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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Nov 28. 2023

나 없는 동안 너 없는 동안

엄마와 아이들이 하루 떨어진 사이.

하하 호호 까르르

설렘과 긴장과 반가움과 즐거움을 버무려 웃고 떠드는 사이에도 -잊고 있었지만-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신의 계시였을까. 무심코 휴대폰을 집어 들고 깜짝 놀랐다. 9시 10분.

눈을 의심한 동시에 의자에서 튀듯 일어났다.

기차 시간은 10시. 이곳 서울역 근처에서 청량리까지는 30여분. 촉박하다.

잰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하며 휴대폰을 열었다. 부재중 전화와 카톡 메시지가 와있었다. 남편 전화기로 딸내미가 걸고 보낸 거였다.

'엄마, 저 맹군데요. 이거 보면은 전화 주세요'

이어 웃는 얼굴에 커다란 ❤️가 가득한 이모티콘이 붙어있다. 8시쯤이었다.

한 시간 후 다시 온 메시지는 이랬다.

'엄마ㅜ 걱정돼요ㅜㅜ'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았어요~"

마지막 메시지처럼 걱정이 가득 묻은 아이의 목소리가, 참았다 터지듯 나왔다. 엄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지만 열한 개의 입을 빌려서라도 미안함을 전하고만 싶다. 변명이 될 수밖에 없지만 사정을 최대한 소상히 설명하고, 처음 입을 뗀 말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덧붙인다

진심을 꾹꾹 담아서.

"정시켜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 어머님이 전한 비하인드스토리

첫째 : 할머니, 엄마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요?
둘째 : 엄마 시끄러운 데 있어서 못 받는 거 같은데.
(엄마와 통화 후)
첫째 : 할머니, 엄마 있는 데가 시끄러워서 못 받았대요.
둘째 : 거 봐. 내 말이 맞지?





모임의 2차에 대한 공지가 올라온 날 즉시, 예매해 둔 돌아가는 차편을 막차인 밤 열 시로 바꾸었고, 모임의 본식(!)을 마치고 2차로 옮긴 때가 불과 오후 다섯 시였다. 마음을 놓고 유유자적 여유만만 놀고 있었다. 함께 수다 떨던 다른 작가들이 간간히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으며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음에도, 나는 폰을 거들떠볼 생각도 안 했다. (대관절 테이블에는 왜 올려둔 걸까.)




우리 부부는 원래 그렇다. 외출한 상대에게 엔간해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당일치기든 외박이든, 상대의 외출에 대해 날짜와 가능 여부를 미리 합의했을 때에는, 남은 사람은 아이들을 독박으로 어떻게 케어하며 보낼 것인지에 대한 구상까지 같이 이루어진다. 십여 년을 가사와 육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함께 해왔으니 부모 중 한쪽의 잠시의 부재로 아이들에게 혹은 서로에게 문제 될 일이 없을 것을 믿는다. 서로의 협조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일인데 이게 원활한 점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사실 이 원만한 합의가 가능한 것은 내 특성을 나도 알고 남편도 인정(이라 쓰고 포기라 읽...) 한 결과인 것 같다. 

가족을 사랑하고 내 삶에 1순위인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충실하되, 별개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전이 필요하다. 다 그렇겠지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만, 나는 그 생각을 '관철'하며 살아온 것 같다.

사실 연애 시절부터 이 모양 아니, 이랬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결혼 전까지 4년 동안 나는 여름휴가를 혼자 보냈다. 주로 3박 4일로 혼자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오곤 했다. 현 남편=구 남친은 여름휴가철을 앞둔 어느 날 역시 올레길 코스를 열심히 짜고 있는 나를 보다가 말했다.

"같이 가자고도 안 하네."   

놀람과 미안함과 깨달음이 동시에 닥친 바람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내가 그를 보다가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남의 말 한마디에 나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던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당시, 일 년에 한 번, 신규 직원이 눈치 안 보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인 여름휴가를 '나의 시간'으로 보내는 것에 나는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내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건넨 한 마디로 인해, 새삼스럽게 멈추어 생각했었다.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구나. 혼자의 시간에 진심이구나.

그런데 혹시, 이런 내 행동과 생각이 이기적인 것일까.'

