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함께 글을 써 온 우리 온라인 모임이 지지난주 첫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후가 정확한 지점일 것이다.
그날의 거사를 기점으로, 그전에는 '사이버 러버(Cyber Lover)'라는 관계에서 오는 특유의 설렘과 조심스러움, '좋은데 뭔가 어쩌지 못함'의 기운이 있었다면, 목소리와 얼굴 등 서로의 실체를 보고 만진 후에는 전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며 밀착된 감정을 (나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읽고 단톡방에서 담소와 축하를 나누는 것은 여전한데, 말풍선에서 목소리와 말투가 들리고 브런치 글에서 그 날 만난 작가들의 면면이 두둥실 떠오른다. 오랫동안 애틋하게 담아둔 마음이 마침맞게 숙성되어 제 때에 맛깔나게 내놓아진 김치랄지 된장이랄지 와인이랄지 같은 모양이다.
'사이버 러버' 하니 떠오르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우리 사이에서 '사이버 러브'의 아이콘이므로 빼놓으면 섭섭한 이야기다.
바야흐로 한창 인터넷이 보급되고 빠르게 확산되면서, 특히 전국구의 채팅사이트가 활발하다 못해 뜨겁게 운영되던 때가 있었다. 채팅사이트라는 신문물의 열기가 우리 학교를 강타한 것은 하필, 우리가 '예비 수험생'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고2 겨울방학을 맞이한 무렵이었다. 사실 우리는 약간 뒷북이었다. 이미 유행이 퍼진 지 꽤 된 상태였다. 공부를 잘하거나 말거나, 지방 인문고답게 매일 같이 야자에 매여있는 생활을 하던 순진이 들은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지 모른다'라고, 중요하다는, 반드시 잡고 가야 한다는(뭐를 때마다 잡으라고) 무려 고2 겨울방학 동안, 채팅하는 맛에 사로잡혀 보냈다.
대체로 실속 없는 우리 친구들 중에도 과연 군계일학이 있었다. 한 친구가 채팅으로 맺어진 인연과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차로 다섯 시간 거리에 사는 두 사람이었지만 어차피 사이버 러버였으니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고2 겨울에 시작한 그녀의 '사이버 러브'는 모두의 예상보다 오래갔다. 삐삐와 공중전화로 애달픈 연애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고3 수능을 마치자마자 드디어 만났다. (실속 없는 우리 친구들도 대롱거리며 달려 나가 그들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함께 했다). 그 둘은 장거리를 오가며 더 깊고 진하게 '실제 연애'를 한 끝에 우리 중에 첫 타자로 어른이 되었다.
(그나저나 당시 취준생이었던 내가 왜, 뭐 한다고 그녀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남은 우리 촌년들 중에, '개중에' 내가 군계일학이었던 걸까.)
일 년을 온라인상에서 연결되었던 우리 작가들이 한 단계 나아간 애정을 보이게 된 과정을 보다 보니, 역시 일 년의 사이버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해서(너무 멀리 가서) 잘 살고 있는 친구가 떠오르는 것이다. 스무 살 그녀의 연애사가 지금, 마흔 줄의 내 글쓰기 인생과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어쨌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또 다른 종류의 설렘을 맞이한 우리는(곧잘 설레는 40대 전후의 여성들이다.) 또 일을 벌였다. 온라인 카페에 모두가 돌아가며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일 년 만에... 자기소개라굽쇼?
다소 생뚱맞고 의아한 제안일 수 있었음에도 의외로 작가들의 반응이 열화와 같다. 솔선수범하는 한 작가님이 틀을 만들어 올렸다. 먼저 자기소개 글을 올린 사람이 다음 차례 세 명을 지명하고 그 세 명이 마찬가지로 자기소개글을 쓴 후 각자 세 명씩 지명을 하고... 그러다 보니 넓고 빠른 속도로 화르르 불타오르는 모습이다. 일 년 전 처음 만들어진 후 오랜 기간 벌판처럼 황량했던 카페가 모처럼 다시 활기를 띤다. 그녀들의 열정에 주말이고 뭐고 없다.
