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자이니 오늘쯤 인사발령이 날 거라 예상은 했었다. 영달읍으로 난 모양이다. 바로 알려주고 환영해 주는 송희가 고맙다.
"그르나. 고마워."
육아휴직 2년 만에 복직한다. 사실 한 달 전에 행정팀의 닦달에 복직원을 제출했었지만 여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푹 빠져있는 이 생활이 원래 내 삶인 것만 같았다. 여유롭고 감사한 이 날들이 어떤 사유로도 방해받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아니 방해받을 까봐 외면했던 걸까. 나흘여 일을 앞둔 어제 인사 발령이 나자 비로소 실감이 난다.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학교 갈 채비를 하면서도 연신 장난이 마렵다. 늘 있는 일이며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인데 내 마음은 벌써 엄격해진다. 다음 주부터는 더 일찍 준비해야 하는데, 더 서둘러 나가야 하는데. 물통병은 각자 챙겨보자 등등. 2년간 잠잠하던 조바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마음이나 기분이야 상황에 따라 당연히 변화무쌍한 존재인 것을. 하지만 오늘 드는 조바심은 또아리 튼 뱀이 음흉하게 고개를 드는 모양처럼 스산하여 소름이 끼쳤다.
설거지를 마치고 물을 올리고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거실로 왔다. 소파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앉았다. 특별할 것 없는 거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시간의 짧은 동안에도 어김없이 어질어진 거실 바닥은 왜 애틋하니. 창 밖의 하늘과 그 아래 먼 산과 거실창 앞에 나날이 울창해지는 나무들도, 늘 거기 있는 풍경인데 예사롭지 않다. 소소한 여유도 이제 끝이구나, 조금 울컥한 심정으로 감상에 잠겨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입사 동기인 은수언니의 이름이 뜬다.
"나들아!!"
작년 팀장으로 승진한 언니는 이번에 보직을 받으리라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한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네가 돌아와서 좋다'라고 말한다. 이 언니의 솔직한 수다에 구깃했던 마음이 조금 펴진다. 속을 터놓고 말하던 직장 친구가 여전히 거기에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의지가 된다.
전화를 끊고 보니 메시지가 와있다.
"주사님~~ 복직하시는군요ㅠㅠ!! 기다렸사와용!! 영달읍으로 가시더라고요. 꼭 뵈러 갈게요(하트)."
예전 같은 팀에서 일했던 의진 씨다. 후배의 발랄한 환영은 또 다른 느낌으로 든든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의진 씨에게 고마운 일이 생겨 보답하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테니 지금은 좋은 기분을 나 혼자 만끽하는 셈이다. 받는 사람의 기쁨보다 더 큰 주는 이의 즐거움을 즐기러'나' 가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자고 자꾸 주문을 건다. 애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 이라는 생각은 속으로만 한다. 말한들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고 공감받고 싶은 욕심도 딱히 없는 것 같다(기대를 포기한 걸 수도). 게다가 말로 내뱉어봐야 지금 내게 하등 도움 될 일 없다. 가기 싫다고 네 팔다리로 버틴다고 해서 복직을 무를 도리는 없으니.
7월 1일 자로 복직을 '명 받은' 영달읍에서도 전화가 왔다. 총무팀 팀장님이 상냥한 말투로 근황을 묻는다.
"애들은 잘 크죠? 몇 학년이지? 승진도 생각해야지~"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겉도는 근황 토크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무렵 내가 물었다.
"저는 어떻게 되나요 팀장님."
무관한 사람에게 내 진로나 인생을 묻는 것은 아니고, 어느 팀으로 가게 되는지 묻는 거였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긴, 어제 여섯 시 퇴근 시간에 인사 발령이 발표되었다(공지사항에 올리고 인사담당자는 도망갔다,에 깎을 때 된 손톱 흰 부분을 건다). 그 바람에 각 부서에서는 오늘에야 저마다 소내 인사에 분주할 것이다. 총무팀장님은, 결원이라, 즉 나간 사람 대비 들어온 사람이 적어 자리보다 사람이 부족한 탓에 소내 인사가 수월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팀'에 결원이 있는데 이번에 팀장도 바뀌고 갓 임용된 신규직원이 배치되었으니, '한 명'은 경험이 있는 직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고생이 예견된 자리겠다. 15년차라는 경력은 눈치와 비례하다. 생략된 뒷말이 들린다.
'그게 너야. 너야. 너야......'
내 인생을 돌아보건대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육감이 뛰어난 편이던가. 그건 아닐 텐데.)
반쯤 남은 채 식어버린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내일 독서모임에서 다룰 책을 펴 들었다. 애정을 듬뿍 담았던 독서 모임도 사실상 내일이 마지막 참석일 테다. 열심히 읽어야지, 하며 들여다보지만 머리가 복잡하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니 요즘 소홀했던 글을 갑자기 쓰고 싶어졌다.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충동을 힌트삼아 마음을 다잡아본다.
변하기는커녕 더 부조리해지는 일터가 오늘따라 개떡 같다 느낄 때, 쓰자고. 실수해서 내가 싫어질 때, 마음 같지 않아 자신감이 떨어질 때, 망신당하고 납득 못할 처우를 당했을 때, 인간이 싫어질 때, 다 지겨워질 때, 쓰자. 쓰면서 울면서 낄낄대면서 풀자.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뭐로든 남을 것이다. 사건에 있어 증거의 존재는 종국에는 위력을 발휘하니까.
2년의 휴직 동안 자취를 감췄던 불안이라는 병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잘 다스렸던 승모근이 다시금 솟으려는 낌새가 느껴진다. 다행히 지금의 내겐 2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 쓰게 된 것. 어쩔 줄 모르는 뜨겁고 차가운 속을 문자로 문장으로 써 내려가고 나면, 힘듦 안에 마냥 매몰되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으리라.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되려 떨어질 수 있으리라. 그런 기대를 안고 돌아가기로 다짐한다(이 마저도 없으면 어쩌랴). 더구나이 무기는 나만 알지 겉으로 안 보여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