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ublicDomainPictures / Pixabay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A 보드게임 상자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열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달은 유독 예상치 못한 지출이 많았다. 고장 난 가전제품 수리에 갑작스러운 경조사까지 겹쳐 통장 잔고가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다.
‘집에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보드게임이 많은데, 또 사도 될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상자 뒷면에 적힌 설명을 읽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재밌겠는데? 한 개쯤은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 보드게임을 처음 접했다.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말을 이동시킨 다음 도착한 곳의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보드게임이었다. 고무줄놀이와 술래잡기 같은 몸으로 하는 놀이에 익숙했던 나에게 종이판 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후로 용돈이 생기면 문구점으로 달려가 보드게임을 하나씩 사 모았다. 하지만 정작 보드게임을 함께 즐길 사람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건재상을 운영하느라 늘 바빴고, 일곱 살 터울의 오빠와는 서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들에게 같이 놀아달라고 말했더라면 시간을 내어 잠깐이라도 함께 놀아줬을지도 모른다. 왜 그때는 말을 못 했을까. 발을 뻗을 만큼의 누울 자리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보드게임 상자가 쌓여갈수록 외로움도 함께 쌓여갔다. 어쩌면 외로움을 달래는 나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IMF 외환 위기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좁은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짐을 줄이기 위해 많은 물건들을 버렸고 그중에는 보드게임도 있었다. 거의 대부분 비닐도 뜯지 않은 새 보드게임이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드게임은 어린이 장난감쯤으로 여겼던 나는 너무도 쉽게 그것들을 정리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이 넘은 어느 날, 회사 동료의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거실에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료 한 명이 보드게임 상자를 꺼냈다. 숫자가 적힌 작은 타일들을 보는 순간 눈이 커졌다. 다소 복잡한 규칙 때문에 초반에는 모두 헤맸지만, 어느새 우리는 보드게임에 몰입했고 방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설렘을 다시금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보드게임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공부방 수업에도 보드게임을 활용했다.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보드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현재는 나와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이제는 보드게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결국 나는 망설임 끝에 A 보드게임을 샀다.