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상장들을 상자에 보관해 두었다. 친정집 장롱에 있던 그 상자를 꺼내 쇼핑백에 넣어 주었다. “네 짐이니까 가져가.”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결혼을 했으니 친정집에 있던 내 짐이 우리 집으로 이사 오는 게 맞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냈다. 낡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 안에는 상장과 함께 성적표도 들어 있었다. 하얀색 상장들과 성적표들 사이에서 노란색 상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봉사상이 눈에 띄었다.
‘봉사상? 내가 고등학교 때 봉사상을 받았어?’
상장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위 학생은 투철한 애교심과 남다른 봉사 정신을 발휘하여..."
'투철한 애교심과 남다른 봉사 정신을? 내가?'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모난 상장을 보니 네모진 학교 화장실이 떠올랐다. 양팔에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파란색 체육복 바지를 입은 네 명의 소녀들과 그때의 그 냄새도 함께.
어느 날, 종례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은 학생은 손을 들라고 했다. 일 년 동안 청소를 하는 학생에게는 봉사상을 준다고 했다. 전교 부회장인 친구가 손을 번쩍 들며 우리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우리 셋은 엉겁결에 손을 들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넷이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고3이었다. 1분 1초를 아껴서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할 시간에 청소를 하다니, 그때는 공부보다 우정이 더 소중했던 것 같다.
종례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화장실로 출근했다. 청소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문을 닫으면 화장실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청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수다를 먼저 떨었다. 화장실 냄새가 고약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화장실은 우리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청소하는 시간보다 수다를 떠는 시간이 더 길었다. 청소가 끝나면 자율 학습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청소 시간이 짧아 청소를 거의 못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날에는 넷이 따로 흩어져 쓰레기가 가득 찬 휴지통만 비우고 더러운 변기만 솔로 빠르게 닦으며 청소를 급마무리했다.
학교 화장실은 여러 사람이 사용해서 그런지 매일 청소를 해도 더럽고 냄새가 났다. 악취와 지린내가 코를 찔러 숨쉬기 힘든 날에는 수다를 미루고 각자 맡은 일에 몰두했다. 우리를 믿고 화장실 청소를 맡겨주었던 담임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청소를 하며 우정도 쌓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건물 화장실이나 공중 화장실의 냄새를 맡으면 그때 화장실에서 맡았던 그 냄새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가끔 떠오른다. 불쾌한 냄새지만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을 회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던 우리가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대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힘들었던 기억보다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엄마가 챙겨준 상자 덕분에 그때의 그 냄새와 함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네 짐이니까 가져라고 했을 때는 서운했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학창 시절의 기억과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 상자는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