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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수 Aug 02. 2023

죽음에 관하여

실낙원

 민수는 신이 만든 동산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두려움이 없는 곳이었다. 신과 함께 하는 삶에 매일매일이 은혜로웠고 걱정은 모두 일시적인 것이었다. 고통이 없고 행복만 존재하는 세계, 찬양만 하는 세계, 미움과 시기 질투가 없는 영원한 세계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영원히 행복하기만 한, 황금으로 만들어진 그런 세계에서.


 어느 날, 타자라고 불리는 존재가 민수를 찾아왔다. 신과 친한 친구가 타자랑 어울리지 말라고 한 것을 전해 들었다. 민수는 평소에도 타자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타자 욕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잘은 기억나진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타자를 보는 것이 조금은 껄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민수는 타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는데, 고개를 돌린 곳에도 타자의 얼굴이 있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렸지만 어디에나 타자가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타자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어서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타자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민수는 흠칫 놀랐다. 타자가 말했다.


"저기... 내가 과일을 좀 가지고 왔는데.."


 타자의 손에는 빨간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타자는 그 빨간 것을 민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과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해괴하게 생겨서 먹어도 되는 과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신이 먹으라고 한 파란 과일만 먹을 수 있었다. 이걸 먹어야 동산에서 살 수 있다고 했고 이걸 먹지 않으면 곧 죽게 된다고 했기 때문에 민수는 그 빨간 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타자가 주는 빨간 과일은 어째서 인지 거부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입으로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고 그것은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민수는 계속해서 그 빨간 과일을 먹었고 끊임없이 입에 넣었다. 분명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과일인데 한 번 먹기 시작하니 지천에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빨간 과일을 찾아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점점 동산 끝자락에 도달했다. 몸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파란 과일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동산에는 파란 과일이 어디에나 있었다. 민수는 파란 과일을 따다 한 입 물었다. 구역질이 났다. 그동안 이 맛없는 과일을 어떻게 먹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이 너무 쓰고 역해서 다시 빨간 과일을 찾아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름다운 동산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황량하고 피폐한 땅만이 남아있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동산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회상했다. 신과 함께했던.. 아니 조금 이상했다. 신을 본 적이 있었나? 친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나 들었지 실제로 신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신이 뭐라고 직접 이야기했었는지,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민수는 신과 대화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민수는 더 이상 신이 존재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동산 밖에 타자와 같은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민수는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파란 과일을 먹지도 못했고 행복하기만 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 행복했었나? 이젠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전과 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강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고통스러웠는데,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불쾌함이 들었다. 옆에 쓰러져있는 타자를 보았다. 축 늘어진 타자를 보면서 민수는 알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타자에게 찾아왔구나. 그리고 그 죽음이 언젠가는 민수에게도 찾아올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민수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답답함과 미지의 불쾌함이 엄습했다.


 민수는 이제 반드시 죽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타자가 다시 날 찾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빨간 과일을 먹을 수 밖에는 없을 거야.'


타자의 얼굴은 거부할 수 없는 존재였고 무한한 것이고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나였다. 민수는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일렁이는 물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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