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당일치기 여름휴가(1)
여름휴가철의 끝자락이다. 올해 유독 더 길고 지루했던 장마와의 씨름이 얼추 마무리되자 이제는 타들어갈 듯 강렬한 햇빛과 고온과의 전쟁으로 넘어갔다. 더위가 이토록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한편 새로운 계절이 슬슬 밀고 올 때가 머지않았다는 뜻이겠지만, 대관절 언제?라는 의문이 절로 나오는 날씨다.
행정과에서는 이맘때쯤 팀별 휴가계획서를 내라며 종이 서식을 돌린다. 공짜 휴가라도 주는 양 싶지만 실상 개인 연가 알아서 쓰는 거다. 근데 뭔 계획씩이나, 서식을 돌리기씩이나 하는 행위에는 다 의도가 있다. 일단은 팀원들끼리 되도록 휴가가 겹치지 않게 조정하라는 거지. 이는 휴가 계획을 짜면서 자체적으로 부재에 대비하고 업무에 공백이 없게 하라는 암묵적인 지시인 거다. 더해서 을지훈련을 피해서 짜라,라는 당연한 공지가 동반되는 덕에 직원들은 새삼 달력을 들여다보며 '아 을지훈련이 언제지?' 하며 주지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연 1회 있는 을지훈련은 올해는 8월 19~22일. 통상 이 무렵 잡히니 떡하니 한창 휴가철에 무려 나흘을 꼼짝 못 하게 된다. 시기가 자못 얄궂은 터라, 을지훈련 기간을 피해서 가라 하면 직원들은 왠지 그전에 다녀와야 할 것처럼 없던 조바심이 들고 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콧방귀나 뀔 뿐이었다. 휴가철이라고 성수기라고 어딜 가도 비싸고 더워 고생인데 뭔 놈의 여름휴가. 사무실에서 날씨 덜 타는 일을 하는 것에 깊이 감사하며 한여름에는 최대한 잠복한다. 그러다 선선할 때면 눌러놨던 스프링 튀듯 나다니는 것이다. 휴가란 그런 거라 생각했다.
올여름 더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역시나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왠지 조금 달랐다. 더운 여름에 딱 엎드려 있는 건 아이들이 더 어릴 때까지 유효했다. 매주 가까운 동네에 물놀이를 다녀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멀리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더 어려웠고, 그맘 때는 그저 물놀이가 진리다. 이제 우리 집 아이들은 초6, 초3. 물놀이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전부는 아니게 되었다. 지적욕구와 취향이 다채로워졌다는 것은 2년의 휴직 동안 익히 확인한 바이기도 하다. (과연 많은 변화가 있었던 2년이다.)
내 차례에 온 종이 서식을 내려다보았다. 달력을 보고 1분이나 고민했을까, 슥슥 날짜를 써넣었다. 충동적이라 한들 어떠리오. 지금까진 그랬지만 이번에는 이래 보련다. 타들어갈 듯 뜨거우면 어때, 땀으로 샤워한들, 좀 쉐카매진들!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 아침. 그리하여 기차역에 있었다. 아이 셋과 나, 이렇게 넷이었다.
지난겨울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을 살고 온 이후로 우리는 부쩍 용감해졌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일행인 넷 뿐 아니라 남편 포함, 우리 다섯이다. 나는 원래부터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세 아이를 데리고라면 얘기가 달랐다. 우리 다섯은 세트였다. 짐이야 백팩을 멘다 쳐도 양손에 아이들의 손 하나씩은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혼자 세 아이를 건사하기에는 버겁고 불안했다. 남편은 책임감 강한 사람이니 같은 생각이었다. 몰랐는데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말레이시아에 한 달 살이를 위해 다 같이 떠난 후, 휴가를 길게 낼 수 없는 남편이 나흘 후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야 하자 아이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하필 몸살까지 이고 지고 간 탓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설득하고 이끌고 여기까지 온 추진력은 어디 갔는지 모르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 우리 이제 어떡하니.
