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건나물 한 봉지를 건넸다. 고사리였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요리책을 보면서 만드는 나는 그걸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하춘화를 흉내 내는 김영철의 눈처럼. 신혼 초에 시어머니가 준 시금치로 나물을 만들었다가 망친 뒤로는 나물은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 드릴게요.”
“…너 안 먹을 거면 엄마 줘.”
엄마는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인이 택배로 보내준 귀한 고사리를 딸에게 주고 싶어 챙겨왔는데, 내 말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이번 기회에 나물 만들기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고사리는 엄마가 준 그대로 부엌 한쪽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2주 뒤에 만난 엄마는 나물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아직 못 먹었다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나는 오늘 집에 가자마자 건나물을 물에 불리겠다고 약속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고사리를 스테인리스 볼에 담고 물을 부었다. 다음 날 아침, 요리책을 펼쳤다. 요리 방법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책에는 냄비에 나물과 물을 함께 담아 약한 불로 20~30분간 삶은 다음 물에 6~12시간 동안 불리라고 나와 있었다. 이미 나물을 물에 불렸으니 오늘은 그냥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물에 덜 불려진 딱딱한 고사리들은 따로 빼두고, 물기를 꼭 짜서 4cm 길이로 썰었다. 국간장, 다진 마늘, 다진 파, 설탕을 넣어서 양념을 만들어 고사리와 버무렸다. 고사리나물에 설탕이 들어간다는 게 신기했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사리를 넣어 볶았다. 고사리를 볶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다음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닫아 익혔다. 2분 정도 익힌 후 뚜껑을 열어 또다시 볶았다. 불을 끄고 한 김 식힌 다음 참기름과 통깨를 넣고 버무렸다. 고사리를 버무리고 있는 내 모습도 어색했다.
요리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해서 맛이 제대로 날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로 고사리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맛이 밍밍했다. 당황스러웠다.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앞이 깜깜했다. 심호흡을 하고 국간장을 한 숟가락 더 넣은 다음 간을 봤다. 아까보다는 나았지만 2% 부족했다. 국간장과 다진 마늘을 더 넣고 다시 버무린 다음 맛을 보니 나물 비슷한 맛이 났다.
접시에 나물을 담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숙제를 마친 듯 후련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나는 고사리나물을 만드는 것보다 수학 문제 푸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신혼 초에 망쳤던 시금치나물에 비하면 이번엔 먹을만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밥상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