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들 Mar 15. 2024

 5km 첫 마라톤. 상념만큼은 풀코스

마라톤 입문기(2)

https://brunch.co.kr/@msh7682/67

(1편에서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린 덕이다.

아까 행사장으로 오는 길에 어느 일가족 옆을 지났다. 복장과 분위기로 미루어 아빠가 딸아이와 참가하러 온 듯하다. 동행한 엄마가 투덜댔다.

"아니, 대체 왜 뛰는 거야? 그것도 이 아침에! 추운데!"

그랬다.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모였다. 이 아침에, 영하의 날씨에, 그저 뛰려는 사람들이.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연인 사이, 동호회에서 단체로 참가한 사람들, 나처럼 혼자 뛰는 사람도 물론 많았다. 연령도 다양했다. 우리 엄마, 이모 나이로 보이는 왠지 신난 여성들도 많이 보였고, 마라톤 고수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도 있었다. 젊은이들이야 말해 무엇하리. 그냥 그 자체로 건강함과 에너지를 내뿜는 그들. 아이고 젊음이 좋다 좋아~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족 참가자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참가한 엄마나 아빠에 절로 눈길이 갔다. 나 역시 세 아이의 엄마고, 아이들과 함할까 (1분) 망설였었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 신청하긴 했지만, 가족 참가자들을 보며 다음에는 꼭 다 같이 오리라 마음먹는다. 무엇보다 신선했던 경험, 나 자신이 아이와 세트인 엄마의 자리에서 벗어나 제3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것이었다.

마라톤이라는 것이, 비록 5km 라 하더라도, 분명 내 한 몸도 숨차고 힘들다. 부모들은 그 와중에 아이에게 보폭을 맞추고 상태를 살피며 중간중간 '잘하고 있다', '이제 조금 남았다', 내내 격려하고 있었다. 달리면서 마주친 아이 동반 부모들이 모두 그랬다. 이것은 부모의 흔한 모습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그중 하나일 텐데도 그날은 왠지 생경했다. 나 아닌 존재를, 나도 힘든 상황에서, 힘든 기색 없이 챙기고 보살피는 행동. 그런데 막상 부모의 자리에서는 당연히, 숨 쉬듯 하는 그 마음은 대체 어떤 걸까. 그 크기는 얼만큼이며, 어디서 오는 걸까.

언젠가 글에서 고백한 바 있다. 나밖에 모르던 인간이 조금이라도 사람 구실 하고 사는 것 같은 지금의 '나'가 된 것은, 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였다고.

떨어져 바라보니 대단해 보이는 역할을, 돌이켜보니 나 또한 하고 있다. 그러니 나 잘하고 있다, 고 자부심 좀 가져도 되겠다.

마라톤 대회에 와서 엄마 자존감을 올릴 줄이야.



그 와중에 어느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가까워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뛰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저마다 한쪽으로 비켜섰다. 빈 공간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목소리는 아기 엄마였다. 아기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 유모차를 밀고 엄마는 달렸다. 배번호를 단 그녀는 계속 길을 뚫고 나아갔다. 연신 그렇게 사과를 하며.

그런 마음이었던 수많은 간들이 떠올랐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죄송할 일이 많으니까. 그렇대도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유모차를 밀고 달리는 그녀처럼, 육아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찾았던 씩씩한 순간들도 많았으니까.




그러는 중에도 여러 목소리들이 쉴 새 없이 섞인다.

내 옆으로 두 청년이 나란히 달린다. 이미 경험이 많은 듯한 한 청년이 동행한 다른 청년에게 조언하는 말이 들린다. 간간이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건조하고 따뜻하다. 이번에는 세 명의 젊은 여성의 떠들썩한 소리. 한 친구가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왔다 보다. 언제 어떤 경로로 상경했는지 자세히도 조잘조잘, '니도 내처럼 서울 올라와라.' 하며 일제히 까르르. 내 바로 뒤에서 뛰는 게 분명한 그녀들의 수다는 얼마나 또랑또랑하고 유쾌한지. 내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그것 같기도 한 정겹고 귀여운 대화에 절로 귀가 쫑긋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떤 사람의 손에 든 휴대폰에서는 빠른 비트의 신나는 음악이 재생된다. 주위를 환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곧 멀어졌다.  





평소 달리기를 할 때 준비물은 러닝화만큼이나 이어폰이 필수다. 이 시간을 위해 아껴둔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귀에 꽂고 라디오처럼 들으며 달린다.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게, 그래서 조금 더 잘 달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동반자인 셈이다. 맨 귀로 뛴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귀에 뭘 꽂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도 동반자의 빈자리를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같이 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비록 처음에 시끌시끌하다 오르막길을 만나고부터 과묵해지기는 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신 바뀌는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보는 것이 재미났고, 간간이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심심함을 덜어주었으며,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는 위로가 되었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 이미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풀코스 참가자들을 마주하는 것도 감동이었다. (그들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 오왓 선수들인가. 입이 쩍 벌어졌다.) 풀코스 고수들과 5km 런린이들은 각자 속도가 다른 서로를 향해 파이팅! 을 외쳤다. 