물론 그가 따지거나 몰아붙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3년여의 여름휴가를 그렇게 보낸 후 4년 차에야 한 번 귀여운 투정을 보인 사람이다.

(그 해 여름, 처음으로 나의 휴가에 그의 손을 잡고 떠났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간간히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고(더욱 필요했고), '얘는 그런 애'라는 걸 아는 남편은 '그러려니~~' 하며 원만히 협조를 해주었다. 살림에, 육아에, 서로에 익숙해진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한 사람이 나가면 남인 듯, 무소식이 희소식인 듯, 전화하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어린아이들을 혼자 돌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둘 다 잘 알고 있기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번갈아 그렇게 했다. 훌훌 나갔던 사람은 제 할 일을 다한 듯 배터리 만땅으로 돌아오면 되었고, 다시 '우리'로 섞여 우리를 위해 소비하며 잘 살아가면 되었다. 



당일치기이긴 하지만 아침기차로 가고 막차로 돌아오는 일정에,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강릉에 있는 시가에 가기로 했다. 엄마의 '볼 일'에 대해 아이들을 잘 다녀오라 흔쾌히 보내주면서도 엄마 없이 강릉 가는 거 싫은데, 하며 꼬물거린다. 아빠 9단 남편은 휴게소 간식으로 아이들을 꼬셔서 최종 수락을 받아냈다.


남편의 '결론적으로' 배려 덕분에, 나는 자정 넘어 집에 도착한 후 다음 날 정오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전날 모임에 대한 후유증일까, 들뜬 마음이 채 가라앉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울적한 것 같기도 했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참에 영화 한 편 때릴까 싶어 예전부터 눈여겨봤던 영화를 재생한다. 아... <피아니스트>라는 제목만 보고 진즉에 찍어놨었는데 내용이 갈수록 참혹하고 슬프다. 하필 오늘 날씨도 흐리죽죽 하니 계속 봤다가는 바닥 근처에서 어른거리는 기분이 굴을 파고 땅 속 깊이 들어갈 것만 같다. 이 영화 안 되겠다. 지금은 아니다.

집안을 청소하고, 무덤처럼 쌓인 빨래를 개서 각자의 옷장에 정리하니 조금 나아진 듯하다.






어둑해지는 늦은 오후, 현관 쪽이 시끌해지더니 삑삑 문이 열리고 세 아이가 우르르 들어온다. 그들의 시끄러운 재잘거림이 폭죽 터지듯 들어온다.

아, 익숙하고 반가운 소리. 

나의 얼굴이, 마음이, 환하고도 활짝 펴지는 걸 내가 안 보이는 나도 느낄 정도다.


어머님이 바리바리 챙겨주신 보따리를 하나하나 풀고 있는데 둘째가 웬 과자봉지를 내민다.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거죠!"


맹구들이 골라온 엄마의 최애 과자
사실을 숨긴 나의 최애 과자




'아쉽네요~ 다음 기회에!'


하지만 확신에 차서 엄마의 탄성을 기대하는 얼굴의 아이에게 나는 굳이 정직하지 않기로 한다.

"어어? 어떻게 알았어? 엄마 이거 진짜 좋아하는데!"

웨하스 재질(!)의 내용물, 진한 하늘색 봉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케이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는 정확히는 '로아커'라는 수입 과자이다. 아이들이 고른 과자는 로아커와 그 모양이 흡사하다. 아이들이 간식을 고를 때 내가 덩달아 끼어 고른 것을 본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들.






엄마 없는 곳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없던 눈썰미도 생기는 법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좋아하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며, 잘도 기억하게 된다. 보고 싶고 찾고 싶으며, 반가운 일이 자주 생긴다.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첫째처럼 사랑하는 만큼 걱정이 커지기도 하고, 둘째처럼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기도 한다.

하루 안 본 사이에 아이들의 깊은 마음을 새삼 발견하며 엄마는 반성하고 다짐한다. 



마음 줄 때 잘하자고.

아직은 아이들에게 전부인 엄마가 걱정시키지 말자고.

남편에게나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아이들 전화 잘 받자고.

(안 나간다는 것은 아님 주의)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문박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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