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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Nov 08. 2024

워킹맘의 그날 저녁

전화받아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아아. 왜 전화를 안 받지. 

집에 혼자 있다고 했는데. 

괜찮겠지. 

혹시...?

설마.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아이 중 유일하게 휴대폰을 가진 첫째에게다.
받지 않는다. 시동을 걸면서 한 번, 그리고 중간쯤 갔을 때 다시 한번 걸어 보았지만 연신 신호만 갈 뿐 종국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무음으로 되어있나? 그래서 전화 오는 걸 모르는 걸 거야.' 
긍정회로를 돌린다. 그러다가도 '아니면 혹시...' 별의별 생각이 반대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불행하고 불운한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강하고 빠른 속도로 뇌와 가슴을 점령한다. 이런 쪽으로 라면 세상에나, 또 어찌나 창의적인지! 무한으로 증식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고 있잖아. 지금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운전에 집중하자. 

운전대를 꽈악 잡았다.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비슷하게 큰 두 업무의 시기가 겹쳤다. 하나는 10월 말일에 마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11월 첫날에 시작하는 사업이다. 완전히 다른 두 업무지만 마무리와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요즘 긴장 상태다. 긴장은 스트레스로, 그리고 승모근 통증으로 발현되었다. 딱히 해결책은 없다. 집에 가서 찜질팩이라도 해야겠어, 생각하며 하릴없이 손아귀로 뒷목을 눌러댈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민원 발생에다 예기치 못한 공문, 타 부서로부터 협조 요청까지. 반갑지 않게 끼어드는 일들은 저마다 내가 먼저라고 아우성이다. 정작 중요한 -이것 때문에 출근까지 서둘렀던- 일은 그러느라 늦은 오후에야 제대로 붙잡고 앉게 되었다. 대략 언제쯤이면 마칠 수 있을까, 최대한 빠른 시간을 가늠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창 작업 중인데 어느새 6시다. 직원들이 사무소 건물 뒤로 모일 채비를 한다. 

하필 오늘 단체 회식이 있는 것이다.(하여간 운도 지지리.) 회식이라 했지만 정확히는, 주최 측에서 공지에 '삼겹살 파티'라 명명했다. 정식 회식은 아니고 사무실 건물 뒤 한구석에 다 같이 모여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거다. 보다 한가한 면사무소에서는 더러 있는 일이다. 시골 면사무소 근무의 낭만이랄까. 나도 신규태를 벗지 않았을 무렵 면사무소에 잠시 근무할 때 그런 낭만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근무시간 중에 그리 했었는데, 그렇다고 숨어서 몰래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면사무소에 방문한 민원인도 불러서 몇 점, 이차저차 해서 들른 이장님도 몇 점, 지나가는 주민들까지 몇 점씩 함께하는 정겨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영달읍은 여타 면과는 다르다. 직원들이 다들 바쁘고 전체적으로 팍팍하다. 시절 또한 변했다. 근무시간에 고기 연기와 냄새를 풍겼다가는 또 다른 민원으로 골치 아플 게 틀림없다. 이번에는 웬일로 뜻이 맞는 몇몇 팀장들이 주최하여 성사되었다. 실로 오랜만의 낭만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겐 남일이다.

"아, 먼저 가세요."






하다 보니 예상보다 늦어진다. 삼겹살은 고사하고 야근을 해야 할 참이다. 시계를 보니 6시 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친정엄마에게 조금 늦을 것을 알리려고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얘기하신다. 

"어~ 엄마 오늘 약속이 있어서 애들 저녁 차려놓고 내려왔어~"

아. 예상치 못한 상황. 나는 용건을 삼켰다. 

"아. 애들끼리 있겠네? 알았어요. 내가 얼른 갈게."

보호자 없이 한시도 못 있을 유아들은 아니지만, 대낮도 아니고 벌써 깜깜해진 저녁이라 초등학생 셋이서만 있을 생각에 걱정이 된다. 남편도 오늘 회식이다. '하필'.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박차고 나갈 형편이 아니니 더욱 초조하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있는 집중 없는 집중 다 끌어다 쓰는 중, 자꾸 실수가 나온다. 그것 때문에 더 쪼인다. 마음이 급하면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 어이없는 흠을 발견할 앞날에 질색하며 화면을 노려본다. 최종 문서를 여러 번 확인한 다음에야 드디어 결재를 올렸다. 컴퓨터를 끄고 서류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후면 주차장 저 구석에 야간등이 새어 나오고 작은 음악소리와 두런두런 말소리도 들린다. '시끌시끌'은 아닌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이미 먹고 많이들 빠졌나 보다. 평소의 나였으면 오히려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그렇지만 들르지 않고 차로 내쳐 갔다.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아이 중 유일하게 휴대폰을 가진 첫째에게다.