2.5km 지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놓은 물을 마시고 반환점을 돌았다.

체력은 더 떨어졌을 텐데도 돌아오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준다. 같은 거리임에도 목적지와 거리의 감을 안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한편 같은 코스를 똑 반 접은 길인데 반대 방향의 풍광은 또 다르다. 태양의 높이도, 햇빛의 강도도, 온기도 그 사이에 미세하게 변했다. 새로이 달리는 기분이다.

아까 오르막길을 갈 때는 내리막으로 만났다. 이때 뛰기를 잠시 멈추고 걸어 내려왔다. 몇몇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다. 아이코. 오늘 갑자기 무리해 다리가 풀린 게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시끌시끌해진다.

결승점이 저기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얼른 조끼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나를 자축하려고.

'예이~!'

이때 찍은 동영상을 한참 후에 보는데, 어, 이상하다......

흔들리지 않게 양손으로 잡고 이마 높이로 쳐들고 찍은 휴대폰  영상에는, 내 것임이 틀림없는 숨소리가 헉, 헉, 대며 지나치게 크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내내 가뿟하게, 산뜻하게만 달린 것 같은데? (갸웃)

역시 매번 겪으면서도 또 까먹었다. 시간은 기억을 미화시킨다는 것을 말이다.





 


어수선한 속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안겨주는 완주 메달과 간식 봉투를 정신없이 받아 들었다. 짐을 찾고 적당한 빈자리를 찾아 앉아 숨을 고른다.

비닐봉지에 든 간식은 바나나와 슈크림빵과 매실 주스. 갈증이 나서 일단 음료수 캔을 마시긴 했는데, 따스해 보이는 햇살과 별개로 칼바람이 매섭다. 땀이 빠르게 식는 데다 찬 음료수가 들어가니 한기가 더해진.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잠바까지 꽁꽁 싸 입고는 다시 빵을 입에 물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종목마다 참가자들이 속속 거의 들어오고 있다. 얼굴이 상기된 사람들이 저마다 브이를 그리거나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다. 그러고 보니 종목마다 다른 색깔의 줄로 묶인 메달을 목에 건 채였다. 아. 저렇게 찍는 거구나. 또 하나 배운다.

하지만 이미 옷을 갈아입고 털외투까지 입은 이 상태로 메달을 걸고 사진을 찍기는 또 싫다. 

현장감이 없잖아.

오. 추운 데다 빠른 속도로 귀찮아지고 있는 터였는데, 핑계가 꽤 맘에 든다고 생각한다.





작년 10월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빠른 걷기는 이십 년 넘게 해왔으면서도 달리기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확한 계기도 모른다. 무서운 알고리즘이 날 이끌었는지도. 우연히 '저강도 달리기'에 대해 알게 된 날, 즉시 러닝머신에 올랐다. 빠른 걷기를 하던 속도 6~7km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동작만 뛰는 것으로 바꾸었다. 느린 속도로 뛰는 것이다. 그래서 '저강도 달리기'다. 그렇게 매일 30분 정도를 달렸고, 여유가 있으면 40분 넘게, 시간이 없으면 20분이라도 달렸다. 새해에 운동 모임에서 매일 운동을 인증하게 되었다. 인증과 감시는 분명 게으름 덜 피우고 성실하게 운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걷지는 말자. 늦더라고 뛰자.'라는 나와의 약속을 얼추 지켰다.(내리막에서 잠시 걸었기에 '얼추'라고, 얼추 표현해 본다.) 게다가 겨우 해낸 것이 아니라, 달리는 동안 컨디션이 꽤 멀쩡하고 상쾌했었는데 이 점이 진정 뿌듯하다. 

. 또 미화된 기억일 수 있겠다... 만, 이 운동을 아무런 망설임이나 계획 따위 없이 시작하고(드문 일) 이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와 맞기 때문일 것이다.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는 일은 그게 어떤 운동이고를 막론하고 귀찮다. 다만 하는 동안 '힐링된다'는 기분을 모든 운동이 다 주지 않는다. 달리기는 비용 부담이 없고, 장소도 '선호'는 있겠으나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혼자 하는 운동이라는 게 가장 나의 성향과 맞는 요소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운동 시간조차 자기 계발로 활용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등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로 채울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을 수도 있다. 


혼자 실컷 즐기다가, 한 번쯤 이렇게 사람들 속에 섞여 흥겹게 달리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졌다.

신의 계시와 같이 내게 온 이 운동을 아끼며 계속계속 하고 싶어져서, 다시 집으로 오는 먼 길에 무릎고뱅이에 특히 신경을 썼다.





작가의 이전글 첫 마라톤 대회.  기분만큼은 풀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