져왔다. 문제는 그의 태도였다. 별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툭 건넸고 말투도 그러했던 것 같다. 사실 이제는 희미하지만 내가 그리 느꼈던 것 같다.

지렁이가 밟혔다.

꿈틀. 팔딱. 펄떡펄떡.


한참 지난 후에 옆자리 신규 직원은, 당시 미-소 냉전 같은 분위기로((신규직원님 어느 시대를 사셨어요) 매우 살벌했다고 고백했다.






5년이 흘렀다.

몇 번의 인사이동이 있었고 우리팀은 저마다 다른 부서 소속이 되었다. ’그 일‘ 때 같이 있었던 팀장님이 어느새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퇴직을 축하하는 의미로 당시의 우리 팀이 다시 모였다. 내가 제일 잘나가, 가 아니라 내가 제일 힘들어 하는 게 직장인 국룰. 우리 또한 우리가 제일 힘들었다는 희한한 자부심이 있었다. '고생'을 같이 겪어온 동지는 끈끈한 만큼 할 말도 많게 마련.

그 수다 속에 상처가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끝없이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추억팔이를 하며 2차로 옮긴 자리에서였다. 어떤 에피소드에 이어서 팀장님이 덧붙였다.

“근데 말야. 나들이가 까칠한 면이 있어~”


맥락 없는 말이었다.

담아둔 말인데 기회가 없어 벼르다가 이때다 하고 뱉은 듯한 인상이었다. 아쉽게도 별로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 말이 튀어버렸다.

나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동지들의 표정에 순간 물음표가 하나씩 떴다.

팀장님도 감지한 건지 서둘러 덧붙였다.

“아니~ 나들이가 쿨하고 일도 잘하고 그런데 가끔 보면 날이 서 있을 때가 있잖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팀장님, 그때 김종욱 씨랑 말이예요?”

“어~ 어! 야~ 그때~”


할 말을 잃었다.

적어도 그분이 꺼낼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일은 15년의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시간으로 상징처럼 내게 남아있다.

앞서 사건을 대략 언급했지만 묘사가 ’대략‘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자체는 이미 희미하기 때문이다. 무례하게 느껴졌’다고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이나 ’뾰족했다는 팀장님이 기억하는‘ 나의 말이나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많이 화가 났었다, 는 사실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건의 발단과 그로 인해 김종욱씨와 원수졌던 일까지는 그 시기 너무나 과중하고 벅찼던 업무가 원인이었음을 인지하고 나니, 내 마음에서 즉시 정리가 되었다. 그땐 그랬지, 남 일처럼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담당자인 그는 오죽했겠나, 일면 측은지심까지 가질 만큼의 아량도 생겼다. 당시 겪은 괴로움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빠르고 깔끔하게 덤덤해졌다.


그날이 힘든 시간으로 남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포탄과 사격은 중지되었지만 개운한 종전이란 없다. 전쟁 상대는 사라지고 의욕도 꺾였지만 내 분노까지 누그러진 건 아닌데 사위는 고요했다. 속 시끄러운 내 사정과 달리 아무 일 없는 듯한 사무실의 평온함. 그 간극에 짓눌려버릴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서글퍼졌다.


때때로 그 장면이 떠올랐다. 김종욱씨와 말다툼하는 장면이 아니었다. 자리에 남은 내 모습이 제3자의 시선으로 보였다.

거의 울 듯이 앉아있는 내가.



잊을 만하면 반복해서 떠올랐다.

겉에서 빙빙 도는 내게 더 솔직해져 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점차 주변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내 오른쪽으로 팀원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고 내 맞은편 자리에도 팀원이 있다. 내 왼쪽에는 팀장님이 팀원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 있다. 그 날따라 누구도 휴가도 출장도 없이 참 성실하게도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 말다툼이 일어나기 전부터 끝까지. 죽.






민원인이든, 상사든, 내부 직원이든, 얼굴 붉히거나 마음 상하는 일은 허다하다. 십수 년을 숱하게 보았고 겪어왔다. 통상적으로 그런 일을 당하면 옆에 누구라도 다가와 “에이, 나가자, 담배 한 대 피우자”라거나 믹스커피라도 한 잔 타서 데리고 나간다. 그럼 당사자는 머리에 열이 나는 채로 혹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못 이기는 척 따라 나간다. 해결책을 주고받자는 게 아니다. 그 자리를 잠시 뜨는 것만으로, 바깥 공기 잠시 쐬는 것만으로, 기분 전환이 되니까. 그것이 최선이며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너도 알고 나도 겪는 일, 느낌 아니까. 같은 일 하는 동료의 공감이자 배려이며, 위로니까. 나 역시 그런 공감, 배려, 위로를 받았고 배웠고 또한 베풀며 여기까지 왔다. 인수인계도 매뉴얼도 없지만 이 팍팍한 사회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는 암묵적인 룰 같은 거였다.



이제 또렷해졌다.

가라앉지 않은 화, 민망함, 수치심 등등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을 하고선 울음을 참고 앉아있는 팀원을 두고, 모두 그렇게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들에게 나는 서운했나 보다. 발단이야 김종욱씨였지만 그건 거기까지였다. 다른 팀원에게 화가 난 것은 곧 잊은 데 반해 우리 팀에 섭섭한 마음이 꽤 오래간 건 그래서였나 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가진 애정이 혼자 실망을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팀 전체보다 팀장님한테 섭섭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한 팀원 셋은 모두 입사한 지 일 년도 되지 않거나 어린 직원들이다. 미국-소련 냉전 시대만큼 살벌했다 말하는 그들에게 기대나 서운함은 애초에 가당치 않다. 하지만 내 연수만큼을 더 일한 팀장님은 다르지 않나. 그래. 그랬나 보다. 내 편이 되어 거들어 주는 건 바라지도 않고, 중재는 고사하며, “나들아 나가자.” 하면 안 피우는 담배도 피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속상한 팀원을 두고 전말을 지켜봤으면서 꿈쩍도 안 한 팀장님이 야속했던 것이다.