받지 않는다. 시동을 걸면서 한 번, 그리고 중간쯤 갔을 때 다시 한번 걸어 보았지만 연신 신호만 갈 뿐 종국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무음으로 되어있나? 그래서 전화 오는 걸 모르는 걸 거야.' 

긍정회로를 돌린다. 그러다가도 '아니면 혹시...' 별의별 생각이 반대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불행하고 불운한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강하고 빠른 속도로 뇌와 가슴을 점령한다. 이런 쪽으로 라면 세상에나, 또 어찌나 창의적인지! 무한으로 증식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고 있잖아. 지금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운전에 집중하자. 

운전대를 꽈악 잡았다.







30분의 불안 끝에 도착했다. 뛰어들다시피 하며 집에 들어섰다. 

"얘들아!"  


세 아이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 

"다녀오셨어요."

똘망똘망한 세 명의 눈이 나를 본다.

숨을 헐떡이며 아이들을 향해 서 있는 내쪽과, 익숙한 조명 속 아이들 쪽 공간에 마치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 흑과 백, 혹은 흑백화면과 컬러화면 같다. 포근하고 느긋한 아이들의 모습에 대비되어 바쁘고 불안했던 오늘의 내가 부각된다. 그림자 진 폰트에 포인트 9의 작은 글자로, 진하게. 

아무려면 어떠랴. 보통의 날처럼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집에 안전하게 있다. 무엇보다 한 명도 빠지지 않은 셋이 소파를 채우고 있다. 안정된 완전체. 그러면 되었다. 



그때 첫째 옆에 높인 휴대폰이 눈에 들어온다.

하아... 

갑작시리 화가 치민다.

"아니 근데, 왜 전화를 안 받니?"

안온한 집에 그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되고 감사하는 마음... 은 그렇게 찰나로 끝이 났다.

"집에 너희끼리 있는 걸 아는데 전화를 안 받으니까 엄마가 오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응? 뭐라, 무음? 무으음~~? "

"무음으로 해놓을 거면 대체 전화가 왜 있니. 폰 옆에 끼고 볼 거 다 보면서 정작 통화가 안되면 무슨 소용인 거야."

"엄마아빠가 그러라고 휴대폰 해 주었겠니?"

"그럴 거면 전화 없애!!"

.

.

.




아. 

거기까지 갔으면 안 되었다

터진 입이라고 4절까지 읊어버렸다. 어쩌면 갱년기가 가까운지도 모르겠는 마흔 줄 엄마는 울화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 속으로 변명해 본다. 그래도 영 그렇다. 연락이 안 되어 엄마가 걱정했다, 정도에서 끝냈어야 좋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사춘기 딸아이와 그녀의 폰에 그간 쌓인 악감정까지 고명으로 얹어버렸다. 맵고 쓴 고명이 음식을 베렸다. 이러면 역효과인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엄마가 걱정한단다, 전화의 주용도는 연락과 소통이란다', 이런 따스한 가르침과 교훈은 집어 치고 십 대 소녀에게는 휴대폰을 없애겠다는 협박만 남았을 뿐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초심은 뒤로 하고 점점 아이에게 욕심을 가지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는 겪는다. 제발 별 일 없이 거기 있어주기만을 기도했던 엄마 불안이는 그 원(願)이 충족되자마자 또 다음 욕심을 내고 말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쏟다니. 해소 방법과 대상 둘 다 틀렸다.






혼자 먹을 저녁밥을 차려 먹으면서 나는 조금 울적해졌다. 방금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어리석게 군 행동이 부끄러웠고, 일터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보낸 내가 짠했다. 하필 내가 퇴근 후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도 빠지기 어려운 나름의 일이 겹치는 게 오늘따라 야속했다. 아까 삼겹살 파티에도 되게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면서 괜히 서러웠다. 가기 싫어 안 가는 것과 상황 때문에 못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말이다. 등등 여러 감정이 동시에 몰려와 울컥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쫄로리 앉아 영어영상 시청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이다. 바보 같은 엄마지만 눈물 젖은 밥을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진짜 바보 같아 싫다.



아무래도 이따가 잠자리에서 말해주어야겠다. 

사람은 마음이 지치면 뾰족해지거나 약해진다고. 너희들이 걱정되었던 건데 화를 내고 말았노라고 고백해야겠다. 첫째에게는 전화를 받자고 다짐을 받아야겠다. 

남편에게는 삼겹살을 구워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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