발표하기 싫어 선생님 눈 안 맞추는 학생처럼 단톡방에 등장을 참고 있던 참이었다.
일명 '편의점 메이트' 김녕 작가님이 나를 호출했다. 편의점 메이트라 한 것은, 거사가 있던 그날, 모임 시간에 앞서 들른 편의점에서 딱 마주친 사연이 있어서이고, 그날 통틀어 처음 만난 작가님이기도 한 연유다. 편의 점에서 본 그녀의 뒷모습에서 빠알간 후드티가 아이보리색 패딩과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확 사로잡았고, 드레스코드인 '빨강'에 꽂힌 나는반가움이 마려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은체를 했었다.
"저... 작가님이시죠!"
편의점 메이트의 지목을 감사히 받들며, 이튿날 아이들의 수영 강습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노트북을 폈다.
폼은 간단했는데 답변을 채우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자기소개는 늘 민망하고 진땀 나는 일이다. 마흔 나이까지도 여전히 자신을 파악하는 작업이 부족했으며, 그러니 계속해서 해나가야 할 숙제임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렇게 삐질거리며 작성한 자기소개 글이니 카페에서 그리 끝낼 수 없다. 브런치로 옮겨와 기어이 발행까지 가야겠다,는 속셈의 밑밥을 이리 깔아본다.
이거 좀 뻔뻔한가, 반성하려다, 애정하는 이슬아 작가가 수많은 그녀의 에세이 속 자신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저렇게 버무린 후 헤엄출판사를 낮잠출판사로, 또 뭐를 뭐로 정도로만 간단히 변모시키고 재구성해 소설로 낸 것만큼 뻔뻔한 걸까 생각한다. (물론 그 소설을 나는 내내 감탄하며 깔깔대며 읽었다, 며 일견 약한 모습을 피력해 본다.) 일개 작가지망생이 명작가에 감히 비견하다니. 뻔뻔의 극을 달리는구나!
<안녕하시렵니까. 문박사입니다>
1. 자신을 소개하는 사진 한 장 올려주세요.(얼굴 들어가도 좋고, 안 들어가도 좋아요)
필명 : 문박사
MBTI : INFP
2.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이런 질문에는 늘 멈칫하게 되고 피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음. 일단 저는 '내 나이 실화?'라며 내 나이에 대하여 불신과 의심 가득한 사람입니다. 즉슨, 좋게 말해 여즉 소녀 같은 감성을 품고 있고요, 세상 사는 '이' 같은 것에 둔한 철부지 같다는 말입니다. 안 좋게(=정확하게) 말해 현실 감각이 둔한 것 같기도 하고요.
늘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의미의 한도 내에서 저질러봅니다. 열정의 유지 기간은 대체로 길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사이 쉴 새 없이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이 끼어들어 있어 심심할 새는 없이 삽니다.
INPF 답게 다수 앞에 나서는 것을 병적으로 기피하고요, 소수의 인연을 오래 맺는 편입니다.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고 잘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혼자 여행도 즐깁니다.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건반 소리에 손톱 부딪치는 소리가 거슬리는 이유로 평생 손톱을 못 기르고요,
국립국어연구원 관계자는 아니지만 맞춤법에 예민합니다.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는 행동을 못 봅니다.
특정한 몇 가지에는 예민한 주제에, 사람은 잘 믿고 경제관념은 약한 바람에 호구되기 일쑤입니다.
3. 요즘 제가 하고 있는 일은요. (직업, 취미, 독서, 꽂혀 있는 일 등)
얼결에 시작한 글쓰기가 일 년 되었고요.
그보다 먼저 시작한 피아노를 사랑하며 재미나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평생 운동은 놓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저강도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여 되었습니다. (5km 마라톤 도전이 가까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