생각이 깊다 보면 결국 화살이 내게로 향하기도 한다.

끔찍했던 그 정적을 박차고 나갈 만도 한데 나는 왜 참지 않지 않고 꾸역꾸역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미련하게. 나에 대한 답은 오래지 않아 나온다. 왜는 무슨. 뻔하지. 여전히 눈앞에 남은 일을 처리한다고 그러고 있었겠지. 바보 같아.


덮는 게 속 편할 때가 있다. 따질 수도 바꿀 수도 없으니 타인에 대한 원망은 어렵다.

그 일도 그렇게 묻었다.






파묘도 아니고.

애써 묻었던 걸 그렇게 맥락없이 ’굳이‘ 꺼낸 팀장님.

“나들이가 까칠한 면이 있어~”

뭐에 대해 말하는지 금방 파악했지만(그런 말을 할 만한 일은 그날이 유일했으니) 그 말을 꺼낸 의도가 뭘까 생각하느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다시 말하지만 적어도 그분은 그 말을 끄집어내도 될 자격이 없다. 그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행동하지 않는 행동으로 팀원을 힘들고 외롭게 했던 팀장님이 이번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함으로써 다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나. 애써 아문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 같았다.

까칠하니, 날이 선다느니 하는 표현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자기 입으로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나의 ’성격 문제‘로 밀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팀장님이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 점이 더 상처였다.

몰랐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안 들었으면 나았을 뻔했다. 역시 술자리는 1차까지...




다행이고 감사한 건, 팀장님의 저 말에 대해 함께한 모두의 반응이었다.

“무슨 말이야, 나들이가 얼마나 착한데!”

“어? 나들팀장님 너무 좋다고 우리 동기들 사이에 유명한데요~”

한마디 못(안)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마치 연대하듯이 방패를 쳐주는 동료 후배들 덕에 이번엔 서글프지 않았다.






아쉬움은 대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순간 정체를 드러낸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너무 사소하거나, 너무 늦었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땐 왜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그런데 바로 그 질문을 글로 옮기는 순간, 아쉬움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한다.
그 감정 안에는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던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향해 얼마만큼 마음을 쏟았는지 그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쉬움은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이어주는 정서적 연결 고리가 된다.

-<쓸 때마다 명랑해진다>, 이은경-




5년 전 그 때를 두고두고 복기했듯이 어젯밤 들은 팀장님 말을 계기로 이런저런 질문과 생각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생각도 병인 양하여.


’나는 그때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지금의 나라면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박차고 나갔을 거다. 화내기보다 단호하게 쏘아붙일 거고. 남은 화는 글로 욕을 하며 풀 수도 있다. 더 이상 타인이 내가 하듯 해주기를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되었다. 아, ’덜‘ 그런다.

그때의 내가 왜 그렇게밖에 못했는지에 대해 지금의 내가 변명해 주고 싶다. 인생 최고로 어렵고 과중한 업무를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해내는 중이었고, 그때는 다섯 살만큼 더 어렸고 여렸다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힘든 시기를 통과한 덕에 나는 굳은 살도 박히면서 그때보다 여물었고 조금 더 유연해졌다.



한편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런 말에 상처받은 나는 내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서가 아닌가. 내가 뾰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오히려 잘된 일이다. 나도 모두를 좋아하지는 않듯이 내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 않나. 약자 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에게 무례한 이에게는 선택적으로 날을 세워 나를 보호할 필요도 있다.






하는 김에 그때의 우리 팀장님에 대해서도 문답을 해본다.

'팀장님은 그때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팀장님이 왜 그랬는지는 팀장님만 알겠지. 메누리도 몰러.


그 사건과 관련한 변명이랄지 해명을 내가 대신해 줄 수도, 그럴 생각도 없지만, 팀장님에 대한 그 밖의 이야기는 좀 하고 끝내고 싶다. 나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사실 그대로다.


팀장님은 우리 팀으로 발령받아 오신 후 처음부터 차석인 나를 믿고 많은 부분 믿고 맡겼고 그 신뢰에 나도 더욱 책임감으로 직원들을 이끌었다. 상사라는 존재가 직원이 일을 하는 데 부담이 되는 일이 없었다. 이후 내가 육아휴직을 내고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팀장님에게 먼저 말씀드렸을 때, 팀장님은 단번에 내 결정을 응원해 주었다. 한 치의 원망도 난감함도 섞이지 않은 진심임을 느꼈다. 명석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었고 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상사였다.

’그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분이었고 좋은 관계였음에 감사했다.



직장도 결국 사람 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이나 완벽한 관계란 없다. 상처받고 실망하고 서운함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일과 말로 나는 우리의 나머지 좋았던 시간과 감사함을 '부정할 뻔했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험난한 민원을 같이 해결했고 난관에 서로 도와 헤쳐 나갔고 뿌듯했고 함께 웃었는데 말이다.





마음 상한 일은,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로 풀며 해소하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런 상처들 덕에 나는 사색했고 또 성장했다. 그것도 내 고유의 경험이 되었다.

(글도 하나 뽑았으니 나쁘지 않다.)


다시 만나도 우리는 또 반복되는 괜찮은 추억을 팔아 한 잔 할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내 굳은살이 한 겹 추가되어, 팀장님의 말에 받았던 상처마저 당당하고 담담하게 안주 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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