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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사채 빚보다 무섭다

by 정유쾌한씨

거짓말은 사채 빚보다 무섭다. 급한 마음에 끌어다 쓴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듯이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커진다. 이자가 이자를 낳듯이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 30여 년 전, 상에 눈이 멀어 거짓 글을 썼다가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원고지의 작은 네모 칸들을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백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머릿속 거짓말 전구가 번쩍 켜졌다.


‘흰둥이’라는 제목의 글을 단숨에 써 내려갔다. 아빠가 집에 데려온 강아지의 이름을 외래어로 지으려다 반성 끝에 순우리말인 ‘흰둥이’로 지었다는 내용이었다. 한글날 기념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싶어 거짓 글을 썼다.

며칠 후, 나는 아침 조회 시간에 전교생들 앞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을.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옆 반 친구가 말을 걸었다.


“너네 집 강아지 이름이 흰둥이라며?”


나는 대답 대신 놀란 눈으로 친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반 선생님과 옆 반 선생님은 교실 꾸미기부터 체육대회까지 선의의 경쟁을 했었다. 옆 반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우리 반도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내 글을 읽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거짓 글이 들통날까 봐 불안했다.


남자아이들은 나를 흰둥이라고 놀려댔다. 어린 마음에 옆 반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옆 반에는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알 정도로 친한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강아지가 없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말했을까 봐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하굣길에 만난 동네 친구가 물었다.


“너네 집에 강아지가 있어?”

“아니… 아빠 가게에….”


순간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 거짓말 전구가 또 켜지고 말았다. 한번 시작된 거짓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의 눈빛을 바라볼 수 없었다. 친구는 내가 가게에 있다가 피아노 학원을 가는 걸 알고 있었다. 친구가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오늘은 학원 가방이 집에 있어서 가게에 안 간다고 둘러댔다.


나는 집에 가는척하다가 되돌아 가게로 향했다. 친구에게 들킬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에게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겠지만, 그날은 가방에서 상장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집과 학교에서 거짓 글이 들통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며칠을 보냈다.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흰둥이는 결국 시골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는 거짓말로 끝을 맺었다. 거짓말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또 지어냈다.

30여 년이 지났어도 그때의 거짓 글과 거짓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거짓말은 사채 빚보다 무섭다. 빚은 돈으로 갚을 수 있지만 거짓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으니 말이다, 양심의 빚을 갚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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