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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입니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목요일 10시에 뿌리 염색 예약이 가능한지 묻는다. 전화기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리다가 멈춘다.
“목요일 10시? 예약 가능하지. 지금 휴가철이라 손님이 없어. 홍홍.”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손님이 없다는 원장님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원장님은 미용실에 손님이 없다는 말을 손님인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원장님의 미용실에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
서른여섯 살 늦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고 파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새치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에는 정수리 부근의 새치를 가리기 위해서 두 달에 한 번꼴로 뿌리 염색을 해야 했다. 미용실을 가야 하는데 파주에 남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어 난감했다. 나는 머리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20대 때부터 미용실 선택에 신중한 편이었다. 눈팅만 하고 있던 파주 지역 맘카페에 들어가 ‘미용실’로 검색했다. 맘카페 회원들이 남긴 미용실 후기를 하나씩 클릭해서 읽었다. 그중 최근에 오픈한 미용실 후기 글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그곳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며칠 뒤, 설레는 마음으로 미용실에 방문했다. 원장님의 첫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으로 깔맞춤을 해서 카리스마가 넘쳤다.
나는 20대 때부터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미용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원장님의 머리를 보고 나도 어두운 색으로 전체 염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블랙 컬러로 염색하면 나중에 다시 밝은 컬러로 염색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두운 갈색으로 염색하기로 했다. 염색약을 꼼꼼하게 바르는 원장님의 세심한 손길을 샴푸할 때도 느낄 수 있었다. 손끝으로 두피를 골고루 마사지해 주어서 눈이 번쩍 떠지는 개운함을 느꼈다. 나는 오른쪽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원장님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면서 집에서도 쉽게 머리 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상한 머리끝을 잘라내고 어두운 갈색으로 염색을 하니 거울에 비친 내 머리도 원장님의 머리처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원장님의 섬세한 손길을 2018년부터 현재까지 느끼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원장님을 만나니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는 셈이다. 미용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다로 시작해서 수다로 끝날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원장님을 ‘척척박사님’이라고 부른다. 원장님도 내가 지어준 별명을 맘에 들어 한다. 원장님은 어떤 고민과 질문을 던져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척 받아넘긴다.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원장님을 통하면 작은 일이 된다. 나에게 원장님은 속이 답답할 때 벌컥벌컥 들이켜는 탄산음료와 같은 존재다.
원장님은 9월에 휘어져 있는 중지 손가락을 곧게 펴는 수술을 받는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큰 수술이라고 한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원장님과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