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내 세계
(전편에 이어)
4년 전인, 25살까지 나는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녔다. 당연히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고,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으니까 천국에 갈 운명이었다. 그런데 점점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의 과학적인 한계와 신학적, 역사적 한계를 보며 이제까지 세운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부숴나갔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다. 지구 6천 년 설, 아담과 하와의 존재, 원죄, 예수의 기적, 기도의 응답, 신이 정의롭다는 것, 하나씩 부수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무너뜨렸던 것이 바로 사후세계이다.
사후세계를 무너뜨리고 나니, 내가 가진 세계관은 텅 빈 원자처럼 비어버렸다. 죽어서 갈 곳이 있던 나는 죽음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었지만, 갈 곳을 잃은 나의 의식은 죽음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한참 그 생각이 심해질 때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더라면 점점 몸에 감각을 비우고 사념에 잠겼고, 그 사념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결론은 죽음에 다다랐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생각이다.
우리가 겪은 과거의 모든 일은 더 이상 시간의 크기를 갖지 않는다. 20살 때 재수를 했던 그 긴 1년의 시간도 이제는 한순간의 과거로 회상할 뿐 1년의 크기를 갖지 않는다. 단지, 그 순간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시간도 훗날의 나의 의식 속에서는 한 순간의 점으로 기억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의식의 종착역은 바로 죽음 직전의 나일 것이다. 그리곤 죽음이 인간에게 필연적이라는 것, 그 죽음 너머에는 무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과 같이 편안할 것 같다며 죽으면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그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지, 수면 중에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반드시 온다는 것과, 그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조금이나마 확신하는 바는 그 뒤에는 무無가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세계가 무너진 이후로는 종종 이런 생각에 숨을 못 쉴 때가 많다. 그리고 몸에 계속해서 자극을 주어서 내 의식이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나 이런 생각은 다른 인간과 교류할 때 적어지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내가 종교를 버리게 된 것은 유물론자로 거듭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이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좋은 일이었지만, 단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 상태를 되돌릴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럴 생각은 없다. 텅 비어버린 내 세계에 무언가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