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추억을 함께 먹다
추석을 며칠 앞둔 토요일 아침이었다.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추석 장을 보러 갔다.
시장은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장을 보던 어머니는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거기'로 가자고 했다.
밖에서 파는 떡볶이는 너무 달아서 먹지 않는 어머니가 먹으러 가는 '거기'가 궁금했다.
어머니는 떡볶이가 땡길 때면 집에서 설탕과 올리고당 대신 양배추를 넣어 만들어 먹었다.
나는 너무 맛이 없어서 떡볶이를 국그릇에 따로 덜어 올리고당을 넣어 먹곤 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니 초입에 떡볶이집이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으니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가게 안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세 개 정도 있었다.
입구 왼쪽에는 주방이,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그 옆에는 김밥을 싸는 테이블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어르신 세 분이 일하고 있었다.
메뉴는 떡볶이, 김밥, 순대, 오뎅이 전부였다.
점심에 아구찜을 먹기로 해서 가볍게 먹기로 했다.
서비스로 나온 오뎅 국물에 둥둥 떠있는 파처럼 가볍게 떡볶이, 김밥 한 줄, 순대를 주문했다.
김밥을 싸고 있던 어르신이 김밥을 갖다 주면서 어머니와 남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결혼했어?"
"네."
"색시 착하게 생겼네. 이 집 아들 착해. 어렸을 때부터 봤거든.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내가 다 알아."
남편은 멋쩍게 웃었다.
‘혹시 전 여친이랑 왔었나요?’ 어르신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고 싶었지만, 옆에 어머니가 있어서 꾹 참았다.
젓가락으로 김밥 한 개를 집어 고소한 참기름 향이 솔솔 나는 김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모나게 썬 햄과 단무지는 눈, 채 썬 당근은 코, 얇은 계란지단과 깻잎이 입처럼 보였다.
속 재료보다 밥이 더 많이 들어있는데 왜 이렇게 맛있는지 궁금했다.
떡볶이가 플라스틱 냉면 그릇에 가득하게 담겨 나왔다.
밀떡과 떡볶이 국물을 함께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고춧가루로 맛을 낸 깔끔하고 달달한 떡볶이였다.
떡볶이를 먹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제서야 데리고 왔어!“
이곳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아쉬웠다.
학창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먹었던 떡볶이가 떠올랐다.
아저씨가 되어서도 추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남편이 부러웠다.
어머니는 순대가 맛있다고 더 시키자고 했다.
나는 아구찜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너무 배부르게 먹는 건 아닐까 1초 정도 고민하고 순대를 주문했다.
오뎅 국물도 리필해서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 마셨다.
결국 그날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서 아구찜을 먹지 못했다.
추석 연휴 내내 느끼한 냄새와 음식에 시달린 나는 그 떡볶이가 계속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