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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Jul 28. 2024

누구보다 문과형 엄마가 수학 공부를 논하다

같은 또래 자녀를 둔 친구를 만났다.

피차 학부모 아니랄까 봐 대화의 초첨은 아이들의 학습으로 흘러갔다. 스무스하기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하다. 오늘은 그녀사연으로 시작되었다. 아이 모두 수학 학원을 오래 다녔는데 달부터 초6인 첫째가 중학수학을 선행하는 온라인 수업을 별도로 시작했다고 한다. 8시부터 10시까지 하수업인데 시간의 수업끝나고도 12시까지 내리 스스로 공부를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내 기준 엄친아).

한편 초4 둘째는 '수학도 엄마랑 하면 안돼요?' 라며 수학 학원 다니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이 집은 엄마가 운영하는 독서 학원에서 국어를 하고, 영어는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집에서 한다. 초등 수학 정도야 이과 출신의 이 엄마라면 한다면 할 거다. 그러나 학원생 아니고 자식을 '원만히' 가르칠 자신은 없다며 하소연했다. 들입다 내가 가르쳐야겠어, 라며 달려들지 않은 그녀의 처사가 역시 현명하다.


"그런데 아이가 수학을 싫어하는 건 아닌가 봐요. 엄마랑 하겠다는 걸 보면. 학원이 다니기 싫은 건가 봐요." 내가 말했다.

"음. 그런 것 같아요. 듣자 하니 그 학원 선생님이...(중략). 그런데 또 알아보면 옆에 ○○학원은 이렇다 하고 □□학원은 저렇다 하고..."

아이 걱정에 그녀 특유의 웃는 상이 잠시간 울상이 되었다.

나는 우리 집 첫째를 떠올렸다.

"학원 말고 혼자 해보게 하면 어때요? 학원을 다녀봤고, 근데 학원은 다니기 싫고, 수학이 싫은 게 아니라면 혼자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방학이니까 한 번 해보는 거죠. 좋은 기회잖아요."


조언 같은 걸 술술 하고 있는 게 진정 내가 맞냐. 웬열. 쿨한 척 좀 어색하게 잘하는데!

다름 아니라 몸소 겪은 우리 집 이야기여서이다.






우리 집 첫째는 내 딸 아니랄까 봐 지극히 문과형이다. 영어와 국어와 달리 수학은 그리 어려워하고 거리껴한다. 게다가 핑계를 대자면 아이의 입학을 기점으로 나는 나대로 직장에서 바쁜 부서로만 전전하게 된 탓에 아이 교과 공부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휴직 후 본격적으로 수학을 집공부로 시작했을 때는 첫째가 벌써 5학년이었다. 어쨌든 시작했는데 얼마지 않아 분수 과목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구멍이라 하기엔 구멍에게 미안할 정도의 거대 싱크홀이었다. 나도 너도 당황했다. 없는 가슴 부여잡고 거슬러 올라가 보니 분수가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3학년 2학기였다. 순간 아득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3년씩이나. 수업 시간이 얼마나 길고 막막했을까. 내성적인 성격에 손들고 질문도 못하고, 모른다고 내색도 못했을 나를 닮은 아이가 그려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는 현주소를 둘이 함께 직시했다. 멀더라도 돌아가기로 했다.

학교 진도는 그것대로, 수업에서 배운 것을 그날그날 엄마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복습했고, 구멍 나 따라가지 못하는 분수는 3학년 개념서로 다시(다시가 맞을까. 처음 접하듯) 첫 단추부터 차근차근 꿰어나갔다. 어느새 6학년이 된 지금도 아이는 수학 공부를 여전히 이 방법으로 한다. 얼마 전에는 5학년 때 배운 게 부족한 것 같다기에 같이 서점을 찾았다. 5학년 개념서를 고르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부족한 것, 필요한 것을 감각하고 보충할 줄 알면 다 된 것 아닌가. 그렇다. 중학 선행에 바쁜 여름방학을 보내는 전국의 많은 초6들 사이에서 5학년 개념서를 뒤적이는 아이를 보며 안도하는 나다.