남편을 보내고 아이들 몰래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난 다음 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급격히 멀쩡해진 것이다. 어디서 호랑이 기운이 솟았을까. 이게 엄마구나. 나 엄마지. 위대한 엄마 체험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고, 자신감은 몸살도 이겨냈다. 외국에 남은 우리 넷은 언제 걱정했냐는 듯 매일매일 버라이어티하게 나머지 한 달을 채워 나갔다. 자기 전이면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그날그날의 사진을 가득 보내고 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자의 하루를 공유하는 위로와 재충전의 시간은, 잘 지내는 것과 별개로 꼭 필요했었다. 특히 위대한 엄마여야 했던 나에게는.
어쨌든 결핍(든든한 남편, 아빠의 부재는 우리에게 그 정도였다)은 어떻게든 채워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 채우기도 하지만, 우리끼리 서로를 메워주기도 했다. 나와 우리로도 해결되지 않는 때는 현지인이나 같은 여행객이 돕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자신감과 여유를 얻었다. 기회를 놓지 않고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완전체가 아니며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럭저럭인 데다 성글지라도, 또 그런대로 괜찮음을 알았다.
복직하고 아직 두 달 차. 남편과 애써 맞춰서 휴가를 내려하지 않는다. 당직휴무든 연가든 쉴 기회가 생겨도, 아이들을 위해 오후마다 집으로 와주시는 친정엄마를 쉬게 해 드리기 위해 오히려 번갈아 쓰려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이제는 5인 세트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붙어서겠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휴가를 적어 냈고, 기차를 예매했다. 얼마전부터 KTX에 다자녀 할인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도 제법 쏠쏠하여서 말이다.
마침(!) 여름 방학을 이틀 남긴 날이었다. 방학 전에 복직한 덕에 이번 한 달은 잔잔하게 지냈지만 오늘 여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군(= 막판에 티를 좀 낼 수 있겠군). 후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9시 기차에 올랐다. 한 시간 반 후 서울역에 당도했다.
서울 당일치기 여행을 즐긴다. 무엇보다 기차로 오가는 교통이 좋아서가 큰 요인일 것이다. 한 시간~한 시간 반이면 오가니 서울 내 이동만큼 빠르고 편리하다. 요즘 숙소 가격이 만만찮은 데다 그나마도 5인이라 적당한 숙소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룻밤이든 열흘밤이든 일단 숙박을 하면 짐이 많아지기도 하니, 아침기차로 와서 밤 열 시 막차를 타는 당일치기 여행이 꽤나 알차고 가뿟하다. 가성비 갑이다.
목적지는 한 곳만 정한다. 큰 덩어리만 정하고 필요하면 예약한다. 나머지는 그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 주변을 같이 돌아보던지, 체험을 하던지 등등은 발걸음 가는 대로 움직인다. 저녁 일정까지 끝나면 가까운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한다. 알라딘 서점에는 편하게 책을 읽는 공간이 있어, 책 속에서 지친 육신을 쉬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한 권씩 고르게 해 주는데, 아무래도 중고서점이니 부담이 적다. (생색내기 그저 그만이다.) 여행 올 때마다 한 권씩 안고 가니 1 여행 1 책의 추억이 쌓이기도 한다. 그렇게 알라딘서 놀다 늦은 기차시간에 맞춰 나온다. 청량리역은 연결된 백화점과 서점이 이른 시간에 문을 닫기 때문에 막차 시간까지 잔잔하고 알차게 보내기에 아주 쏠쏠한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의 서울 당일치기 여행 코스다.
오늘 정한 목적지는 전쟁기념관. 광복절을 앞둔 만큼 광복절 특집이다. 나 혼자 정했다. 웬일로 용의주도하게시리 전날 밑밥까지 깔았다. 잠자리 독서로 특별히 <대한독립만세>(이현 지음, 휴먼어린이)를 골라 읽어준 것이다. 읽기 전에 취지를 말해주면서도 내심은 과연 좋아할까 싶었다. 결과적으로 '내일 또 읽어주세요!'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끌어냈다. 훗. 이번 여행이 순조로우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좋은 예감도 틀린 적이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