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통화를 다시 부를 때
“이것도 이해 못해줘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내용은 분노인데 음색은 지치고 허탈한 기색이다.
나는 국유재산 업무 담당자였다. 국유 재산 사용을 허가하고 그에 따라 사용료를 받는 업무도 그 일부였다. 고지서가 여러 번 나갔지만 내지 않고 체납한 대상자들을 정리하며 그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날이었다.
“000님 ~번지 국유재산 사용료가 ~원 체납되었습니다. 보내드린 고지서로 ~까지 내셔야 합니다.”
대상자 이름은 남자 이름이었는데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받았다.
“우리 남편인데요. 지금 병원에 와있어서 낼 수가 없어요”
목소리는 담담하고 낮았다.
“남편이 암이어서요. 지금 그럴 정신이 없네요.”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당황했고 어색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적절한 반응을 알지 못하겠다.
그런데. 결국 튀어 나온 말이 가관이었다.
“그래서... 언제 내실 수 있나요?”
대체 왜 이 말이 튀어나왔는지 십오 년 후의 나는 정말이지 잊고 싶다. 숨고 싶다.
그날의 자신을 부정하고만 싶다.
“이것 봐요. 암이라고요, 암. 그것도 이해 못해줘요?”
악쓰거나 징징대는 여느 악성 민원인의 톤이 아니다.
지치고 허탈한 음성이 오히려 내 마음을 찔렀다. 그제야.
나는 뜨끔한과 뒤늦은 송구함에 허둥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네... 그럼...”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수화기 너머의 그분께 인사는 제대로 하고 끊었는지는 흐릿하다. 하지만 기억을 꺼내보려 애쓰고 싶지 않다. 보나 마나 형편없었을 거니까.
아직 9급 딱지를 붙인 스물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신규임용장 잉크도 마르지 않은 9급 신규라고, 그저 스물 몇 살일 뿐이라고 모두 그날의 나처럼 엉망인 건 아닐 텐데 나는 두고두고 부끄러운 그 날을 어떻게든 변명하고 싶은가 보다. 자꾸 경험없음과 어린 나이를 내세우려 한다. 그렇다. 이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 살면서 문득문득 –사실 꽤나 자주- 이 통화가 떠올랐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던 걸까. 떠오를 때마다 한 일은 매번 똑같다. 부끄러워하고, 반성 또 반성하는 일. 생각할수록 구제의 여지가 없는 전화였다. 인생에서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일을 꼽을 때 수많은 사건 중에 높은 등수로 올릴 수 있는 일.
그런데 나는 정말 왜 그랬을까.
공감 지수가 심히 높아서 나는 사회복지사는 되려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누군가 했었다. 어렵고 딱한 사정이나 사연을 대할 때 거리를 조금 떨어져야 도울 수 있지. 너무 공감하고 몰입하는 바람에 오히려 나의 에너지를 다 빼앗길 정도라서다. 영화든 소설이든 사회적 사건이든 과하게 이입한다. 앞에 있는 누가 말하면서 울면 같이 운다. 그래. 이게 나의 타고난 성향이다.
그날 그 순간이 이토록 선명하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은 것은 이런 이질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원래의 내 성정이라면 하지 않았을 뚝딱거리고 이상했던 반응.
그때의 나를 다시 떠올린다.
(다시 소환하는) ‘스물일곱 살의 9급 신입’. 그녀는 업무 매뉴얼과 체납 정리라는 눈앞의 할 일이 머리에 입력된 상태에서 이미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린 시점이었다. 체납자에게 독촉의 멘트를 하고 때로 험한 말을 들었고 이걸 반복, 또 반복. 타고난 성향이고 자시고, 공감은 헬멧처럼 잠시 벗어 내려놓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그 중년 여성과의 통화는 변수였다. 변수에 대응하기에 그놈의 ‘스물일곱 살의 9급 신입’은 경험치가 너무나 바닥이었다.
...라고 15년 만에 분석이라고 해 본다.
사십 대 중반이 된 지금 나의 경험치는 아주 바닥은 아니게 되었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공감하고 아는 만큼 이해한다고 한다. 나도 그 사이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 맘 같지 않은 육아를 하고, 더 빡센 사회생활을 버텼다. 아빠와 갑자기 이별했고 사랑하는 할머니가 아프시다. 몸이고 마음이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나도 주변도 모두가 젊고 건강했던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경험은 버릴 것 없이 내게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겪고 느낀 만큼 남들 사정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 거라 믿고 있다.
남편의 암선고 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그분에게는 어린데다 어리석기까지 한 담당자의 대응이 어떤 또 하나의 상처와 좌절로 남았을지.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니, 아직 똑같은 경험은 없으니 온전히 이해한다고 하면 오만이겠지. 하지만 ‘15년 전의 나’처럼 엉망은 아닐 거라는 건 분명하다. 경청할 것이고, 혹시 체납액을 결손하는 방법이 있을지 찾아볼 수 있겠다. 어쩌면 내가 울음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중간이 없는 인간.
'나와 타인이 같을 필요는 없다. 다름 속에서도 함께 머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쓸 때마다 명랑해진다>, 이은경
'이해'라는 주제를 받고, 그날의 통화를 떠올린다.
그 날의 일을 나는 너무나 오래 자책해왔다. 부끄러움과 자책이라는 기분과 느낌으로만 존재했던 과거를, 그래도 이제야 눈에 보이는 글자로 늘어놓고 나니 조금은 홀가분하다.
'잘한 짓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도 이유가 있었지'
같은 책에서 나를 보듬어준 문구다.
이 일을 비롯해서 젊을 때 수많은 흑역사들을 복기하며 살아온 덕분에 그래도 좀 인간이 되어가고 있지 싶다.
그시절보다 더께가 쌓이고 조금 더 깊어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많은 실수 덕이다.
결론적으로 실패는 아니니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