요상한 엄마인 나의 조언엄친아의 엄마인 친구에게 통할 줄이야.



다니던 수학 학원을 거부한다는 둘째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들며 혼자 해볼 기회를 주라는 조언을 했을 때 그녀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맞아, 우리 둘째가 그랬어요. '학원에서는 지금 2학기 것 배우는데 엄마, 나는 1학기 것도 다 모르는데.'라고."

서는 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던 아이의 심경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걸 인지하는 똘똘한 아이이며 엄마와의 관계도 좋은 아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자기가 부족하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네요! 왜 다니기 싫은지, 뭐가 자기랑 안 맞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고요. 이런 아이라면 더욱 혼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본인도 원한다면요."

"그러네요. 다른 학원 알아볼 생각만 했지, 혼자 할 기회를 줄 생각은 안 해봤는데!"



한편 그녀는 아까 내 이야기에서, 특히 분수에서 헤매다 건져 올려진 우리 집 첫째 에피소드에 주목했다. 이번에는 처음에 언급한 -8시에 시작해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도 밤 12시까지 이어 공부한다는- 그 집 첫째와의 연결고리였다. 정말이지 이런저런 주제를 넘나드는 엄마들의 스무스함에 다시 경탄한다.

내도록 수학 학원을 다닌 첫째가 이번에 처음으로 스스로 끙끙거리는 경험을 하면서 엄마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엄마, 나 사실은 분수가 어려워요."

학원에서 선생님이 늘 같이 풀어주고, 그러면 아는 듯 넘어가곤 했지만 아이 본인 스스로는 내가 정확히 아는 걸까 하는 불안과 찜찜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 전 과목 대체로 성실하게 잘 따라오는 아이였기에, 분수가 어려워 애먹었으면서도 엄마에게 말을 못 했다는 아이의 이번 고백이 엄마에게는 놀라우면서도 자극이 된 듯하다. 선행 아닌 후행하는 우리 집과 그 후행을 이끈 망할 분수에 그래서 공감한 것일 터다.





집 공부에도 맹점은 있다. 학원에서처럼 스스로 선행을 달리는 것도 쉽지 않고, 양으로 승부하기도 어려우며 기타 등등. 그러나 속도는 다소 늦어도 스스로 헤쳐나가는 방식이 내 아이에게는 주효했다. 애초에 현행이 충분하지 않기에 선행은 언감생심 욕심내지 않았다. 복습을 통해 현행하고, 내성적이지만 꼼꼼한 아이의 성향상 부족하거나 놓친 부분을 채우고 넘어가는 후행이 잘 맞았다. 믿을 구석이 없어서인지, 영 모르겠는 건 학교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한테 질문도 곧잘 하게 되었다는, 아이 나름의 큰 변화도 있었다.

우리 집의 경우 그러하지만 '애바애'(아이 by 아이, 즉 아이마다 다르다)이니 각자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을 혹은 부모가 내 아이를 잘 아는 데는 집 공부가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학원에 다녀도 그럴 수 있겠으나 솔직히 나라면 학원에 보내면 내 관심과 신경까지 믿고 '맡겨버릴' 것만 같다.



엄친아의 엄마인 그녀는 지금은 독서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공도 공학도요 계획 중인 꿈도 그 분야인, 누구보다 이과형인 인물이다. 원래도 서로 영감과 응원을 주고받는 사이지만, 이런 이에게 누구보다 문과형인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자녀 '수학' 교육에 대해 영향을 주다니. 오늘 인플루언서 아닌가?


이 기분 영 어색하고 좋다.

(다소 일기스러운 끝말이지만 오늘 이렇게 끝내고 싶다. 그야말로 쑥스럽고 유치하고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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